걸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K팝의 새 역사를 썼다.
이들의 메가 히트곡 ‘큐피드(Cupid)’가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10억 스트리밍을 돌파하며 ‘빌리언스 클럽’에 당당히 입성했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헌트릭스에 이어 K팝 그룹으로는 네 번째이자, 중소 기획사 출신으로는 최초의 대기록이다.
23일 기준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 10억 2,524만 회를 넘긴 ‘큐피드(Twin Version)’의 성과는 단순히 숫자 이상의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까지 해외 가수 주도로 발매된 피처링을 제외하고 스포티파이 10억 스트리밍을 넘긴 K팝 곡은 단 19곡뿐이다. 막대한 자본과 글로벌 유통망을 쥔 대형 기획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이 철옹성을, 어트랙트라는 중소 기획사가 오직 ‘콘텐츠의 힘’ 하나로 뚫어낸 것이다.
이번 10억 스트리밍 달성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방식이다. 최근 K팝 산업은 거대 팬덤의 조직적인 ‘스트리밍 총공(총공격)’에 의존해 차트 성적을 만들어내는 기형적인 구조에 매몰되어 왔다. 그러나 ‘큐피드’의 10억 뷰는 철저히 글로벌 대중의 ‘자발적 선택’으로 만들어진 유기적 기록이다.
2023년 2월 발매된 앨범 ‘The Beginning : Cupid’의 타이틀곡인 이 곡은 이지 리스닝에 초점을 맞춘 팝 요소와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의 트렌드를 정확히 관통했다. ‘Year on TikTok 2023’ 글로벌 인기 음원 1위, 빌보드 핫 100 25주 연속 진입, 영국 오피셜 차트 22주 연속 진입이라는 전무후무한 롱런은 팬덤의 결집만으로는 불가능한 수치다. 피프티 피프티는 자극적인 퍼포먼스와 난해한 세계관 대신, 듣기 편안한 고퀄리티 음악성을 내세운 이른바 ‘피프티팝’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구축하며 글로벌 리스너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 대기록이 더욱 값진 이유는 피프티 피프티와 소속사 어트랙트가 겪었던 뼈아픈 성장통을 음악의 힘으로 이겨냈다는 데 있다. 발매 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룹 안팎으로 거센 풍파가 있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좋은 음악’의 본질이었다.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는 이번 성과에 대해 “가슴이 벅차오른다. 글로벌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정진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중소 기획사가 K팝 산업에 있어 좋은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현재 심각한 양극화와 대형 기획사 독과점에 빠진 K팝 생태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 성공 사례는 수백억 원의 프로모션 비용 없이도, 정교한 A&R 기획력과 트렌드를 읽는 감각만 있다면 글로벌 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수많은 K팝 중소 기획사들에게 막연한 희망이 아닌 실질적인 비즈니스 롤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최근 팬 콘서트와 활발한 SNS 활동을 통해 팬들과의 소통을 넓히고 있는 피프티 피프티는 이제 원히트 원더의 꼬리표를 완벽히 떼어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K팝 시장에서, 이들이 앞으로 또 어떤 ‘기분 좋은 반란’을 일으킬지 대중문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