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人터뷰①] “택배 상하차에 희귀병 전신마비 위기까지”…대히트곡 ‘사랑인걸’ 모세에서 춘길로

‘사랑인걸’의 주인공 모세
생계 위해 막노동·택배 상하차 전전
2018년 부친상 후 가요계 은퇴 결심
음주운전 피해 사고로 척추 뼈처럼 굳는 ‘후종인대골화증’ 수술·장애 판정까지

“20년간 가수로 살았다기보다는 ‘가수였던 사람’으로 생존을 위해 버텼습니다.”

2005년 데뷔곡 ‘사랑인걸’로 대한민국 전역을 매료시키며 싸이월드 배경음악과 음원 차트를 석권했던 발라드 가수 모세(본명 김종범). 모두가 그의 히트곡을 떼창하고 통화연결음으로 설정했지만, 정작 그의 얼굴을 아는 이 없는 ‘얼굴 없는 무명가수’의 삶은 잔인할 만큼 혹독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화려한 무대 뒤편에 숨겨져 있던 20년 간의 가혹했던 생존기와 투병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춘길. 사진=트로트테레비

“가수였던 사람으로 버틴 시간”

연습생 생활과 군 복무를 포함해 데뷔까지 무려 9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견뎠던 모세. 그러나 1집 ‘사랑인걸’의 대성공 이후 가요계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집을 낼 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국가적 흥행 열풍에 묻혔고, 활동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갔다. 소속사와의 문제와 생계고가 겹치며 제대로 된 정산조차 받지 못했던 그는 가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학생 레슨부터 미사리 카페 공연, 장사, 막노동, 그리고 새벽 택배 상하차 작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강변역에서 뚝섬유원지까지 걸어가 벤치에서 잠을 청하고 첫차를 타고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수라는 직함은 허울뿐이었고, 생활고는 부모님에게조차 죄인이 되게 만들었다.

2018년, 긴 투병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모세의 가슴에는 거대한 회의감과 자책감이 몰아쳤다. “가수를 하겠다고 설치지 않았다면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아들이었을 텐데”라는 미안함에 그는 “다시는 노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가요계를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춘길. 사진=트로트테레비

본래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던 그였지만, 세상을 등지고 한국을 떠날 생각으로 무작정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해외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평온함에 반해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외국으로 완전히 이주하려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19년 5월, 복귀를 권유하던 지인들과 음원 발매를 준비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가수 ‘춘길’로 가수 인생 2막의 출발

사고 후 1년 반 동안 후유증인 줄로만 알고 전국 병원을 전전하던 그는 정밀 검사 끝에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척추 뒤쪽 인대가 뼈처럼 단단하게 굳어지며 신경을 지르는 희귀질환인 ‘후종인대골화증’이었다.

스치듯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신경이 끊겨 전신마비가 될 수 있는 일초즉발의 상황이었다.

춘길. 사진=트로트테레비

결국 목 앞쪽을 절개해 경추에 핀을 박는 대수술을 받았고, 경증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수술 과정에서 성대 마비 위험까지 경고받았으나, 그는 절망 속에서도 피나는 재활을 거쳐 기적적으로 성대 컨디션을 회복해냈다.

벼랑 끝에 섰던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것은 오직 소수의 남겨진 팬들 때문이었다. “TV에서 시원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딱 한 번만이라도 보여드리고 끝내자”는 마음으로, 그는 자신의 본명 대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존함 ‘춘길’을 가슴에 품고 세상 밖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2편에서 계속)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해당 기사는 홍동희 기자의 트로트 인터뷰 유튜브 채널 ‘트로트 테레비’에서 영상 인터뷰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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