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민축구단은 올 시즌 6라운드를 마친 K3리그 순위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6전 전승으로 단독 선두다. 2위 포천시민축구단엔 승점 7점 앞선다.
더 흥미로운 건 시흥시민축구단의 감독이다. 시흥시민축구단을 이끄는 이승희(37) 감독은 올 시즌 K3리그 최연소 지도자다. 그가 성인 무대에서 감독직을 맡는 건 올해가 처음이기도 하다.
이승희 감독은 전남 드래곤즈, 제주 유나이티드(제주 SK의 전신), 수판부리 FC(태국), 나고야 그램퍼스(일본), 포항 스틸러스, 시흥시민축구단, 알 푸자이라 SC(아랍에미리트)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 이승희는 208경기에 출전해 5골 5도움을 기록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이승희 감독은 29살의 젊은 나이에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이후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지만, 이승희 감독은 지도자 준비가 남들보다 빨랐다. 은퇴 후 필리핀,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은 특이한 이력도 존재한다.
이승희 감독은 부산 FC, 동부산 FC U-18 코치, 경북자연과학고등학교 수석코치 등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지도자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올 시즌 K3리그에서 압도적인 결과를 내고 있는 젊은 감독이 궁금했다.
‘MK스포츠’가 이승희 감독을 만났다.
Q. 올 시즌 K3리그 최연소 감독으로 데뷔해 6전 전승으로 단독 선두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선수 이승희를 기억하는 팬들도 있겠지만, 지도자로는 낯선 팬들도 있을 건데요.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해줄 수 있습니까.
2026시즌부터 시흥시민축구단을 이끌고 있는 이승희라고 합니다. 선수 시절엔 전남, 제주, 포항 등에 몸담았고요. 태국, 일본, UAE 등에서도 뛰었습니다. 저는 예상하지 못한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조금 일찍 마감했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죠. 작년엔 시흥시민축구단에서 수석코치로 있다가 올해 감독대행을 거쳐서 정식 감독으로 선임됐습니다.
Q. 선수 시절엔 다양한 팀에 몸담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한국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국외 경험도 쌓았죠. 이승희는 어떤 선수였습니까.
이승희란 선수를 평가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평가라는 게 주관이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남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개인적으론 제 포지션에서 만큼은 좋은 선수였다고 봅니다. 선수 시절 하루하루 성실하게 임했던 게 지도자를 하면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많은 분에게 알려진 유명 선수는 아니었지만, 함께했던 팀원들이나 지도자분들에겐 인정받는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Q. 30대로 K3리그 최연소 감독입니다. 선수 시절이 그립진 않습니까.
선수 시절 ‘이 정도까진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한 시점이 있었어요. 무릎이 안 좋아서 그보다 훨씬 빨리 은퇴했습니다. 처음엔 ‘미련이 남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련이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지도자란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아주 재밌고 행복하거든요. 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더 노력해야 합니다. 선수 시절을 그리워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Q. 선수 때부터 은퇴하면 지도자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까.
선수 땐 지도자에 대한 꿈이 크지 않았어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전혀 없었죠. 은퇴할 때 무릎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뛰질 못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지도자도 못하겠다’고 생각했죠. 지도자가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땀 흘려야 하는데 뛰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으로 봤죠. 요즘엔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자격증을 따잖아요. 저는 지도자에 대한 꿈이 없다 보니 지도자 자격증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Q. 무릎이 얼마나 안 좋았던 겁니까.
UAE로 갔을 때 무릎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상태였어요. UAE에선 외국인 선수였잖아요. 몸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경기에 나섰다가 탈이 난 거죠. 경합 과정에서 무릎에 심한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회복이 어렵더라고요.
Q. 학창 시절엔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며 달려왔고, 선수 땐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아닙니까. 갑작스러운 은퇴로 막막했을 것 같은데요.
앞이 안 보였죠(웃음). 프로축구 선수는 다른 사회인들보다 조금 일찍 자릴 잡잖아요. 어릴 때 뉴스를 보면, 20대 초반 분들이 장래를 걱정하는 게 이해가 잘 안됐어요. 저는 프로축구 선수란 직업을 얻고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 저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상으로 은퇴하니까 그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되더라고요.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에이전트 대표님이 제안을 하나 해주셨어요.
Q. 어떤 제안이었습니까.
일단 필리핀으로 가서 영어를 배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에이전트 대표님이 제게 “지금껏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니 가면서 부딪혀 봐라. 네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비용까지 다 지급해 주셨어요. 제 인생의 은인이고, 이런 분을 만났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봅니다.
Q. 은퇴 후 첫 시작이 필리핀 어학연수였잖아요. 프로축구 선수만 바라보고, 프로축구 선수로만 살다가 처음 다른 분야에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어학연수 시절은 어땠습니까.
첫 일주일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무얼 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겠는 거예요. 제가 또 기왕 하는 거 ‘스파르타식’으로 하겠다고 해서 쉽지 않은 학원을 골랐었거든요. 오전 6시에 기상해서 오후 9시까지 영어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8시엔 시험을 봤거든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주말 외출이 불가능했어요. 무단으로 외출하면 퇴소 조처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부해서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첫 2주는 주말 외출을 못 했어요. 그런데 포기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가르쳐 주는 걸 최대한 해보려고 했어요. 축구랑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으로 영어 공부에 매진했죠. 그러다 보니까 3주 차 때부터 조금씩 성과가 나더라고요.
Q. 필리핀 어학연수면 10대 후반~20대 초반 학생이 많지 않습니까.
맞아요. 보통 19, 20살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만 30대였어요. 그 친구들이 볼 땐 무서웠을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어요. 저는 축구만 바라보며 축구와 관련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었잖아요. 축구가 아닌 다른 세상, 다른 꿈을 꾸는 사람도 많다는 걸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필리핀에서 영어 기초를 닦고 캐나다로 건너가 자기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던 20살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로축구 선수로 20대를 보냈다는 건 축복이었다는 것도 느꼈죠. 저는 다른 20대 친구들보다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런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 한 번 해보자’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필리핀 어학연수가 제겐 더 넓은 세상을 알게 해준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Q.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까.
솔직히 했죠(웃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탈모까지 왔었어요. 선수 시절엔 자신감이 넘치는 인생을 살았거든요. 선수 이승희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자신감을 완전히 잃은 거예요. 한 책에서 ‘있을 때 겸손하고 없을 때 당당 하라’는 구절이 기억납니다. 저는 완전히 반대로 실행한 삶을 살았던 거예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제 삶까지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나아갈 계기를 만들었기에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한 것 같습니다.
Q.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은퇴하고 미래를 고민할 때 에이전트 대표님이 저를 아르헨티나로 보내주셨어요. 필리핀 어학연수를 보내주셨던 바로 그 분이죠.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를 봤던 게 제 삶을 바꿨습니다.
Q.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르헨티나 명문 CA 리버 플레이트란 팀 아시죠?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1부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최다 우승(38회)을 기록 중인 최고 명문입니다. 리버 플레이트 홈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때였어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라운드 위 모든 선수가 그 팀의 감독을 위해 뛴다는 게 느껴졌어요. 속으로 ‘감독을 얼마나 믿고 충성하면 저렇게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죠. 선수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니 그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구현하고자 하는 지도 보였어요. 그때 축구가 더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확신했죠. 내가 가야 할 길이 여기구나.
Q. 리버 플레이트 감독이 누구였는지 기억납니까.
마르셀로 가야르도(50)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지도자예요. 전술도 엄청 특이했습니다. 제가 노트로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그려놓았어요. 제가 알아본 바론 몇몇 선수는 자기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었습니다. 경기를 보면서 감독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선수들의 눈빛이나 움직임을 보면서는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가 있나’란 존경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도 선수 생활을 해봤잖아요. 감독을 위해서 100%를 쏟아낸다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거든요. 확고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겁니다. 그게 느껴졌어요. 한국에선 정해성 감독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었거든요. 경기에서 졌을 때 분함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정해성 감독님을 위해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컸었어요.
Q. 선수 시절 K리그뿐 아니라 국외 리그도 경험했습니다. 국외로 나가서 새롭게 배운 것도 있었습니까.
나라마다 특색이 있었어요. 태국, 일본, UAE 등 모든 국가의 리그가 달랐죠.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선수 시절 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선수 때 느꼈던 걸 토대로 선수를 지도하는 스타일이죠. 그러다 보니 국외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Q. 부러움을 느꼈던 리그도 있었습니까.
일본이죠. 일본 시절이 참 좋았어요. 특히,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기억에 납니다. 잔디는 물론이고 운동 시설이 아주 좋았어요.
Q. 나고야에 있었던 게 10년 전입니다. 그때도 일본의 환경은 남달랐던 겁니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한 시즌 동안 훈련장 잔디를 세 번이나 바꿨어요. 겨울, 봄, 여름 등 계절마다 최상의 잔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썼던 겁니다. 홈구장이 아니라 훈련장 잔디를 이렇게까지 세심히 관리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게 눈이 많이 온 날이었어요. 한국이었다면, 실내 운동을 했을 겁니다. 일본은 아니었어요. 눈을 빠르게 치우고 훈련장에서 훈련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공을 다루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만큼 잔디 관리가 완벽했다는 거죠.
Q. 일본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나 더 물어볼게요. 일본 축구의 상승세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일본은 왜 이렇게 잘나가는 겁니까.
음.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일본 축구를 직접 경험하고 지켜보면서 느낀 건 있어요.
Q. 그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일본은 축구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부터 다릅니다. 특히, 기본기를 아주 중시해요. 예를 들면, 한국에선 패스를 받을 때 발에서 1m 정도만 떨어져도 ‘잘 잡았다’고 합니다. 일본은 아니에요. 패스가 발에 딱 달라붙어야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확실한 색채를 유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었어요.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한국 축구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어요. 활동량, 투지, 열정 등이 한국 축구의 대명사였잖아요. 한국에선 그 색채가 사라졌습니다. 유럽에서 ‘좋다’고 하는 것만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일본은 달랐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유소년 팀 훈련을 유심히 봤었거든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Q. 왜요?
기본기를 단단하게 잡으면서 한국의 1980~1990년대 스타일로 운동을 하는 거예요. 지도자가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을 못 할 땐 반대편 골대를 찍고 오는 등의 운동을 시키더라고요. 또 운동하는 걸 보면, 선수들이 90분 이상 뛸 수 있는 체력을 기본으로 갖출 수 있도록 강하게 훈련하는 것이 보였어요. 놀랐죠. 저는 그때만 해도 ‘그렇게 지도하는 지도자는 나쁜 지도자’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Q. 유소년 팀에서 지도자 생활도 했었잖아요. 요즘 축구계를 취재하다 보면 ‘훈련량이 너무 적다’는 이야기가 꽤 나옵니다.
100% 동의합니다. 제가 일본에 있었을 때만 해도 한국과 운동량 자체가 달랐어요.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과학적인 훈련이라고 해서 ‘하루 운동 한 번’이 당연하게 여겨지더라고요. 일본에선 하루 2게임 뛰는 것도 봤습니다. 운동량이 제가 운동했던 1990년대를 보는 것 같았어요.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선수라면, 그렇게 준비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축구 선수’가 되려고 하는데 하루 한 번 운동해서 어떻게 프로선수가 됩니까.
Q. 일본이 이젠 피지컬에서도 한국에 앞선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유소년 단계에서부터의 준비 차이가 지금의 결과로 이어지는 걸까요.
제가 일본에서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일본에 있을 때 큰 관심을 두고 많은 걸 봤습니다. 일본이 지금 잘 나가는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거나 운에 기반한 것은 확실히 아니에요. 일본은 탄탄한 기본기에 약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온 걸 해결 하고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Q. 일본에서의 경험이 지도자를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칠 듯합니다.
그렇죠. 일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가 있어요.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이었습니다. 제가 가와사키전에서 13km를 뛰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대의 볼 소유, 패싱력이 기계처럼 느껴졌어요. 완벽했습니다. 그 경기 비디오를 수천 번 분석했어요. 가와사키가 무엇을 준비했고, 어떻게 플레이했길래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이유를 찾았죠.
Q. 기본기라는 건 유소년 시절 갖춰져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기본기 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까.
제가 선수 시절 기본기 향상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된다고 봅니다. 어려운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볼게요. 기성용이 국가대표팀에 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기성용이 중원에서 볼을 잡으면 어떻게든 압박을 풀어냈습니다. 일본은 모든 선수가 기성용처럼 압박을 풀어 나와요. 한국은 어떻습니까. 기성용처럼 상대의 압박을 쉽게 풀어내는 선수가 드뭅니다. 저는 그걸 선수 개개인의 능력 차이로 보지 않아요.
Q. 그럼 어떤 차이에서 오는 겁니까.
패스의 질입니다. 패스의 질이 올라가면, 볼을 잡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패스의 질이 나쁘니까 공을 제대로 잡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현대 축구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지 않습니까. 생각할 틈을 안 주잖아요. 기성용 정도 되는 레벨의 선수가 아니면 좋은 패스가 아니고선 빠르게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기가 어려운 겁니다. 패스의 질이 올라가면, 더 빠른 축구가 가능해져요. 저는 그래서 패스 훈련을 아주 중시합니다.
Q. 올 시즌 K3리그 6경기 전승으로 단독 선두를 내달리는 비결 중 하나가 패스의 질이였군요.
올 시즌 개막 전에 K리그1, K리그2 팀들과 연습경기를 했어요. 우리가 모든 경기를 이긴 건 아니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에 주도권을 내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모든 경기에서 우리가 준비하고 하고자 하는 걸 내보였습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예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비교하면 조금 부족할 순 있겠지만, 팀으로 잘 준비하면 개인차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걸 해내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자 임무이고요.
Q. 이승희 감독만의 패스 훈련 비법을 조금이라도 공개할 수 있습니까.
특별한 건 안 합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워밍업부터 패스 훈련을 해요.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워밍업부터 하는 패스 훈련을 대단히 강조해요. 패스 하나를 하더라도 온 신경을 기울여서 해야 합니다. 프로선수가 되면, 기본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습관처럼 그냥 하는 거죠. 저는 그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패스 하나에 혼을 실어야 실전에서 더 좋은 패스가 나올 수 있어요. 선수단 미팅이나 비디오 분석 등을 할 때도 패스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경기를 돌아보면, 패스 하나가 달랐을 때 경기 결과까지 뒤바뀔 수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패스의 질이 좋으면 앞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걸 패스가 나빠서 백패스를 하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패스 하나를 주더라도 최대한 잘 주려는 습관이 들어야 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습니다.
Q. 태국에서 뛰었을 때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과 사제의 연을 맺었잖아요. 파리아스 감독도 포항 시절 짧고 빠른 패스를 강조한 지도자로 기억하거든요. 파리아스 감독은 어떤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습니까.
제 축구 인생 첫 국외 도전이었죠.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썩 좋진 않아요. 파리아스 감독님 때문은 아닙니다. 제가 전남에서 잘 뛰다가 원하지 않는 이적을 해야만 했어요. 운이 좋아서 파리아스 감독님과 인연을 맺게 됐지만, 하마터면 쭉 쉬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었죠.
Q.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시 감독님과의 갈등이 있었어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저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였고, 성과나 연봉이나 최상위권이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저는 훈련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더 마음 아팠던 건 이적시장 폐장을 하루 남겨두고서야 저를 풀어주겠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국외로 나가 파리아스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많은 걸 배웠어요.
Q. 특별히 달랐던 게 있었습니까.
파리아스 감독님은 제게 확고한 믿음을 보내주셨어요. 저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매 경기 최선을 다했습니다. 파리아스 감독님을 돌아보면, 인상 깊었던 게 하나 있어요. 세트피스였습니다. 세트피스 훈련에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포항에서 파리아스 감독님을 경험했던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포항 시절에도 세트피스 훈련 시간이 길었다고 하더라고요.
Q. 선수 시절 이승희에게 큰 영감을 준 고마운 지도자를 꼽아줄 수 있습니까.
제 인생 지도자는 초등학교 시절 김대호 감독님과 정경진 코치님입니다. 두 분에게 축구를 다 배웠어요. 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때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느껴요. 어릴 때 축구를 제대로 배웠잖아요. 성장하면서 배우는 데는 큰 어려움을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죠. 프로가 된 후엔 정해성 감독님이 기억에 남아요. 여러 가지로 감사한 점이 많은 은사님입니다.
Q. 유소년 단계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어땠습니까.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중시한 게 있습니다. 저는 막내 코치를 하더라도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팀’을 찾았어요. 축구는 팀 스포츠란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개인 능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팀을 잘 만들면 어떤 팀과 만나서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죠. 실제로 성과를 냈습니다. 약체로 평가받던 동부산 FC U-18 코치를 맡았을 때였죠. 부산 MBC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3위에 올랐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였어요. 거기서 크게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Q.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 패했습니다. 그 경기를 준비하면서 승부차기 대비를 안 했던 거예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죠. 승부차기로 향하니까 당황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가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었거든요. 선수들은 저만 바라보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결국 졌죠. 그날 선수들에게 “너희는 최선을 다해줬다. 내가 부족해서 진 거다. 미안하다”는 얘길 했던 게 기억나요.
Q. 경북자연과학고등학교 수석코치를 맡아선 경북 지역 주말리그 우승, 전국대회 우승과 준우승 등 큰 성과를 냈습니다. 지도자를 시작할 때부터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은데요. 자신감의 원천은 어디에 있던 겁니까.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때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제게 “처음엔 다 너처럼 열심히 한다”면서 “그때는 누구든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어요. 웃으면서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끝까지 가서 다르다는 걸 반드시 증명하겠다’고 말이죠. 지도자가 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선수단은 어떻게 장악해야 하는지 매일 고민하고 공부했습니다. 여기에 경험이 쌓이면서 더 디테일한 지도 방식이 정립된 것 같아요.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 지도자를 믿고 신뢰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지도자가 먼저 노력하고 자기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만들 수 없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자신이 있었고,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코치 때부터 훈련량이 많고 엄한 지도자였어요.
Q. 선수들이 좋아하지 않는 지도자 아닙니까.
거부감이 있죠. 그런데 성과로 증명하면 선수들이 따르게 됩니다. 그 성과는 저의 땀과 노력이 만들어 낸 것이고요. 선수들도 지도자를 매일 지켜보고 평가해요.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가야르도 감독처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자신감이 있었기에 빨리 감독이 되고 싶은 꿈도 컸을 듯합니다.
물론이죠. 하지만, 코치 생활은 감독 이승희를 만드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경북자연과학고에 있을 때 김래현 감독님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전술, 전략은 어떻게 짜서 선수들이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배우고 느꼈죠. 제가 감독이 됐을 땐 김래현 감독님의 장점을 어떻게 이어가고 나만의 색을 내야 할지도 고민했고요. 저는 코치 시절부터 감독에 대한 꿈이 확고했지만, 선은 확실하게 지켰어요. 감독님이 정한 방향이나 전술 등을 저의 뜻대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코치는 감독을 보좌하는 역할이잖아요. 감독님의 전술이 더 명확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힘을 쏟았죠.
Q. 감독이 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습니까.
코치 땐 상대 팀 분석을 철저히 했어요. 감독이 된 뒤엔 상대 팀 분석엔 많은 시간을 쏟지 않습니다.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의 핵심적인 부분만 확인해요. 왜냐. 경기는 우리가 주도할 거니까. 상대가 우리 팀에 맞출 수밖에 없도록 준비하거든요. 그래서 코치들에게도 이야기합니다. 상대 팀 분석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라고. 그 시간을 우리의 세트피스, 공격, 수비 전술 등을 보완하는 데 쏟으라고 합니다.
Q. 성인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건 지난해부터입니다. 지난해엔 시흥시민축구단 수석코치로 팀과 함께했어요. 성인 무대에서 다른 건 없었습니까.
성인 무대로 올라오니까 많은 분이 “유소년 레벨에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왔을지 모르지만, 성인 무대는 다르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축구는 축구예요. 그걸 증명하고자 했죠. 물론, 성인 무대만의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색하고 부족한 게 있었죠. 하지만, 전임 감독이신 박승수 감독께서 많이 챙겨주신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Q. 수석코치로 1년을 지낸 뒤 올해 감독이 됐습니다.
급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본래 박승수 감독께서 계속 맡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선수 구성까지 끝낸 상태였죠.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에 박승수 감독께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이 “여러 사정으로 그만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죠. 이후 구단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감독대행이었어요. 시즌 초반 몇 경기를 보고 정식 감독 계약을 결정하기로 했죠.
Q. 자신 있었습니까.
대표님과 단장님에게 말씀드렸어요. 제가 두 분에게 “올해 무패 우승하겠다”고 했죠. 덧붙여서 “결과가 안 좋으면 알아서 떠나겠다”고도 했어요.
Q. 대표와 단장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걱정하셨죠(웃음). 두 분께서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알지만, 말이 너무 앞서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자신이 있거든요. 현재 K3리그 6전 전승으로 단독 선두에 올라 있기도 하고요. 물론, 시즌은 깁니다. 어려운 시기가 올 거예요. 그것까지 대비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결과로 보여드리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꼭 증명할 겁니다.
Q. 감독대행으로 몇 경기를 지켜본 뒤 정식 감독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었잖아요. 부담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빨리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어요(웃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습니다. 동계 훈련하면서 확신이 생겼거든요. 제주도에서 25일 동안 훈련을 했는데 팀이 잘 만들어졌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선수들이 제가 원하는 걸 이해하고 구현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거죠.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는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합니다. 축구에서 지도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많은 분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Q. 3월 26일 정식 감독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정식 감독이 되고 나서 달라진 건 없었습니까.
선수들이 제가 감독대행일 땐 ‘승희 쌤’이라고 했거든요. 정식 감독이 되니까 ‘감독님’이라고 호칭하더라고요. 처음엔 제가 어색했습니다. 호칭 적응이 안 됐던 거죠. 그거 외엔 평소처럼 해야 할 일에 모든 걸 쏟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듯합니다.
Q. 시흥시민축구단은 올해 K3리그에서 우승하면 K리그2로 승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흥시민축구단은 FC 강릉, 대전코레일, FC 목포, 춘천시민축구단 등과 K리그2 승격을 위한 필수 요건인 ‘K리그2 라이선스’ 신청을 완료한 건데요. 큰 동기부여가 될 듯합니다.
K리그2 승격을 언급하는 건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 지금은 K3리그 우승만 생각하고 있어요. 6월 ‘K리그 클럽자격심의위원회’의 최종 결과가 나와봐야 K리그2 승격이 가능한지 알 수 있고요. 대표님과 단장님 등 많은 분이 우리의 K리그2 승격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써주고 계세요. 이럴 때일수록 감독인 저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잖아요. 이승희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떤 동기부여를 줍니까.
시즌 시작 전에 선수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선수들에게 “나는 축구를 제일 잘 하는 11명을 그라운드에 내보낼 것”이라고 했죠. 이어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다. 나는 기량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열심히 하는 선수와는 끝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Q. 그게 뭐죠?
감독이 축구를 제일 잘 하는 사람 11명을 뛰게 한다는 건 감독의 주관적인 선택입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분명하게 얘기했어요. 선수들에게 “나는 모든 선수에게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사람이다. 내 판단으로 잘하는 선수를 뛰게 할 거다. 나는 이것이 감독의 역할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이 부분은 존중해달라”고 했습니다.
Q. 이승희 감독의 꿈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감독이 되는 겁니다. 독보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지도자가 되는 거예요.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행복하고 재밌습니다.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거예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걸 이겨낸다면 제 꿈에 더 다가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지도자 이승희가 생각하기에 노력으로 재능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봅니까.
저는 재능이 기본이라고 봅니다. 재능에 노력이 더해져야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봐요. 냉정하게 노력만으론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힘든 시기가 오거든요. 그걸 이겨내려면 재능이 필요해요. 재능이 있어야 어려운 시기를 뛰어넘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실력 향상이 됩니다. 보통 10년 이상 선수 생활을 하잖아요. 10년을 꾸준히 가려면 재능이란 밑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경험하고 느낀 프로의 세계예요. 노력만으론 10년 이상의 시간을 버티기란 어렵습니다.
Q. 시흥시민축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시흥시민축구단은 시흥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팀입니다. 코치진, 선수들에게 늘 강조해요. 우린 시흥 시민들에게 감사함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이죠. 팀이 시흥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건 우리가 시흥을 대표하는 팀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시흥시민축구단이 시흥 시민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증명하겠습니다. ‘우리 팀이야’란 말이 절로 나올 수 있도록 재밌고 압도적인 축구 보여드리겠습니다.
[시흥=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