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잊어도 아리랑은 불렀다” 차인표, 그날 시작된 17년 글쓰기

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가 자신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한 오래된 장면을 꺼냈다.

14일 공개된 이혜성의 유튜브 채널 ‘1% 북클럽’에서 차인표는 1997년 TV 뉴스로 접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귀국 장면이 첫 소설의 출발점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말은 거의 잊으셨는데 아리랑은 부르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차인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드라마에 복귀한 신혼 시절, 김포공항 입국장을 생중계하던 뉴스를 봤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살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약 5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차인표가 자신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한 오래된 장면을 꺼냈다. 사진=유튜브 채널 ‘1% 북클럽’
차인표가 자신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한 오래된 장면을 꺼냈다. 사진=유튜브 채널 ‘1%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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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장 문이 열리자 짧은 머리와 동그란 눈을 지닌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차인표는 할머니가 한국말은 거의 잊은 상태였지만 ‘아리랑’만큼은 부를 수 있었다며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피해 여성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연민, 가해 행위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꼈다고 했다. 이어 “나도 이 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소설 속에서라도 이분들을 지켜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본 이듬해인 1998년 처음 소설 쓰기에 도전했다. 정식으로 글쓰기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중간에 원고를 놓기도 했지만, 2006년 다시 집필을 시작했고 해당 작품은 2009년 발표한 첫 소설로 이어졌다.

이혜성이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의 삶을 떠올리며 소설을 쓰게 된 것 같다”고 하자 차인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할머니가 전쟁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아내와 어머니, 할머니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를 계속 질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감 때문에 썼다기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싶었다”며 “인간이 가진 가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에서 작가로 불리기까지의 과정도 전했다. 이혜성이 차인표를 “작가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소개하자 그는 “샛별은 아니고 나이 든 별”이라고 받아쳐 웃음을 안겼다.

차인표는 첫 소설을 발표한 뒤에도 오랫동안 자신을 배우라고만 소개했다며 “최근 2년 정도는 ‘배우 겸 소설을 쓰는 차인표’라고 한다. 소설가는 전업 작가여야 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제 입으로 소설가라고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글쓰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이혜성이 신작 집필 과정을 묻자 차인표는 “텅 빈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집에서 글을 쓰다 막히면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리고 휴대전화를 보게 된다는 습관도 공개했다. 그는 “다음 소설은 발을 테이블에 올릴 수 없는 곳에서 써보자고 생각해 도서관에 갔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신작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차인표는 주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고구려 시대 이야기뿐 아니라 작품을 쓰고 있는 현재의 자신과 도서관 풍경까지 소설에 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형식을 파괴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며 “결국 새로운 형식을 찾도록 도와준 사람들은 곁에서 함께 읽고 쓰던 독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책은 출간돼 서가에 꽂히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차인표는 “저자가 쓰지만 독자가 자신의 해석을 덧입혀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이 세상에 나온 뒤에는 독자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차인표는 2009년 첫 소설을 발표한 뒤 다섯 번째 장편소설까지 선보였다. 그는 이번 작품 역시 독자들이 각자의 삶과 해석을 더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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