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든 광기 어린 열연이 마침내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음악 천재들이 모인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경쟁과 성장을 그린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가 9년 만의 오해를 풀고 재회하는 결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방영 내내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이 작품은, 최종화인 12회에서 다시 한번 자체 최고 기록을 넘어서며 전국 최고 시청률 10.8%까지 치솟는 기염을 토했다.
이토록 뜨거운 시청률 폭등의 중심에는 아들 강비오(송강 분)의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서는 어머니 강지혜 역을 맡아 극의 가장 거대한 폭풍을 이끈 배우 윤세아가 있었다.
극 중 강지혜는 거장 지휘자인 아버지 강승운(정진영 분)의 딸이자 천재 피아니스트 강비오의 어머니로, 아들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범죄까지 불사한 인물이다. 과거 콩쿠르 결승을 앞두고 손가락을 다친 비오에게 우승을 안겨주기 위해 경쟁자인 최정요(이준영 분)의 납치를 사주했던 그는, 9년 만에 진실이 탄로나자 판단력을 잃었었다며 죽일 생각은 없었고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한 일이었다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죄책감보다 진실이 세상에 밝혀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먼저 사로잡혀 아들의 눈앞에서 가위로 자신의 목을 겨누고, 정요의 기억상실이 거짓임을 눈치채자 그를 해칠 위험한 계획까지 품는 모습은 비틀린 모성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완급 조절
이번 ‘포핸즈’에서 보여준 윤세아의 연기에 대해 언론과 시청자들은 일제히 찬사를 쏟아냈다. 다수의 매체는 윤세아가 평소 우아하고 기품 있던 강지혜가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어 파멸 직전의 광기로 치닫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고 호평했다. 악행이 드러나는 순간의 미세한 동요부터 혐의를 부인하며 상대를 날카롭게 몰아붙이는 태도, 사태를 무마하려는 신경질적인 반응, 그리고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뒤틀린 광기까지 감정의 진폭을 단계적으로 촘촘히 쌓아 올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극 후반부인 10회와 11회에서 휘몰아친 감정 변주는 단연 압권이었다. 자신의 과오로 인해 아들 비오가 무대에서 무너지고 실종 연루 의혹까지 받게 되자, 기품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비오는 죄가 없다. 다 내가 그런 것”이라며 자포자기한 오열을 쏟아냈다. 나아가 11회에서 비오가 어머니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거짓 자백으로 체포되자, 강지혜는 부친 강승운을 향해 아들에게만 쏟아졌던 편애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억눌렀던 상처를 토해내듯 절규했다. 이어 심장 통증을 호소하는 부친을 뒤로한 채 정요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아들을 구해달라 애원하는가 하면, 마침내 진실이 밝혀져 수감된 구치소에서는 비오에게 자신과의 인연을 끊고 날아가라며 눈물의 절연을 선언해 안방극장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온라인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에서는 윤세아의 처절한 열연이 송강과 이준영의 비극적인 대립과 화해 서사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특히 과거 ‘신사의 품격’에서 보여주었던 밝고 세련된 홍세라 역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다시금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20년 넘게 쌓아 올린 신뢰의 무게
‘포핸즈’의 강지혜가 단면적인 악녀에 머물지 않고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하면서도 끝내 깊은 잔상을 남긴 배경에는, 2005년 데뷔 이후 윤세아가 쉼 없이 다져온 탄탄한 필모그래피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 ‘혈의 누’로 강렬하게 데뷔한 그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신사의 품격’ 등을 거치며 대중에게 도회적이고 품격 있는 아우라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는 세련된 외피에만 안주하지 않고 장르물과 휴먼 드라마를 넘나들며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정교한 감정 통제력을 길러왔다. ‘비밀의 숲’을 통해 한층 묵직하고 깊이 있는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최근 종영한 ‘러브 미’에서는 유재명과 호흡을 맞추며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투명한 사랑의 온도와 용기를 따뜻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믿고 보는 배우’로서의 신뢰감이 있었기에, ‘포핸즈’ 속 강지혜의 극단적인 폭주 역시 든든한 개연성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대목은 윤세아가 작품마다 전혀 다른 결로 변주해 낸 ‘모성애’의 극적인 대비다. 1%대 시청률로 출발해 비지상파 드라마 역대 최고 기록인 22%대까지 치솟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SKY 캐슬’에서 윤세아는 노승혜 역을 맡아 따뜻하고 품격 있는 모성애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어 ‘완벽한 가족’에서도묵직한 존재감으로 가족 서사의 한 축을 책임졌다.
반면 ‘포핸즈’의 강지혜는 ‘SKY 캐슬’의 노승혜가 보여주었던 건강한 모성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은 인물이다. 자식을 위한다는 출발점은 같으나, 아버지로부터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결핍과 아들의 우승을 향한 그릇된 욕망이 결합해 납치 사주라는 범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윤세아는 그동안 대중에게 신뢰를 주었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를 캐릭터의 가면으로 영리하게 입힌 뒤, 그 단단하던 가면이 아들을 향한 집착과 죄책감, 두려움 속에서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해 극적 충격을 극대화했다.
절제와 폭발을 오가는 정교한 통제력
이처럼 양극단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윤세아 특유의 연기 비결은 ‘절제와 폭발’의 노련한 완급 조절과 치밀한 준비성에 있다. 그는 감정을 무조건 밖으로 분출하기보다, 우아한 태도 이면에 불안과 공포를 아슬아슬하게 응축했다가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결정적 순간에 단숨에 터뜨리는 방식으로 극의 긴장감을 조율한다.
이러한 연기 내공은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듯, 윤세아는 정확한 대사 속도 조절을 위해 배속을 높여 연습하고, 평소 다양한 감정을 꼼꼼히 메모하며 연기 내공을 쌓아왔다. 철저한 캐릭터 분석과 보이지 않는 연습이 뒷받침되었기에, 가위로 목을 겨누는 파멸 직전의 광기부터 구치소에서 아들의 앞날을 위해 스스로 인연을 끊어내는 처절한 모정까지 복합적인 감정을 흔들림 없이 설득할 수 있었다.
결국 최종화 최고 시청률 10.8%라는 대기록과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둔 ‘포핸즈’에서 윤세아가 빚어낸 강지혜는 단순한 악역을 넘어, 비틀린 욕망과 두려움에 잠식된 인간의 나약한 민낯과 뒤늦은 참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절제된 기품과 파열하는 광기를 오가며 배우 지망생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열연을 펼쳐 보인 윤세아. 데뷔 20년을 넘어선 지금도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경신해 낸 그의 다음 얼굴에 대중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