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4’ 노재원, 이렇게 연기하면 반칙이지?!”

지금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읽으면서 배우 노재원의 이름을 빼놓는 건 일종의 반칙이다. 추석 극장가와 안방 OTT 시장을 동시에 집어삼킨 두 편의 대작,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이하 ‘타짜4’)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의 한가운데에 모두 그가 서 있기 때문이다.

20년간 이어온 한국 범죄 오락 영화의 간판 시리즈에서 변요한과 함께 투톱 주연으로 극을 이끄는가 하면, 현빈과 정우성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버티는 시대극에서는 판 전체를 흔드는 핵심 변수로 맹활약 중이다.

단역과 독립영화를 거쳐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지 불과 몇 년 만에 ‘주류 중의 주류’로 우뚝 선 이 배우에게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노재원. 사진=김영구 기자
노재원. 사진=김영구 기자

‘마초 빌런’의 공식을 깨다

최근 공개된 두 작품은 노재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보적인 무기, 즉 ‘예측 불가능성’이 어떻게 극의 서스펜스를 조율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먼저 그의 첫 상업영화 주연작인 ‘타짜4’에서 노재원은 절친 장태영(변요한 분)의 모든 것을 빼앗고 파멸로 몰아넣는 치밀한 전략가 ‘박태영’을 연기했다. 흔히 범죄 누아르나 도박 영화의 악역이라고 하면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선이 굵은 마초형 빌런’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노재원은 이 오랜 공식을 보란 듯이 깨뜨린다. 그가 빚어낸 박태영은 타고난 운과 매력을 가진 친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인물로, 동경과 애정, 지울 수 없는 열등감과 질투가 뒤엉킨 ‘결핍의 집합체’다.

노재원은 박태영을 단순한 사이코패스나 절대악으로 그리는 대신, “내 삶을 위해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노력하는데 칭찬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인물의 찌질하고도 서늘한 내면에 집중했다.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 포스터. 사진=CJ ENM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 포스터. 사진=CJ ENM

친구를 보며 짓던 순수하고 나약한 미소가 단 1초 만에 이빨을 드러낸 악마 같은 얼굴로 돌변할 때, 관객들은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낀다. 중심을 묵직하게 잡는 변요한의 에너지에 노재원의 서늘하고 변칙적인 연기가 균열을 일으키며 맞붙는 구조는 이 복수극을 끝까지 끌고 가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반면, 1970년대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의 중앙정보부 요원 ‘표학수’는 또 다른 결의 괴물이다. 시즌1에서 백기태(현빈 분)를 견제하며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등장했던 그는, 시즌2에서 한층 커진 야망을 폭발시키며 판을 뒤흔드는 키플레이어로 도약했다. 살짝 비뚤어진 가발과 파격적인 스타일링, 상대의 힘에 따라 시시각각 태도를 바꾸는 능청스럽고 비릿한 말투는 시대극의 무거운 공기에 기묘한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요리조리 판을 살피며 꼼수를 부리는 노재원의 광기 어린 눈빛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이 거대한 시대극을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메이드 인 코리아2’ 스틸.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메이드 인 코리아2’ 스틸.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반박자 다른 리듬’과 선악의 교란

베테랑 연출자들과 동료 배우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노재원 연기의 핵심은 ‘독특한 리듬감’과 ‘선악의 경계 허물기’에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노재원을 두고 “반박자 빠르거나 느린, 정박이 아닌 연기를 한다. 다른 배우들과 박자와 리듬감이 확연히 다르다”라고 극찬했다. 보통의 배우들이 대사와 감정을 관객이 예상하는 정박의 타이밍에 맞춰 던진다면, 노재원은 반박자쯤 어긋난 타이밍에 툭 던지거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감정을 전환한다. 해맑게 웃다가도 순식간에 쓸쓸해지고, 금세 바스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다가도 극악무도한 악다구니를 내뿜는 식이다.

이 장면의 선함이 다음 장면의 악함을 전혀 담보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덕분에 관객은 그를 보며 섣불리 선역인지 악역인지 규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음 행동을 궁금해하게 된다. 그는 정형화된 연기의 틀을 깨고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이른바 ‘장르의 교란자’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 사진=넷플릭스

이러한 내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무려 4수를 거치며 연기에 대한 간절함을 키웠고, 단편 및 독립영화 판에서 묵묵히 기본기를 다졌다.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 ‘배우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독백으로 1위를 차지하며 일찌감치 관계자들의 눈에 띄었다.

이후 첫 장편 ‘윤시내가 사라졌다’(2022)에서 이미테이션 가수 ‘준옥’ 역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이며 씨네21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로 선정되었고, ‘세기말의 사랑’(2024)에서는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생활 연기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대중적 폭발력을 얻은 기점은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였다. 냉혹한 현실에 좌절해 게임 세계의 마법사라는 망상에 빠진 공시생 ‘김서완’을 연기하며, 티 없이 해맑은 미소 뒤에 숨겨진 청년의 아픔을 그려내 주연 배우 박보영을 비롯한 수많은 시청자의 ‘눈물 버튼’이 되었다. 그러나 대중이 그 따뜻한 눈물을 채 닦기도 전에, 그는 ‘살인자ㅇ난감’(2024)에서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최악의 나쁜 남자 하상민으로 돌변해 뒤통수를 쳤고,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2024)에서는 다시 한석규와 호흡을 맞추며 따뜻하고 다정한 프로파일러 구대홍 경장으로 변신해 2024 APAN 스타 어워즈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전작의 잔상을 다음 작품으로 절대 끌고 가지 않는 이 무서운 카멜레온 같은 면모가 지금의 노재원을 만든 원동력이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스틸.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스틸. 사진=넷플릭스

글로벌 팬덤까지 사로잡은 ‘미친 연기력’

노재원의 진가는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것은 단연 넷플릭스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 시즌2(2024)와 시즌3(2025)를 통해서다.

극 중 클럽 MD 출신 참가자 ‘남규(124번)’ 역을 맡은 그는 시즌2에서 타노스(최승현 분)의 옆에 붙어 약자를 괴롭히는 비열한 ‘강약약강’의 전형을 소름 끼치게 소화했다. 이어 시즌3에서는 타노스의 마약을 훔쳐 약물에 의존한 채 극한의 게임을 버텨내는 인물의 광기와 금단 증세, 그리고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 폭주까지 밀도 높게 그려내며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앞서 ‘살인자ㅇ난감’과 ‘오징어 게임’을 접한 글로벌 팬들 사이에서는 현실적인 악역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재활용도 힘든 쓰레기 캐릭터를 너무 진짜같이 연기한다”는 유쾌한 비난과 극찬이 동시에 쏟아졌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로 그를 기억하던 시청자들은 그의 완벽한 두 얼굴에 즐거운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스틸. 사진=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스틸. 사진=MBC

또한 2026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리고’에서는 기존의 악역들과 또 다른 ‘방울’ 역을 맡아, 두려움과 믿음, 사랑으로 빚어진 독특하고 비전형적인 수호자 캐릭터를 선보이며 해외 매체와 글로벌 시청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예전에는 표현하고 재미를 쫓았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연기하는 척을 안 할 수 있지?’에 집중해요. 매 작품 들어갈 때마다 연기를 처음 하는 기분입니다.”

상업영화 첫 주연작 ‘타짜4’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 136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이지만, 정작 노재원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한없이 몸을 낮춘다. 함께 호흡을 맞춘 선배 변요한이 “너는 앞으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 의무가 많은 배우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그는 자신의 성취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노재원. 사진=CJ ENM
노재원. 사진=CJ ENM

놀라운 점은 가장 물이 들어온 이 시점에 그가 선택한 차기작이 화려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1인극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극적인 악역 대신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평범한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 그리고 배우로서 더 넓은 시야를 갖추기 위해 다시 연기의 본질인 무대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이다. 심지어 더 다양한 역할과 로맨틱 코미디까지 소화하기 위해 현빈과 변요한을 보며 생애 처음으로 피부과와 운동 등 외모 관리까지 시작했다는 그의 고백은 유쾌하면서도 사뭇 진지하다.

결핍과 열등감마저 예술적인 서스펜스로 승화시키는 배우. 매번 관객의 예상을 반박자씩 비껴가며 기분 좋은 뒤통수를 치는 노재원의 ‘반칙 같은 연기’는 이제 막 진짜 전성기의 막을 올렸을 뿐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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