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다. 동명의 야구 에세이집이 출간되기까지 했을 만큼 널리 쓰이는 말이다. 야구계에선 일종의 저주로 통한다.
이승엽 신임 두산 감독은 좋은 야구인이기에 앞서 '좋은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바른 행동으로 대하는 예의가 몸에 박혀 있는 사람이다. 전형적으로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 야구인이라 할 수 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이 SSG와 연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하지만 이승엽 감독을 직접 겪어 본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인간 이승엽'이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야구하는 이승엽'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하지 않는 근성으로 뭉쳐 있다는 평가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감독은 결단을 내리는 자리다.
크게는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선발 라인업을 짜고 선수 교체도 해야 한다. 승부처라고 생각되는 장면에선 과감하게 대타나 대수비, 대주자를 기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정에 이끌려서는 이런 부분을 칼 같이 적용하기 힘들다. 모든 선수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프로야구는 더욱 그렇다. 감독의 결단이 무뎌지면 선수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어떤 순간에도 정확한 판단과 냉정한 조치가 뒤를 이을 때 공정한 팀 운영이 가능해 지고 팀 운영이 바르게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신뢰를 얻게 된다.
강팀은 바로 그런 선수들의 신뢰 위에서 자리 잡게 된다.
맥 없이 사람만 좋은 감독은 결국 그 정 때문에 무너지게 된다. 칼 같은 선수 기용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구인 이승엽'은 이런 걱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칼 같은 선수단 운영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승부욕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야구를 잠시 떠나 예능에 몸을 담았을 때도 이승엽의 승부욕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최강 야구'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한 은퇴 선수는 "처음엔 그저 은퇴한 선수들이 모여 취미 생활 하는 프로그램으로 여겼다. 하지만 가서 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그 중 가장 진심이었던 사람이 '감독 이승엽'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경기에 정말 진심이었다. 고등학교 선수들을 상대할 때도 절대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경기를 패햇을 때 가장 크게 낙담한 것도 이승엽 감독이었다. 워낙 리더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끌고 가니 모두가 진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좋은 사람 정도로만 여겼엇는데 엄청난 승부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 감독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선수들도 진심이 됐다. 두산에서도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산 감독을 맡은 뒤 "내가 다시 야구로 들어왔구나. 한 때는 너무 싫기도 했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야구로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이승엽 감독이다.
그의 승부욕은 남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크게 빛을 발했다. 골프 예능에 나가면서도 "모처럼 다시 내 승부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었던 이승엽 감독이다.
'인간 이승엽'은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야구인 이승엽'은 또 다른 인물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지고 싶지 않아 하는 승부욕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걱정을 덜어 두어도 좋을 만큼의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지도자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 했다. '야구인' 이승엽의 승부욕이 제대로 발휘될 때 두산은 다시 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야구인 이승엽'의 승부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