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구단들은 한 해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투자한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울산 HD FC, 전북 현대는 한 해 예산만 300~400억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 시·도민 구단 가운데 한 해 예산이 100억 원 이상인 팀도 있다”고 했다.
K리그 구단은 자선 사업을 펼치는 비영리 단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K리그의 투자 대비 수익률이 대단하진 않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K리그는 여전히 모기업이나 지자체 예산에 기댄다. 구단은 올해 수익이 얼마든 존폐를 논하지 않는다. 한 시즌 성적에 따라서 내년도 살림이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가 결정될 뿐이다.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중요한 건 오직 성적이었다. 승점 1점이 팬 1명보다 중요했다.
K리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홈경기 관중을 최대한 유치하기 위해 땀 흘린다. 오늘의 홈경기 관중 수를 경기 결과보다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구단 관계자들이 상당하다.
K리그1 기업 구단 관계자는 “한국 프로축구는 여전히 하나의 산업으로 보긴 어렵다”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도기”라고 말했다. 앞의 관계자는 이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레알 마드리드나 맨체스터 시티 등 명문 구단도 축구단만으로 구단을 운영하진 못한다. 모기업의 지원, 여러 스폰서, 중계권료, 관중 수입 등을 더해 구단을 운영한다. 구단 프런트는 홈 경기 입장권, 상품 개발 및 판매 등에 집중한다. 최근 여러 구단이 경기 관람석의 다양화, 맥주, 팝콘, 나초 등의 상품 개발 에 힘쓴다. 이런 노력이 더 좋은 팀, 더 좋은 리그를 만드는 데 힘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시·도민 구단 프런트의 업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한 사람이 3~4가지 업무를 병행한다. 저렇게 일한다고 해서 두둑한 월급이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도민 구단 관계자는 “우리 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가는 걸 꼭 보고 싶다”면서 “여러 업무를 맡는다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축구와 구단을 향한 애정을 갖고 버틴다. 그리고 ‘더 잘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감독은 구단 핵심 중의 핵심 인력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최근 방송인 유재석 씨가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광주 FC 이정효 감독을 언급했다”면서 “이 감독이 광주를 대표하는 인물이란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감독은 선수단하고만 소통하지 않는다. 프런트와도 끊임없이 협업한다. 세계 어느 리그든 잘 나가는 팀엔 공통점이 있다. 코칭스태프, 선수단, 프런트, 팬이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는 거다. 감독은 코칭스태프, 선수단, 프런트, 팬과 모두 소통하며 팀을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앞의 관계자의 설명이다.
4월 2일. 대한축구협회(KFA)는 2024년 제5차 전력강화위원회를 열었다. KFA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정해성 위원장은 관련 내용을 브리핑하며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를 11명으로 추렸다”고 전했다.
국내 지도자 4명, 국외 지도자 7명이다. 정 위원장은 “먼저 국외 지도자 7명에 대한 면담을 비대면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K리그 현직 감독들이 다 포함됐다. K리그 현직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을 때 ‘괜찮다’고 표현하는 데는 위험 부담이 있다. K리그 감독이 시즌 중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 소속팀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다. 이 부분은 KFA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 K리그를 향한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정 위원장의 발언이다.
외국인 감독 선임 가능성은 매우 낮다. KFA는 천안 축구종합센터 건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여기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코치진에게 지급할 위약금도 있다.
정 위원장은 “5월 내로 새 감독 선임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K리그 감독이다. 정 위원장은 “국가대표팀 코치 시절을 떠올려 보면 대표팀은 한국 축구를 위한 것이다. 명예로운 자리”라고 했다.
K리그 감독을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빼간다면 최소한 위약금은 지급해야 한다. 국외 감독에겐 막대한 연봉은 물론 위약금까지 확실하게 챙겨주면서, 내국인 감독은 제값도 주지 않은 채 활용하는 건 부당한 처사다. 현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오르내리는 내국인 가운데 연봉 10억 원 이상인 이들이 있다.
KFA가 내국인 감독을 선임할 것이라면 철저하게 비즈니스여야 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면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축구를 위한 길이며, 국가대표팀 감독의 명예를 지켜주는 일이다.
KFA가 ‘한국 축구를 위한다’는 말로 K리그 구단 감독을 빼간다면, K리그는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울산 홍명보 감독은 구단 제작 유튜브 다큐멘터리 ‘푸른파도2’에서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팬들은 그 결과 하나를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들이야. 여러분을 좋아하는 사람들.”
K리그(1·2)는 2023시즌 3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유료 관중을 집계한 2018년 이후 처음이다.
경기당 평균 1만 733명. 서울은 평균 2만 2천633명의 관중을 불러 모으며 한국 프로스포츠 역대 최다 평균 관중 기록을 세웠다.
K리그는 1983년 출범 때부터 늘 희생을 강요받았다. 한국 축구를 위해 대승적인 선택을 수없이 반복했음에도 늘 침묵했다. 그 침묵이 ‘국가대표팀을 위해서라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만들었다.
K리그엔 수백만 팬이 있다. 더 좋은 팀, 멋진 리그를 만들고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수많은 프런트가 있다. 팀 핵심 중의 핵심인 감독을 믿고 따르는 코치진, 선수들도 있다. 모기업은 그런 팀을 믿고 한 해 수백억 원을 지원한다.
국가대표팀을 위한 K리그 구단의 희생.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