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기존의 만삭 화보는 대개 비슷한 공식 속에 존재해 왔다.
순백의 가벼운 쉬폰 드레스, 파스텔톤의 따뜻한 조명, 그리고 배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가리며 짓는 정숙하고 수줍은 미소. 한국 대중문화 속에서 임산부의 몸은 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자 ‘신성하고 조용한 모성’이라는 틀 안에 가려져 있었다. 임신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체중 증가, 몸 곳곳의 튼살, 거칠어진 피부 변화는 화보 속에서 보정 프로그램이나 드레스 스커트 뒤로 숨겨야 할 ‘결점’처럼 처리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 플러스사이즈 모델이자 크리에이터인 ‘명예영국인’ 백진경이 패션 매거진 보그 코리아와 함께 공개한 만삭 화보는 이 완고한 화보 공식에 균열을 일으키며 강렬한 파문을 던졌다.
기존 만삭 화보가 임산부를 순응적이고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냈다면, 백진경의 화보는 대담함과 주체적인 에너지 그 자체였다. 오버사이즈 화이트 셔츠의 단추를 가슴 아래까지 과감히 풀어헤친 채 블랙 언더웨어와 하이힐을 매치하고, 상의를 탈의한 채 캣아이 선글라스와 로우라이즈 데님 팬츠를 걸친 모습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해체한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배와 팔 전반에 새겨진 나비와 호랑이 타투, 그리고 임신으로 인해 배에 선명하게 남은 튼살이었다. 과거의 화보 제작자들이 정성스레 지워냈을 이 흔적들을 백진경은 흑백과 컬러 프레임 속에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던 ‘완벽한 미(美)’라는 관습적 시선을 완전히 뒤집은 시도였다. 임산부의 몸 역시 섹시하고, 힙하며, 하이패션의 주체적인 비주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3년간의 난임을 극복하고 찾아온 소중한 생명 앞에서 백진경은 “106kg 몸무게 세 자리 만삭 임산부의 보그 화보”라며 스스로 자신의 체중을 당당히 공개했다. 숫자 ‘106’과 ‘튼살’은 사회가 요구해 온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는 벗어난 요소일지 모른다. 하지만 백진경은 이를 결점이 아닌, 생명을 품어내는 과정에서 얻은 숭고한 훈장이자 자신만의 개성으로 전환시켰다.
“세상은 넓고 내가 못 할 거라곤 없더군요”라는 그녀의 짧은 소회는, 단순한 만삭 촬영을 넘어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보디 포지티비티’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을 앞두고 동료 산모들에게 전한 연대의 메시지 또한 많은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자신을 향한 무분별한 외모 평가 악플에 정면으로 쿨하게 맞서던 당찬 태도가 이번 화보의 진정성에 힘을 실어준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백진경의 이번 시도는 다소 생소하고 파격적이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비난이 아닌 뜨거운 찬사와 응원이었다. 대중이 이번 화보에 열광한 이유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다운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선언한 한 여성의 모습에서 깊은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백진경의 보그 만삭 화보는 단순한 한 크리에이터의 화보를 넘어, 여성의 몸과 모성을 바라보는 한국 대중문화의 미학적 지평을 한 단계 넓혀놓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세 자릿수 몸무게여도, 튼살이 새겨져 있어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다는 선언. 백진경이 남긴 이 당당한 D라인의 궤적은 앞으로 수많은 여성들에게 자기 몸을 긍정할 수 있는 유쾌하고 강렬한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