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식. KBO리그를 대표했던 불펜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리그 통산 750경기에 나서 116개의 홀드를 기록했고 롯데 자이언츠 좌완 불펜 가운데 가장 높은 WAR을 남겼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해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20년 넘게 한국 야구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가 돌연 바다를 건넜다. 목적지는 일본프로야구(NPB) 라쿠텐 골든이글스다.
그는 궁금했다. 일본은 어떻게 끊임없이 좋은 투수를 만들어낼까. 무엇이 한국과 일본 투수의 격차를 만드는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선수도, 코치도 아닌 ‘연수생’ 강영식으로 돌아갔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곳에서 강 코치가 목격한 건 단순한 훈련 방식의 차이가 아니었다. 캠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달랐던 준비의 기준,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선수들의 태도, 훈련량을 바라보는 관점, 데이터를 소비하는 방식까지. 같은 야구를 하고 있지만 성장에 접근하는 방법은 달랐다.
강 코치가 주목한 건 일본 야구가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태도였다. ‘스스로 성장하는 선수’. “30구를 던졌으니 이제 끝”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30구를 만들 때까지 고민하고, 데이터를 기록하며 다음 훈련을 스스로 설계하는 것.
강 코치는 그 과정에서 한국 야구가 놓치고 있던 질문과 마주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강 코치에게 두 나라 야구의 차이점을 들어봤다.
어떻게 일본 야구 연수를 선택하게 됐습니까?
일본 야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일본은 좋은 투수들이 왜 계속 나올까?’. 특히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다나카 마사히로, 마쓰이 유키 같은 투수를 어떤 방식으로 육성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본 선수들의 완성도는 이미 상당히 높아요. 미국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은 투수력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요. 일본은 어떻게 좋은 투수를 계속 만들어내는지, 그 디테일을 직접 보고 싶었어요.
일본에서 흔쾌히 받아줬습니까.
개인 자격으로 연수받는 게 원래 쉽지 않아요. 삼성 코치 시절 일본에서 라쿠텐 단장님을 만났을 때 “기회가 된다면 훗날 연수를 받고 싶다”라고 진지하게 말씀드렸던 게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두려움은 없었나요.
낯선 문화와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연히 두려웠죠.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일본어를 전혀 못 했어요. 캠프 합류 한 달 전부터 인사말만 계속 외웠습니다. 함께 호흡하고 배우려는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효과가 있었나요.
캠프에서 “한국에서 온 연수생 강영식입니다. 여러분의 노하우와 지혜를 최대한 배우러 왔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연수생이 되겠습니다. 얼마든지 저를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통역 없이 일일이 인사드렸어요. 그때 그분들도 제 진정성을 알아봐 주신 것 같습니다.
일본 캠프는 어땠습니까.
일본 캠프는 ‘몸을 만들어 시즌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에요. 선수들에게는 ‘똑같이 준비하면 다시 지난 시즌과 같은 성적밖에 못 낸다’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최고 구속이 150km/h인 투수라면 캠프 첫날부터 145~148km/h를 던질 수 있는 몸으로 합류해요. 캠프에서는 피칭 디자인이나 신구종 장착, 커맨드 정밀화처럼 경기력을 한 단계 높일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합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캠프에 들어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시즌을 준비하는 출발점 자체가 다른 겁니다.
일본 야구는 곧 ‘혹사’라는 오해가 많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틀렸다고요?
맹목적인 혹사가 아니라 ‘결핍’이 만든 집요함이 핵심이에요. 일본 투수들이 왜 여전히 많은 공을 던지는지 그 본질을 봐야 합니다. 캠프 첫날 투수들을 보고 가장 놀란 것도 여전히 투구량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불펜투수들도 연투를 하고, 연습 과정에서 40~50구씩 추가로 던지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러다 다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코치들에게 질문도 많이 했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자신들의 투구를 한 것’이라고 말해요. 스스로 몸 상태를 확인하고 판단해서 내린 선택이라면 말리지 않는다는 거죠. 일본 선수들에게는 자신의 성장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일종의 결핍이 있어요. 그게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고, 일관된 습관과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한국은 불펜 투구를 할 때도 ‘오늘 할당량 30개를 채웠으니 끝’인 경우가 있어요.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숫자를 채우면 끝나는 거죠. 일본에서는 그런 선수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30개를 던지는 것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구위와 궤적의 30개’를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거예요. 결국 선수 스스로 마음과 태도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방향성과 충분한 훈련량이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네요.
그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관리는 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선수는 좋은 방향성을 찾았다면 그다음에는 무조건 ‘양’이다. 해보지도 않고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 어떻게 아느냐.”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일본 선수들은 그 과정을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투구뿐 아니라 컨디셔닝과 각종 트레이닝 등 개인 훈련량이 기본적으로 많습니다. 준비 과정은 마운드 밖에서 하고, 결과의 일관성을 마운드 위에서 확인하는 겁니다. 일본 투수들은 불펜 투구 전부터 자신이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정확한 계획을 갖고 들어가요. 투구 템포나 긴장감도 다릅니다. 똑같은 과정의 지루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긍정의 스파크’를 만들려고 합니다.
데이터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장비의 유무보다 생산된 데이터를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중요해요. 라쿠텐은 훈련장에 각종 측정 장비가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고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이뤄집니다. 구단 앱으로 상세 분석 리포트가 전송되면 선수들은 그걸 확인하고 코치진과 디렉터에게 다시 질문해요. 자신의 판단과 결과, 감정, 과정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꾸준히 기록합니다.
대단합니다.
일본 대표팀과 라쿠텐 마무리 투수로 활약 중인 후지히라 쇼마는 자신의 투구 일지를 항상 손에서 놓지 않더라고요. 그런 기록이 계속 쌓여야 자신만의 ‘야구 주머니’가 생기는 거죠. 한국은 A플랜이 흔들리면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겁니다.
요즘 야구계의 최대 관심은 역시 ‘구속 혁명’입니다.
일본에서도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같은 투수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속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라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투구 동작만 바꾼다고 구속이 빨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체계적인 트레이닝과 신체 성장이 우선이라고 봐요. 가동성, 유연성, 근력, 순발력, 근지구력 같은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훈련합니다. 많은 훈련과 시도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에 공을 손에 쥐는 시간도 길 수밖에 없어요. 감각을 익히고 정확하게 던진다는 야구의 기본 개념을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해하고 있는 거죠.
한국은 잘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한국도 ‘빠르게 던지는 훈련’은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구 훈련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다양한 드릴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다듬으면서 오차를 줄여나갑니다. 굉장히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계속해요. 캐치볼을 포함해 공을 던지는 여러 동작에서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감각을 키우는 게 우선입니다. 결국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투구의 리듬과 타이밍, 감각을 유지하고 ‘커맨드의 기본기’를 쌓아가는 게 핵심이에요.
결국 문화의 차이일까요. 시스템의 문제일까요.
한국 야구에는 아직 이런 문화와 시스템이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구단과 지도자가 데이터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선수에게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 그 과정이 체계적으로 쌓여요. 선수들도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다음 계획을 함께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그 과정이 지속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거죠. 한국은 구단이 선수를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고, 선수들 역시 능동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핵심만 요약해 주신다면요.
바로 떠오르는 건 지속성, 꾸준함, 데이터의 체계적인 활용, 그리고 철저한 준비 과정입니다.
준비 과정이라.
사실 모두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죠. 지루하고 고된 시행착오를 받아들이는 태도, 당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이어가는 힘이 일본 선수들에게서 가장 크게 느껴졌어요. 야구를 대하는 선수와 팬들의 태도도 달랐습니다. 일본은 선수가 부진해도 ‘간바레(힘내라)’라는 격려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선수들 역시 프로선수로서 ‘야구의 도’를 지키려고 합니다. 특정 선수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희생번트, 도루, 안타 모두를 야구의 한 부분으로 존중해요. 결국 야구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의 차이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베이스볼코리아 김원익 에디터(전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