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과 코리아컵에서 모두 트로피를 차지하며 명가 재건에 속도를 높인 전북현대가 또 한 명의 감독을 맞이했다.
전북은 24일 제10대 사령탑으로 정정용 감독을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거스 포옛 전 감독 체제에서 전북은 ‘더블(2관왕)’을 달성했다. 하지만 구단 외적 문제가 불거지며 포옛 감독과 결별을 알렸다. 포옛 감독은 마우리시오 타리코(등록명 타노스) 수석코치에 씌워진 인종차별주의자 낙인으로 인해 고심 끝에 지휘봉을 반납했다. 지난 6일 광주FC와 코리아컵 결승전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겨울 휴식기를 맞이한 전북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새 시즌(2026시즌) 팀을 이끌 사령탑 선임에 나서야 했기 때문. 시즌 구상과 전지훈련을 위해서는 12월 내로 인선 작업을 마쳐야 했다.
전북의 최종 선택은 정 감독이었다. 정 감독은 지난해에도 전북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다. 이미 K리그에서 실력을 증명했다. 2023시즌 도중 김천상무에 부임해 팀의 승격을 이끌었고, 2024시즌 K리그1 첫 해 3위라는 성적을 써 내렸다. 2025시즌에는 전북의 압도적인 선두 질주에도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며 2시즌 연속 1부에서 3위를 기록했다.
김천이 주기적으로 선수가 바뀌는 국군체육부대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또,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선발해 원팀으로 주무르는 리더십까지 고려한다면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북은 K리그를 대표하는 빅클럽이다. 현역 국가대표부터 국가대표 출신이 팀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정 감독은 김천의 전성기를 열며 다수의 선수를 국가대표 차출을 이끌었다. 선수 육성은 물론, 선수단 관리 측면에서도 전북에 부합한 부분이 많은 셈이다.
정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폴란드 U-20(20세 이하)월드컵이다. 당시 18세의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을 앞세워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이 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 무대를 밟은 유일한 기록이다.
이후 2020년 서울이랜드의 사령탑으로 부임해 첫 프로 무대에 도전했으나 3번째 시즌 승격에 실패하며 짐을 싸야 했다. U-20 월드컵 준우승과 상반된 정 감독의 실패 사례다.
하지만 정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구파’라는 축구계 소문처럼 자신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보완하는 데 매진했다. 다시 한번 감독으로서 도전할 준비를 마친 뒤 김천에서는 훨훨 날아오르며 다시 한번 지도력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전북이 정 감독과 함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전북은 2024시즌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지는 부진 속 2025시즌을 앞두고 구단 철학과 방향성을 재정립했다. 단기적인 성과와 성적보다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전북 구단만의 고유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집중했다.
‘Progressive Pioneer(혁신적인 개척자)-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선도하는 리딩클럽’이라는 슬로건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더 긴 호흡으로 전북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함과 체계성을 갖춰가는 것. 단순히 우승을 차지하며 성적에만 집중하는 구단이 아닌 대중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전북 에너지’를 나눠야 한다는 게 이도현 단장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감독과 선수단이 하나의 큰 축을 자리 잡고, 구단 구성원들이 함께 힘이 더해져야 한다. 포옛 감독의 선임 과정은 구단의 새 철학과 부합했다. 포옛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를 거치며 여러 나라의 언어와 문화 차이 극복했다. 축구뿐만 아니라 전북이 갖고 있는 가치관, 접근 방식, 태도 등에서 서로 끌림이 강했었다.
정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전북이 바라보는 이상과 더블을 이룬 과정에서 ‘감독-단장-디렉터’로 이어지는 삼각 공조 체제를 비롯한 구단과 소통 과정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도현 단장은 MK스포츠와 전화 통화를 통해 “전북의 새로운 철학과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 감독은 구단이 정립하고 있는 이상향에 부합하는 적임자”라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이어 “정 감독의 지도력, 리더십 등 복합적인 요소가 전북과 어울렸다. 구단이 바라는 지향점을 두고 대화를 나눴고, 그동안 김천에서 보여준 리더십, 지도력 등도 전북과 잘 융합될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2026 시즌은 전북과 정 감독에게 부담이 클수 밖에 없다. 전북은 포옛 감독 체제에서 1년 만에 명가 재건 속도를 높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임이 된 정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는 상황이다. 다시 세운 기틀 위에 골조를 얹어야 한다. 이제 결과는 물론, 과정까지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김영훈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