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만의 귀환’과 ‘90대 현역’의 투혼...신구·박근형이 전한 ‘거장의 품격’ (종합) [MK★현장]

“연기는 나의 동력”...신구·박근형, 연극 ‘베니스의 상인’으로 전하는 울림

“무대에 오르는 원동력이요? 궁금하실 것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게 즐겁고 보람 있으니 하는 것이지. 나이가 드니 몸도 제 뜻대로 안 되고, 이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함에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더라고요. 다만 아직 남아있는 힘이 있으니 동력으로 삼아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배우 신구)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으며, 건강상의 그 어떤 제약도 두 연기 거장 앞에서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연기를 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이 되기에, 혹은 연기를 배우고자 하는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베니스의 상인’ 무대에 오른 신구와 박근형은 지금도 이어지는 연기 열정으로 먹먹한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12일 서울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각색·연출 오경택과 배우 신구, 박근형, 이승주, 카이, 최수영, 원진아, 이상윤, 김슬기, 김아영, 최정헌, 박명훈, 한세라가 참석했다. / 사진 = 금빛나 기자
12일 서울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각색·연출 오경택과 배우 신구, 박근형, 이승주, 카이, 최수영, 원진아, 이상윤, 김슬기, 김아영, 최정헌, 박명훈, 한세라가 참석했다. / 사진 = 금빛나 기자

12일 서울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연극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각색·연출 오경택과 배우 신구, 박근형, 이승주, 카이, 최수영, 원진아, 이상윤, 김슬기, 김아영, 최정헌, 박명훈, 한세라가 참석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을 바탕으로 법과 자비·복수와 선택의 충돌을 중심에 둔 연극 ‘베니스의 상인’은 고전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인물 간의 감정과 대립을 선명하게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희극으로 시작해 비극의 질문으로 끝나는 법정극’을 핵심 문구로 내세워 고전의 재해석에 나선 이번 작품은 오경택 연출 특유의 리듬감 있는 언어와 밀도 높은 심리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현대적인 공감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오경택 연출은 “‘베니스의 상인’은 흔히 희극이라고 말하지만, 현대에는 문제극이라고 분류하는 극이다. 희극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비극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샤일록은 유대인 차별과 혐오로 인해 발생한 복수심을 품는 인물이다. 안토니오의 생명을 앗으려는 샤일록의 행위가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서 과거에는 그를 악인으로 치부하고 ‘선과 악’으로 이분화했지만, 이를 동시대적 관점으로 봤을 때,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샤일록을 마냥 악이라고 보는 것이 과연 희극일까 싶었다. ‘베니스의 상인’은 ‘자비’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고전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여전히 갈등과 혐오의 다툼이 지구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을 이어간 오경택 연출은 “‘베니스의 상인’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님에도 선택권 없음에 대한 공정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며 “이번에 제가 직접 각색을 했다. 샤일록과 딸 제시카를 중심으로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샤일록의 인간적인 모습과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동기를 강화하는 동시에 원작의 흐름과 본질은 고스란히 유지했다. 평소 보던 공연이나 영화 속 샤일록보다 더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로 보강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샤일록’이라는 인물에 대해 선으로도 악으로도 볼 수 없다고 말한 오경택 연출이지만, 현시대 상황을 두고 ‘유대인 차별’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기도 한다. 시의적으로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가운데 “샤일록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정의한 오경택 연출은 “샤일록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고, 어떤 상황이나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공정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선택적 공정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이중성과 양가성, 즉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감정과 욕망을 겪고 있는 다양한 군상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무대 위의 상황을 가지고 무대 밖에서도 고민하게 만드는 연극을 좋아한다. ‘베니스의 상인’을 흥미롭게 보다가 가슴속에 질문 하나를 품고 가셨으면 하는 연출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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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바사니오’ 역의 이상윤은 연극 ‘라스트 세션’, ‘세일즈맨의 죽음’,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을 통해 꾸준히 관객과 호흡해 왔으며 이번 작품으로 원캐스트에 도전한다. “연기의 대가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한 이상윤은 원캐스트 출연 계기에 대해 “박근형 선생님으로부터 연극은 한 팀으로 구성해서 해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그 장점에 대해 듣기만 하다가 작년 ‘세일즈맨의 죽음’ 지방 공연 당시 상대 배우의 사정으로 한 달간 혼자 극을 이끌어본 적이 있다. 그때 생기는 엄청난 호흡을 경험하며 한 팀으로 이뤄지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박근형 선생님이 혼자 샤일록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욕심이 생겼다. 감사하게도 원캐스트로 임하게 되었는데, 연습량이 늘어나는 만큼 상대 배우와 티키타카를 하며 배우는 디테일이 생겨 흡족하다”고 밝혔다.

현역 최고령 배우 신구는 연극 ‘불란서 금고’에 이어 ‘베니스의 상인’으로 연기 열정을 불태운다. 1936년생으로 올해 91세가 된 신구는 2022년 건강 악화로 심부전증 진단을 받고 심장박동기 삽입술을 받은 바 있다. 현재 가슴에 인공 심장 박동기를 삽입한 상태임에도 무대 위 열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90대’이기 이전에 ‘배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신구는 건강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저를 찾아주는 극단에서 공연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해왔고, 이번에도 제가 좋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며 “나이가 드니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재판관의 동선은 크지 않다. 좋아하는 동료들과 리허설을 하고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내가 할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력도, 청력도,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연기를 향한 신구의 진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무대 위로 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궁금해할 것 없다. 내가 하는 게 즐겁고 보람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밝힌 신구는 “세월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힘이 있는 한 이를 동력 삼아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샤일록 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박근형은 약 67년 만에 다시 같은 역할로 돌아왔다. “어느덧 6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며 젊은 날을 회상한 박근형은 “학생 시절에는 마음 가는 대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진정한 배우이자 예술가로서 샤일록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한세라는 대선배들과 함께하는 소감에 대해 “저희 집은 두 선생님과 공연한다는 소식에 경사가 났다. 부모님과 동료들의 관심이 뜨거워 이미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라며 “처음에는 통쾌한 결말이라 생각했는데, 박근형 선생님의 샤일록을 보니 저도 모르게 연민이 느껴지더라. 미웠다가도 안쓰러운 인간의 양가적인 면이 풍부하게 담긴 연극이다. 볼거리가 많으니 여러 번 보셔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베니스의 상인이자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건 ‘안토니오’ 역에는 이승주와 카이가 캐스팅되어 고독과 우정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지혜로 법정의 흐름을 뒤바꾸는 ‘포셔’ 역에는 최수영과 원진아가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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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제시카’ 역에는 김슬기와 김아영이 더블 캐스팅되어 서로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제시카와 함께 자유를 꿈꾸는 ‘로렌조’ 역은 최정헌이 맡았으며, 재치 있는 입담 속에 진실을 담아내는 ‘랜슬럿’ 역에는 박명훈과 조달환이 연기한다.

포셔의 조력자 ‘네리사’ 역의 한세라, 샤일록의 친구 ‘투발’ 역의 이원승, 안토니오의 친구 ‘살레리오’ 역 박민관과 ‘솔라니오’ 역 조한준, 구혼자 ‘모로코 왕자’ 역 이지수와 ‘아라공 왕자’ 역 이종영까지 가세해 빈틈없는 무대를 완성한다.

이승주는 “고전 희곡을, 그것도 두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다. 안토니오는 햄릿보다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인물이라 선명하면서도 모호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무대 위 이야기가 무대 밖의 삶에 질문을 던지는 이 희곡의 힘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특기할 점은 ‘연극 내일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된 앙상블들(박승재, 엄현수, 김윤지, 이준일, 주홍)이다. 신구·박근형의 기부 공연으로 조성된 기금을 바탕으로 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된 신예들은 두 거장과 호흡하며 살아있는 연기를 몸소 익힐 기회를 얻는다.

두 거장은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무대 위에서 받은 사랑과 환호를 어떻게 되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고생하는 어린 배우들을 위한 환경 마련이었다”며 “저희가 처음 입문했을 때 갈구했던 가르침과 혜택을 젊은 청년들이 누리며 활기차게 활동하기를 바란다. 전통극의 기초를 알고 실연에 임한다면 더 좋은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연극 ‘베니스의 상인’은 오는 7월 8일부터 8월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종로6가(서울)=금빛나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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