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33·안하영)이 ‘4대째 의사 집안’을 자랑했다가 역풍을 맞은 가운데,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증조부 안상호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파 후손’ 의혹에 휩싸였다. 논란이 커지자 소속사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는 10일 MK스포츠에 “현재 온라인상에서 거론되고 있는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는 맞다”면서도 “친일 행적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안상호가 친일 행적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체적인 과거 기록들과 관련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다.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논란이 들끓은 가운데, 안상호의 과거 행적에 대한 관심도 높다.
안상호의 친일설에 가장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부분은 1918년 12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다. 그는 ‘일선동화의 가정’(一鮮同化의 가정), 즉 ‘일본인처럼 생활하고 동화되는 것이 모범적이다’라는 사례로 기사에 실린 바 있다. 해당 기사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안상호는 “나도 지금 조선 옷은 한 번도 입지 아니하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며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집안에선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는다”고 ‘일본인화’ 된 점을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내선일체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매국 행위를 정당화한 핵심 친일 논리이다.
특히 1919년에는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자, 급히 진료했으나 끝내 구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인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해당 의혹은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학계에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안상호가 1916년 11월29일 대정친목회가 결성될 당시 안상호가 윤치호, 유병필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또한 친일 행적을 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역사자료에서는 대정친목회를 일제강점기 친일단체로 다룬다. 이후 이 단체는 다른 친일단체들과 함께 ‘내선융화’ 등을 내건 친일단체 연합에도 참여했다.
다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만큼, 친일 행적을 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며, 이와 관련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빛나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