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 이후 2년 만에 건강하게 온전히 한 시즌을 치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 그는 6개월 162경기의 대장정을 치르며 무엇을 배웠을까?
이정후의 2025시즌이 끝났다. 29일(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와 홈경기까지 150경기 치르며 타율 0.266 출루율 0.327 장타율 0.407 2루타 31개 3루타 12개 홈런 8개 55타점 10도루 기록했다.
구단 역사상 다섯 번째로 2루타 30개, 3루타 10개를 한 시즌에 기록한 타자가 됐다. 3루타 12개는 2012년 앙헬 파간이 기록한 15개 이후 구단에서 가장 많은 기록이다. 또한 11.6%의 삼진 비율로 리그 상위 6% 수준의 삼진 억제 능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2022년 이후 가장 많은 150경기를 소화한 것이다. 건강하고 온전하게 시즌을 치렀다.
그는 29일 경기를 마치고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전 시즌을 뛰었다. 한 시즌 뛰면서 느낀 점도 많았고, 배운 점도 많았다. 의미가 큰 시즌이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처음 경험해보고 느낀 것들이 많았기에 앞으로 야구를 하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될 거 같다”며 2025시즌이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빛과 어둠을 모두 경험한 한 해였다. 4월 초반 시즌 타율이 0.361까지 올라가며 뜨겁게 시작했지만, 6월 슬럼프를 경험하며 한때 타율이 0.240까지 떨어졌다. 이후 다시 반등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소속팀도, 본인도 기복이 심한 한 시즌이었다. 그는 “경기장에서는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다. 메이저리그는 한국보다 표현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야구는 팀 스포츠이고, 나 하나로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싫었다.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면서 표현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며 한 해를 돌아봤다.
“메이저리그라는 곳이 정말 큰 무대이고, 누구나 뛰고 싶어 하는 무대라는 것을 느꼈다”며 말을 이은 그는 “실력만으로 버틸 수 있는 리그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 이외에 환경이나 멘탈 이런 것이 중요시되는 곳이라는 것도 느꼈다”며 몸소 느낀 점에 대해 말했다.
특히 그는 멘탈적인 면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커리어 처음 경험하는 심각한 부진은 그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바닥을 찍어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안 좋았던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회복했다. 이렇게 야구를 하면서 시즌 중간에 엄청나게 힘들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6월에 안 좋았을 때는 ‘이러다 (타율이) 1할까지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야구를 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 심리적으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도 들었다“며 시즌 도중 느꼈던 감정을 털어놨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다시 일어섰다. 7월 이후 반등에 성공했던 그는 “거기서 다시 한번 치고 올라왔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생긴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감을 되찾는 과정에서 동료들의 모습은 큰 도움이 됐다. 이정후는 저스틴 벌랜더의 이름을 꺼냈다. “저 대단한, 미래의 명예의 전당감 선수도 힘든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을 봤다. 보통 잘했던 선수들은 과거 자기 모습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는 과거는 절대 보지 않고 지금 자신의 상황, 앞으로 해야 할 것만 생각하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다”고 털어놨다.
윌리 아다메스도 그에게는 배움의 대상이었다. “올해 쉽지 않게 시작했는데 결국 30홈런을 쳐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을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 힘들어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것들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들이다. 이정후는 “기술적인 문제는 내가 보완하면 되는 문제다. 누군가에게 가서 돈을 내고 배운다거나 이럴 수 있는데 멘탈적인 면은 옆에서 보거나 이러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돈 주고 배울 수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구단의 배려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틈틈이 그에게 휴식 기회를 주며 숨돌릴 틈을 마련해줬다. 이정후는 “9월 들어 경기를 나갔다 안나갔다 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구단에서 나를 배려해준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심리적으로 편해진 것도 있었다. 마무리를 잘하게 도와준 구단에 감사하다”며 감사를 전했다.
팀이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탈락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플레이오프에 나갔기에 조금 더 아쉬운 거 같다. 지난 두 시즌은 부상으로 빠져서 체감을 못 했는데 올해가 어떻게 보면 신인 시절 이후 처음으로 경기를 뛰며 이런 것을 경험한 상황이라 더 아쉽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딱 3승만 더하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 많은 경기가 지나간다”며 말을 이은 이정후는 “항상 보면 1~3승 차이로 진출에 실패하는 팀들이 나온다. 다 아쉬울 거라 생각한다. 내년에는 꼭 갔으면 좋겠다”며 분발을 다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낼 2026년의 이정후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항상 만족스러운 시즌은 없었던 거 같다”며 말을 이은 그는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지금보다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후반기 들어서 좋아졌기에 이를 잘 기억해 내년에는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욕심을 드러냈다.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을 신경 써야 할까? 그는 “힘의 차이”를 꼽았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파워’가 아닌 ‘지구력’의 문제다. “경기를 많이 치르면서 생기는 피로나 근육 손실 이런 것들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던 거 같다. 조금씩 힘이 빠진다는 느낌이 들고 스윙이 안 나오는 느낌이 들면 오버스윙을 하게 되고 좋지 않은 메카니즘으로 스윙할 때가 많았다”며 개선할 점에 대해 말했다.
이번 오프시즌은 재활 위주였던 지난 2년과는 다른 정상적인 오프시즌이 될 계획. 그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과 구단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맞아떨어졌다”며 이전과 다른 겨울을 예고했다.
하루 뒤 귀국길에 오르는 그는 한국에 돌아간 직후에도 훈련할 예정이다. “내가 체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몸이 지금 이렇게 남아 있을 때 며칠간 훈련을 하면서 내년 계획도 짤 생각이다. 휴식은 그다음에 취할 것”이라고 설명을 이었다.
밥 멜빈 감독은 “지난 2년간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꽤 많은 경기를 뛰었다. 그는 물론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가끔은 약간 피곤해 보였다. 내 생각에 내년에는 올해 경험이 있으니 더 나아질 것”이라며 이정후의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오프시즌 기간 체중을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조금 더 힘을 키울 계획이다. 올해도 몸을 키워서 왔지만 체중 손실이 있었다. 오프시즌 기간에는 올바른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 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이정후는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2025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는 “매일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많이 응원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사드린다. 시차가 있음에도 응원해주시고 이런 마음이 내게는 큰 힘이 됐다. 내년에도 잘 준비해 응원해주는 분들을 위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팬 여러분도 추석 명절과 연말 잘 보내시고 좋은 한 해 마무리하셨으면 좋겠다”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