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부산) 전성민 기자] 기다란 주걱이 응원가에 맞춰 나선형을 그리며 힘차게 움직인다.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노래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롯데 자이언츠가 연속 안타를 친 순간 주걱은 더욱 크게 동선을 그리며 빨라진다. 그는 야구장을 등진 채 자신과 한마음인 관중들을 마주보며 응원을 이끈다. 관중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은 주걱은 최고의 응원도구다.
11일 롯데와 두산 베어스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사직구장에 복장을 완벽하게 갖춘 요리사가 나타났다. 하얀 긴 모자에 하얀 조리복을 입은 그는 왼손에는 철판을 오른손에는 긴 주걱을 들었다.
상반신만 봐서는 100% 요리사다. 하지만 시선을 밑으로 돌리자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났다. 롯데 자이언츠 앰블럼이 그려진 양말을 신은 그는 1988년부터 25년간 롯데를 좋아한 열혈팬 김선호(33)씨였다.
김 씨는 “곰요리를 하기 위해 요리사로 변신했다”며 주걱과 철판을 흔들었다. 상대팀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그런 김씨의 이색 복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씨는 그동안 환자 복장 등 여러가지 의상 콘셉트를 야구장에서 선보였다. 그는 “다음번에는 산타복을 입어볼 생각이다"며 웃었다. 다음에는 어떤 옷을 입을까 하고 상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김선호씨는 롯데의 열혈팬이다. 롯데 경기를 보기 위해 1년에 평균 80~90번 정도 야구장을 찾는다. 택시 운전을 하는 그는 전국 곳곳을 누비며 일과 취미 생활을 함께 한다. 경기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김씨는 어느새 롯데팬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됐다.
남들과 다르게 요리사, 산타 등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씨는 변신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재미있는 복장을 입고 야구를 응원하는 것이 행복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나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선호씨는 야구장에서 자신과 주위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