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서든, 아무리 명석한 사람이라도 경험자를 이길 수는 없다. 그만큼 ‘경험’은 성장과 성공의 큰 자양분이 된다. 배우 진대연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를 통해 값진 경험을 했다. ‘처음’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붙었지만, 진대연은 자신만의 페이스로 새로운 세계로 뛰어 드는데 성공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죽은 아내에 대한 상처를 지닌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분)가 그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미우라 토코 분)와 만나 삶을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3월 일본에서 개최된 제45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8관왕을 차지한데 이어, 2022 영국 아카데미시상식과 2022 크리틱스초이스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2022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드라이브 마이 카’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진대연은 극중 가후쿠와 함께 연극 ‘바냐 아저씨’의 문예 감독으로 함께하게 된 인물 공윤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동안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대에 오를 기회가 적어졌던 상황에서 이는 오히려 진대연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됐다. 우연히 접하게 된 캐스팅 소식을 기회의 발판으로 삼은 그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감독과 배우들, 여러 스태프들과 호흡을 나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진대연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진대연
꿈 같던 현장을 경험하고 꿈 같던 해외 영화제의 레드카펫도 밟아보고, 국내 관객을 넘어 해외 관객과의 소통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진대연은 이를 발판 삼아 더 큰 무대로 뛰어들기 위해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매력이 훨씬 많은 배우 진대연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드라이브 마이 카’로 국내 관객을 만나고 있다. “항상 연극만 하다가 대사가 있거나 배역 명이 있는 영화는 처음이다. 이 영화 덕분에 GV를 많이 해봤다. 모든 게 처음이니까 너무 신기했다. 직접 만난 관객들이 질문도 해주시고 관심도 가져주시고 하니까 신기한 경험이었다.”
#.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는지? “영화 관련 사이트에 아무 정보 없이 ‘일본 영화인데 일본어 가능한 배우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었다. 제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니까 관심을 갖게 됐다. 주변 친구들에게 말하니 ‘사기다’ ‘하지 마라’라는 반대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제가 일본에 관심이 있었고,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으니 문을 두드려 봤다.”
#. 일본어는 연기를 위한 공부였을까?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일본어는 3년 정도 공부했다. 같이 공연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일본에서 활동했던 친구다. 그 친구가 팬이 많았는데, 그 친구를 보러 오면서 저도 같이 공연을 하니까 함께 응원해주셨다. 공연을 할 때마다 와주시는데 일본어가 안 되니까 좀 죄송하더라. 그러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됐다. 웬만한 대화는 가능한 정도다.(웃음)”
#. 일본 팬들과 대화가 될 정도의 실력이 됐을 때는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을 것 같은데? “맞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개봉한다고 하니 팬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팬들 덕분에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다 너무 좋았다.”
#.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읽어봤을까? “읽어봤다. 책이 처음에 나오자마자 사서 봤던 기억이 있다. 제목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지 않나. 당시 이성 친구가 없어서 제목만 보고 (끌려서) 샀던 기억이 있다. 영화 출연이 확정되고 나서 다시 보지는 않았다. 대본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 대본을 처음 봤을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오디션 중간에 받았었다. ‘너무 좋다’ ‘하고 싶다’ ‘꼭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밖에 없었다.”
#.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오디션을 갔었는데,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였다. 알고 나서는 더 욕심이 났었을 것 같다. “맞다. 1차 오디션 갔을 때 감독님과 화상 오디션을 했다. 그때 감독님이 누군지 알게 되고 주인공이 누군지를 알게 됐다. 2차 오디션을 위해 대본을 받았는데, 더 하고 싶어졌었다. 2차 오디션 때는 오디션 보는 대본을 달달 외워서 갔다. 그런데 갔더니 ‘외워 오셨더라도 대본을 보고 읽어줬으면 좋겠다. 대신 아무 감정 없이 읽어달라’라고 하더라. 그런데 다 외운 대본을 감정 없이 읽으려고 하니까 너무 안 됐다. 보면서 읽다가도 외워갔던 것 그대로 하게 되고 감정이 계속 들어가니까 ‘아니다. 보면서 읽어도 되니까 감정을 빼서 읽어 달라’고 하더라. 결국 두 번째도 안 됐다. 다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는데 감독님과 같이 오신 공동 작가님이 읽으시는 걸 보고 ‘저렇게 해야 하나?’라고 들은 걸 그대로 따라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다. 그때는 좀 감독님이 원하시던 방향의 다다르지 않았나. 완벽하지는 않았지만.(웃음)”
#. 오히려 이 오디션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너무 어려웠다. 안해보던 거니까 감정을 뺀다는 게 진짜 어려웠던 것 같다.”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의 처음 만남도 기억에 많이 남은데. “그때 첫인상이 잘 기억이 안 나는 게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첫인상은 오디션 때문인지 긴장을 해서 감독님 앞에 서 있다는 게 긴장이 됐는데, 엄청 편하게 해주시려고 하고, 영화 얘기 오디션 이야기보다 일상 이야기도 많이 물어보셨다.”
#. 오디션 보고 나왔을 때의 예감은 어땠는지? 좋은 예감을 느꼈나. “원래 2차 오디션이 끝이었는데, 예감은 없었다. 너무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 영화사에 있는 스태프가 연락 오셔서, ‘아직 확정은 아닌데 혼자 살아남으셨다’라는 연락을 받고 그때부터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다 갑자기 3차 오디션이 생겼다. 부부로 나와야 하는데 아내랑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 번 더 오디션을 볼 수 있겠냐고 갑자기 연락 오셔서 갔는데 모르는 여성분이 한 분 오셔서 ‘진짜 엄청 배우가 많았는데 혼자 살아남으셨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니 ‘와, 잘하면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3차 오디션 보고 결과 연락이 왔다.”
#. ‘윤수’는 어떤 인물이었나?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번에 미국 가서 감독님을 다시 만났을 때 원래 윤수 캐릭터가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고 하시더라. 엄청 프로페셔널해보이고 믿음 가는 가는 사람이었는데, 오디션 때 저를 보고 ‘이렇게 가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제가 너무 웃으니까 ‘이렇게 봐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신 거다. 그래서 감독님이 생각했던 거랑 다른 캐릭터가 된 거다. 이후에 촬영장에서도 ‘웃는 모습이 예쁘다’, ‘웃는 모습을 잃지 마라. 미소를 잃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연기할 때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면 최대한 웃음을 지어보자, 따뜻한 사람으로 비춰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윤수를 표현하려고 했다.”
#. 그렇게 완성된 윤수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하하. 지금 보면 아쉬운 것들 밖에 안 보인다. 배우가 눈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제가 눈을 많이 깜박거렸다. 감독님에게 말씀을 드린 적도 있다. 라식을 하고 나서 눈이 너무 시리니까 나도 모르게 눈을 깜박거렸던 거다. 그게 그대로 영화에 나온 장면도 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좀 더 잘할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 오디션에서 따뜻했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현장에선 또 어떤 감독이었나. “현장에서 더 따뜻하고 좋았다. 다들 그렇게 느꼈다. 배우들에게 직접 얘기하지는 않는데, 스태프들에게 절대 배우들 신경 쓰이지 않도록, 신경 쓰일만 한 걸 안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했다. 촬영이 끝나거나 다음 만나거나 그러면 ‘힘든 건 없었니? 쉬는 날엔 뭐했니? 잘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해’ 등의 말을 많이 건네주셨다. 항상 모두에게 신경을 써주셨다.”
#.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에 직접 참석한 점은 더욱 특별했을 것 같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잘하면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칸 영화제 때는 아예 생각을 안 했었는데, 자비를 내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희망을 가지게 됐다. 가기 전에 꿈도 한 번 꿨었다.(웃음) 실제로 아카데미 참석이 확정 됐을 때 진짜 너무 신기했다. 다신 할 수 없는 경험이니까.”
#. 꿈까지 꿀 정도로 기대됐던 아카데미 시상식에 직접 가보니 어땠나. “정신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왔으니까 너무 긴장만 해서 즐기지를 못했다. 배우들이 꿈꿀 수 있는 영화제라면 대종상, 청룡영화제도 대단한 건데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 그저 얼떨떨했다.”
#. 무대와는 또 다른 현장에서는 어떤 걸 배우고 경험했을까? “감독님이 연기 방법이 조금 다른 방법이지 않나. 연극만 할 때는 한 달, 두 달 모든 걸 만들어내서 연습한 대로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건데 감독님은 감정 없이 대본만 읽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연극만 했던 터라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방법이 현장에서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믿을 건 상대 배우와 현장 느낌인데, 그 부분이 좀 더 집중할 수 있게끔 했다. 감독님의 방법이 상대방에 대한 믿음, 상황에 대한 믿음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배웠던 것 같다.”
#. 29살이라는 나이에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사실 어렸을 땐 개그맨이 꿈이었다. 그땐 연기학원 보내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서 그렇게 살다가 제대하고 요리만 하고 살았다. 요리 때문에 강남에서 취직을 하게 됐는데, 그때 잊고 살던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지인 중에 연극 배우하시는 분이 계셨다. 연이 닿아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극단을 소개시켜줘서 극단에 들어갔다. 가서 연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이게 연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더 어렵구나 싶더라.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고, 무대에 서게 되고 그러면서 더 어려워졌다.”
#. ‘드라이브 마이 카’로 더 넓은 세상에 나오게 됐다. 요즘 근황은? “알바를 하고 있다. 오디션 준비하고 있고, 사실 이 영화를 계기로 뭔가 저도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일이 좀 더 들어오겠지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나도 잘하면 조금 더 영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그게 없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봐야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도 더 열심히 보고 알아보고 다녀야겠구나 싶어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준비하고 있다.”
#.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 중 특히 욕심나는 역할이 있다면? “코믹연기나 악역, 깡패 같은 그런 연기를 맡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런 연기가 들어온다면 좀 더 잘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웃음)”
#. 올해 목표는? “‘드라이브 마이 카’ 상영 종도 다 되어가고 오스카를 끝으로 GV도 끝났다. 무주산골영화제를 끝으로 공식일정이 끝날 거 같아 시원섭섭하다.(웃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화제성이 잊혀 지기 전에 다른 작품 연결됐으면 좋지 않을까. 일이 연결되지 않으면 나도 잊혀 지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서 힘들게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혼자 조급해지는 것도 있다.”
#. 그렇다면 ‘배우 진대연’의 매력을 어필해보자. ‘배우 진대연’만의 강점은? “남들에게는 관대한데 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것 같다. 뭔가 더 보여줄 게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좀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라는 반성을 하는 것? 강점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거다. 훨씬 더 보여드릴 게 많은 배우다. 배우 진대연은 따뜻함! 미소! 유쾌발랄! 하다는 것.”
#.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나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이제 시작이다! 정말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이때보다 행복한 추억이 생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 소중하고 행복했던 영화다. 과정이 너무 좋았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보단 과정이 더 소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