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생태계에서 ‘걸그룹 출신’이자 ‘이혼한 젊은 엄마’가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일종의 정해진 서사를 강요한다. 아픔을 딛고 조용히 눈물짓거나, 세상의 시선을 피해 은둔하며 반성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프레임이다.
하지만 최근 그룹 라붐 출신의 율희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이 견고하고도 폭력적인 편견의 틀을 보기 좋게 깨부수고 있다. 전 남편인 FT아일랜드 최민환과의 이혼, 그리고 양육권을 둘러싼 세간의 날 선 시선 속에서도 그녀는 숨지 않았다. 오히려 19금 숏폼 드라마에 뛰어들고, 틱톡 라이브 방송을 통해 대중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맹렬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가장 파격적인 행보는 단연 19금 숏폼 드라마 ‘사내에서는 정숙할 것’ 출연이다. 상의를 탈의한 남자 배우와의 아찔한 투샷 포스터가 공개되자 일부에서는 “양육권까지 포기해 놓고 파격 노출이냐”며 비난의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대중문화 기자의 시선으로 볼 때, 이는 단순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라 율희라는 개인이 살기 위해 선택한 고도의 ‘자기 리브랜딩’이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최민환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린 엄마’라는 수식어에 갇혀 있었다. 이혼 후 홀로서기를 결심한 그녀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그 무거운 과거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온전한 ‘성인 여성’이자 독립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숏폼 웹드라마라는 빠르고 트렌디한 시장, 그것도 치명적인 로맨스물은 그녀가 기존의 수동적인 이미지를 박살 내고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파괴력 있는 무기였다.
율희의 영리한 생존 전략은 뉴미디어 플랫폼 활용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녀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이른바 ‘왕홍(중국 인플루언서)’ 스타일의 메이크업과 화보로 비주얼적인 변신을 꾀했다. 우울하고 처연한 모습 대신, 가장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나아가 틱톡 등 1인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일명 ‘여캠’)을 진행하며 직접 팬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이는 기성 언론이나 방송의 악의적인 편집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왜곡 없이 세상에 전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등산하는 모습을 공개하며 “그저 묵묵하게 응원하고 싶다”고 담담히 심경을 전한 것 역시, 스스로 삶의 통제권을 쥐고 내면의 상처를 건강하게 치유해 나가는 과정의 일환이다.
물론 그녀의 파격적인 변신을 두고 대중의 시선은 엇갈린다. 여전히 과거의 잣대로 그녀의 선택에 도덕적 흠집을 내고자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스물아홉, 아직 너무나도 젊은 이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다. 화려한 아이돌로 데뷔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이혼이라는 뼈아픈 실패와 양육권 포기라는 살이 찢기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세상이 손가락질할 때, 방구석에서 울고만 있는 대신 그녀는 가장 화려한 화장을 하고 당당히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일탈’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한 인간의 치열하고도 눈부신 ‘생존 본능’이다.
이제 율희에게 남은 과제는 화제성을 뛰어넘는 본업에서의 경쟁력 입증일 것이다. 배우로서 연기적 내실을 다지고, 크리에이터로서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여야 한다. 과거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온전한 ‘율희’ 그 자체로 홀로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맹렬하고 씩씩한 발걸음에, 이제는 차가운 비난 대신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때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