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트롯맨’ 우승자라는 묵직한 왕관은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는 강력한 무기지만, 때론 특정 장르나 이미지에 갇히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수 손태진은 그 좁은 울타리를 유연하게 뛰어넘어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적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 15일 발매된 그의 첫 리메이크 EP ‘봄의 약속’은 손태진이라는 아티스트가 품은 깊이와 가능성을 오롯이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이번 앨범은 시간의 풍파를 견뎌낸 한국 가요사의 명곡들을 손태진만의 숨결로 정성껏 다듬어 ‘새로운 봄의 클래식’으로 탄생시켰다.
손태진은 이번 작업을 앞두고 “처음으로 선보이는 리메이크 EP라서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며 “무엇보다 제 목소리로 이 명곡들을 다시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 시절의 감성을 빌려 지금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 뜻깊은 작업이었고, 리메이크를 허락해 주신 모든 선배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설득력’을 기준으로 고른 명곡들, 빼기의 미학으로 완성하다
수록곡 면면을 살펴보면 그 자체로 한국 대중음악의 찬란한 유산이다. 송창식의 ‘맨 처음 고백’, 패티김의 ‘못 잊어’,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최희준의 ‘하숙생’,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까지. 감히 건드리기조차 부담스러운 거장들의 명곡 5곡을 손태진은 묵직하고도 부드러운 바리톤 음색으로 자연스럽게 감싸 안는다.
선곡 과정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진정성’이었다. 손태진은 “선곡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 ‘지금의 제가 불렀을 때 설득력이 있을까’를 기준으로, 편곡 후에도 저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곡들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특히 “원곡 자체가 워낙 좋은 명곡들이라 기교를 더하기보다는 오히려 덜어내며 노래가 지닌 감성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는 그의 말에서 리메이크의 진정한 의미인 ‘온고지신’의 자세가 읽힌다.
“이어폰으로 들어주세요”… 작은 숨소리에 담긴 극적인 서사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소리의 결이 주는 밀도에 있다. 재즈, 스윙, 빅밴드, 그리고 시네마틱 발라드 등 다채로운 장르적 변주가 더해졌음에도 반주는 결코 목소리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화려함을 덜어낸 여백을 손태진의 따뜻한 온도와 미세한 떨림이 촘촘하게 채웠다.
손태진은 팬들에게 “이어폰으로 감상해달라”는 특별한 제안을 던졌다. 조용한 환경에서 들었을 때 곡이 품은 작은 숨결까지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는 ‘하숙생’과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녹음할 당시, 솔직한 감정을 더 극적으로 살리기 위해 ‘원테이크(중단 없이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 방식을 택했다.
“같은 곡도 표현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될 수 있음을 다시 느꼈다”는 그의 말처럼, 정교하게 컨트롤된 그의 절제된 창법은 리스너들의 가슴 한구석을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두드린다.
오랫동안 노래하는 사람으로…팬들과 맺은 ‘봄의 약속’
결과적으로 이번 EP는 손태진이 특정 장르의 틀을 깨고,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완성형 보컬리스트’로서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이정표다. 그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곡의 가치를 현시대로 끌어와 자신만의 색채로 훌륭하게 재번역해 냈다.
앨범명처럼 손태진이 올해 꼭 지키고 싶은 ‘봄의 약속’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하다. “조급해하지 않고 오랫동안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리고 지금처럼 꾸준히 무대에서 인사드리는 것”이다. 기다려 준 팬들에게 “여러분의 봄에도 이 노래들이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서 아티스트로서의 깊은 책임감이 묻어난다.
거장들의 노래를 빌려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손태진. 성악가 특유의 탄탄한 기본기에 대중가수로서의 유연함까지 갖춘 그가 앞으로 피워낼 찬란한 음악적 사계절이 벌써부터 기분 좋은 설렘으로 기다려진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