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갈고 준비했다“는 각오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생생한 밴드 사운드 위로 펼쳐진 엔하이픈의 라이브는 희승의 부재가 무색할 만큼 견고했다. 6인조 재편 후 첫 월드투어 ‘BLOOD SAGA’의 포문을 연 이들은, 빈틈없는 라이브와 한층 깊어진 뱀파이어 서사로 자신들의 건재함을 넘어 압도적인 성장을 증명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선포했다.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엔하이픈(정원, 제이, 제이크, 성훈, 선우, 니키)의 네 번째 월드투어 ‘ENHYPEN WORLD TOUR ‘BLOOD SAGA’ IN SEOUL’(이하 ‘BLOOD SAGA’)가 개최됐다.
이번 공연은 현장을 찾지 못하는 엔진(ENGENE, 팬덤명)을 위해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을 병행했다. 금기를 어기고 도주 중인 뱀파이어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게, 선우는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감탄하며 “뱀파이어 나우를 통해서 전 세계로 도피 방송이 생중계되고 있다”고 재치 있게 생중계 소식을 알렸다.
거대한 대서사를 뜻하는 ‘Saga’와 뱀파이어를 상징하는 ‘Blood’를 결합한 ‘BLOOD SAGA’는 첫 월드투어 ‘MANIFESTO’부터 ‘FATE’, ‘WALK THE LINE’을 총망라하는 공연이다. 무대는 세상의 속박을 뚫고 뱀파이어의 본능과 패기로 ‘너’와 함께할 미래를 그리는 엔하이픈의 여정을 장엄하게 펼쳐냈다.
미니 7집 ‘THE SIN : VANISH’의 타이틀곡 ‘Knife’로 강렬한 포문을 연 엔하이픈은 ‘Daydream’, ‘Outside’, ‘Brought The Heat Back’을 연달아 몰아치며 초반부터 열기를 달궜다. 이어 ‘No Way Back (Feat. So!YoON!)’, ‘Big Girls Don’t Cry’, ‘No Doubt’으로 엔진을 열광케 한 이들은 ‘Sleep Tight’와 ‘Bills’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분위기는 ‘Moonstruck’을 기점으로 반전됐다. ‘Paranormal’과 ‘Blockbuster(액션 영화처럼)’로 텐션을 올린 뒤 ‘모 아니면 도(Go Big or Go Home)’로 에너지의 정점을 찍었으며, ‘Future Perfect (Pass the MIC)’에서는 폭발적인 떼창을 이끌어내며 현장을 절정으로 몰아넣었다.
“자신감 있게 투어를 준비했다. 엔진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인정받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엔하이픈의 포부는 무대 위에서 현실이 됐다. 이번 공연은 특유의 뱀파이어 세계관을 녹여낸 무대 디자인과 서사가 담긴 세트리스트로 관객을 한 차원 높은 판타지 세계로 인도했다. 특히 ‘도주 중인 뱀파이어’라는 테마 아래 퍼포먼스와 VCR이 유기적으로 연결됐으며, 무대 삼면을 메운 LED 풀 스크린은 압도적인 영상미를 선사했다. “뮤지컬적 요소가 재미를 줄 것”이라던 예고처럼, ‘No Way Back’ 무대 끝에 멤버들이 리프트를 타고 사라지자 스크린에는 동굴 안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 이어지는가 하면, ‘FATE’ 직후 정원이 심연으로 침전하는 연출은 몰입감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최초 공개 무대도 이어졌다. “이번에 엔진이 좋아할 거 같아서 준비해서 왔다”며 선보인 수록곡 ‘Stealer’를 시작으로, 엔하이픈은 ‘Drunk-Dazed’, ‘Bite Me’, ‘Fate’, ‘CRIMINAL LOVE’를 통해 ‘피맛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후 ‘Lost Island’, ‘XO (Only If You Say Yes)’, ‘멀어’, ‘Helium’까지 쉼 없이 달리며 무대를 완성했다.
지난 3월 희승 탈퇴 후 6인조로 재편된 이후 선보이는 첫 월드투어인 만큼 멤버들의 각오는 비장했다. 제이크는 “6명이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투어이기에 이를 갈고 준비했다. 저희의 영혼이 담긴 투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했다”며 남다른 포부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공연의 백미는 밴드 사운드로 완성한 생생한 라이브였다. 희승의 자리는 없었다. 그의 부재가 무색할 만큼 멤버 6인 모두 안정적인 실력과 음악적 성숙을 증명했다. 그중에서도 선우의 보컬적 도약은 단연 돋보였다. 고난도 고음과 애드리브를 완벽히 소화한 선우는 희승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팀의 강화된 보컬 역량을 증명했다.
공연의 또 다른 주역인 엔진은 ‘블랙’과 ‘레드’ 드레스코드로 ‘뱀파이어 추종자’를 자처하며 화답했다. 팬들은 시작부터 터질 듯한 함성과 열띤 응원법으로 무대를 향한 갈증을 드러냈다. 곡이 거듭될수록 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대 위의 엔하이픈과 뜨겁게 공명하며 에너지를 분출했고, 암전 속에서 빛나는 응원봉의 물결로 ‘핏빛 바다’처럼 장관을 이뤘다. 엔하이픈의 몸짓 하나에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환호와 전곡을 아우르는 완벽한 떼창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아티스트와 팬이 하나 되어 완성하는 ‘BLOOD SAGA’의 정점을 찍었다.
이에 니키는 “어제도 좋았어서, 오늘 엔진이 어쩔지 걱정했는데, 걱정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재밌게 즐겨주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너무 재밌다. 한 호흡으로 시간이 너무 금방 갔다 .모든 건 엔진 덕분”이라며 “오늘 하루가 짧게나마 엔진에게 행복하고 매일의 힘이 됐으면 좋겠다. 엔진에게 받은 에너지가 너무 커서 내일도 파이팅해서 빡세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진심이면 뭐든지 상대방도 느껴지는 것 같다. 진심으로 즐겨주고, 우리도 어제 오늘 너무 진심으로 즐겼던 거 같아서 서로 잘 통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한 정원은 “모든 투어 초반에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모든 공연은 100%로 하기 어렵다. 완벽한 공연은 없으니, 어제도 오늘도 뭔가 보여지기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한 공연이라 말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여섯 멤버 전부가 진심으로 100% 다 쏟은 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연 끝나고 첫날인데 많이 해서 큰일났다 했는데, 오늘 또 하고 있다. 엔진 덕분이다. 정말 즐거웠다”고 감격을 표했다.
엔하이픈은 데뷔 이래 세 차례의 월드투어를 거치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번 서울 공연은 선예매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됐으며, 오는 7월 멕시코시티 콘서트 역시 매진 후 추가 회차를 확정 짓는 등 굳건한 글로벌 위상을 입증했다.
한편, 서울 공연은 오는 3일까지 진행되며, 이후 내년 3월까지 북미·남미·유럽·아시아 지역 총 21개 도시에서 32회 공연의 대장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방이동(서울)=금빛나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