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중문화계에서 ‘수트 입은 소지섭’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보적인 액션 장르이자 방송사 시청률을 쥐고 흔드는 치트키다.
14년 전 영화 ‘회사원’(2012)에서 감정 없는 살인청부조직의 킬러로 K-액션의 매운맛을 각인시켰던 그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2025)에서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잘라내는 처절한 느와르의 정점을 찍으며 전 세계 1위의 신화를 썼다.
“소지섭 아직 괜찮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던 올해 데뷔 30년 차의 이 베테랑 배우가, 이번엔 SBS 새 금토드라마 ‘김부장’을 통해 안방극장의 가장 강력한 ‘대상 후보’로 귀환한다. ‘주군의 태양’ 이후 무려 13년 만의 SBS 친정 복귀작이다.
‘김부장’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허허실실해 보이는 아빠가 사라진 중학생 딸 민지를 되찾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정원 특수요원 시절의 본능을 다시 깨우는 이야기다. 벌써부터 방송가 안팎에서 “올해 SBS 연기대상은 따놓은 당상 아니냐”는 성급한 기대가 흘러나오는 이유는 소지섭의 액션이 한 단계 더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지섭이 선보였던 액션이 조직의 명령에 움직이는 기계적인 움직임(‘회사원’)이거나, 지옥 같은 바닥에서 뿜어내는 서늘한 복수극(‘광장’)이었다면, 이번 ‘김부장’의 액션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
소지섭 스스로도 제작발표회에서 “이전의 액션이 불나방 같았다면, 이번엔 딸과 살기 위해 처절하게 싸운다. 액션 난이도는 단연 ‘상(上)’”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연출을 맡은 이승영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 ‘테이큰’을 능가할 것이라 호언장담한 배경에는, 한 가정을 지키려는 중년 남성의 핏빛 절박함이 소지섭의 압도적인 피지컬 위에 얹어졌기 때문이다.
박태준 만화회사의 메가 히트 웹툰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드라마 ‘김부장’은 원작의 자극적이고 하드한 폭력성에만 기대지 않는다. 드라마는 원작의 묵직한 세계관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일상 속 아빠의 친근함과 동료들과의 유쾌한 텐션을 더해 지상파 시청자들을 겨냥한 ‘대중적 오락물’로서의 근육을 영리하게 키웠다.
특히 기대를 모으는 것은 소지섭을 중심으로 뭉친 ‘아재 3인방’의 앙상블이다. 주특기인 1440도 발차기를 장착한 태권도장 관장 성한수 역의 최대훈, 장군이라는 계급장을 던지고 딸을 위해 화력을 퍼붓는 ‘딸바보’ 박진철 역의 윤경호가 합류했다.
원작 웹툰 속 특수 부대 동료들이 드라마라는 새 옷을 입고 보여줄 끈끈한 서사와 티키타카는,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다크 액션극에 확실한 ‘사람 냄새’와 웃음 포인트를 불어넣으며 시청률 상승곡선을 견인할 차별점이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정교하기로 소문난 소지섭의 철학은 의외로 담백하다. “캐릭터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시나리오가 재미없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라는 타이틀을 넘어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던 그의 다짐은, 이번 작품에서 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동료들을 향한 신뢰라는 따뜻한 감정선으로 고스란히 치환된다. 과거의 영광이나 신비주의에 안주하지 않고, 19kg을 감량하며 몸을 던졌던 ‘광장’의 기세를 이어 또 한 번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린 클래스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배우 류승룡 주연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과 이름이 겹치지만, 소지섭은 “우리는 통쾌하고 액션 잘하는 유일무이한 김부장”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스스로 장벽을 깨고 낡은 공식을 지워버린 데뷔 30년 차 배우 소지섭. 낡은 수트를 벗어던지고 오직 딸을 구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세상과 맞짱 뜨는 그의 처절한 부성애 액션이 과연 침체된 주말 안방극장을 단숨에 살려내고, 올해 연말 ‘SBS 연기대상’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소간지’가 던진 이 기분 좋은 출사표에, 전 국민의 시선이 오늘 밤 SBS 본방사수로 쏠리고 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