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심코 던진 ‘4대 의사 가문’ 자랑이 연예계를 넘어 문화계와 역사, 국제 이슈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 고(故) 안상호의 친일 행적 논란이 작가들의 ‘독립투사 후손 캐스팅’ 선언과 독립투사 후손의 눈물, 나아가 한일 간 역사 공방으로 비화하며 거대한 나비효과를 낳는 모양새다.
파장의 불씨는 문화계의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붙었다. 드라마 ‘터널’, ‘이별이 떠났다’ 등을 집필한 소재원 작가는 14일 배우 최불암(독립운동가 고 최철 선생의 자제)을 언급하며 “나라와 사회가 독립투사의 자손들을 빛나게 해줄 수 없다면 미천한 글로나마 그분들을 빛나게 해드리겠다”고 선언했다.
소 작가는 “독립투사 후손에 대한 예우와 존경은 친일파 후손들과 반드시 차별되어야 한다”며 “앞으로 제 작품에는 무조건 독립투사 후손분들을 캐스팅하겠다”고 밝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뼈아픈 일침도 이어졌다. 독립운동가 송기주 선생의 외증손자인 이인철 변호사는 방송을 통해 하영 가족을 향해 상하이 임시정부와 독립기념관 방문을 당부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 변호사는 “독립운동가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옥고를 치르고 가족을 희생시켰지만 후손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고, 반대로 친일파 후손들은 대를 이어 떵떵거리며 산다”며 역사적 정의가 뒤바뀐 현실을 강하게 꼬집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일본 보수 언론까지 가세했다. 일본 매체들이 하영을 옹호하며 “한국이 친일파 자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있다”, “현대판 연좌제”라고 비난을 쏟아낸 것. 이에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강제동원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나라가 다른 나라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며 “일본 언론은 올바른 역사 인식부터 갖추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면서 대중의 반응도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누리꾼들은 “단순한 가문 자랑인 줄 알았는데 친일 잔재 청산과 독립투사 예우 문제로 공론화된 것은 매우 유의미한 흐름”, “소재원 작가의 ‘독립군 후손 우선 캐스팅’ 소신을 전폭 지지한다”, “가해국인 일본 언론이 연좌제를 운운하며 훈수를 두는 행태에 분통이 터진다”며 열띤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하영은 증조부의 친일 조직(대정친목회) 활동 이력이 드러난 뒤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으나, 연예계를 뒤흔든 후폭풍은 문화·사회 전반의 역사적 각성 운동으로 번져가고 있다.
[진주희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