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진이 대한민국 팬클럽 문화의 시작을 직접 증언했다. 가입비 500원, 야유회, 그리고 훗날 가요계 거물이 되는 이수만까지. 지금의 ‘팬덤’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16일 방송된 SBS 예능 ‘내겐 너무 까칠한 매니저–비서진’에는 이서진, 김광규가 남진의 일일 매니저로 나서며 공연 준비 과정과 함께 그의 과거를 함께 되짚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남진의 공식 팬클럽 ‘남진세상’ 회원들은 임금님 수라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푸짐한 음식과 과일을 준비해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55년 전의 앨범집과 사진첩을 꺼내 보이며 남진과 추억을 나눴다.
한 팬은 “제가 1호 회원이었다”며 당시 팬클럽 가입서를 직접 공개했다. 그는 “6개월 가입비가 500원이었고, 국내 최초 팬클럽이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남진 역시 “대한민국에서 팬클럽이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이었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팬클럽과의 야유회 역시 남진이 처음이었다. 남진은 “제대 후인 1971년에 헌인능으로 야유회를 갔다. 그때 이수만도 함께 갔었다”며 “1972~73년에는 남이섬으로 갔다”고 회상했다. 당시 앨범집에는 팬클럽 회원 모집 포스터가 남아 있었고, DJ 고(故) 이종환, 가수 김세환 등의 이름도 출연진으로 적혀 있었다.
남진세상 회원들의 대부분은 당시 16~17세의 소녀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엽서를 보내며 남진을 응원했고, 그 인연을 지금까지 55년간 이어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서진은 남진의 공연을 지켜보며 “우리 엄마는 일어나는 것도 힘든데, 저렇게 춤을 추는 건 정말 대단하다”며 공연을 이어가는 열정에 감탄했다. 김광규 역시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관계라면 추억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콘서트가 끝난 뒤 남진은 팬들과 직접 대화를 나눴다. 팬들은 월남전 참전 전 남진의 사진부터 과거 공연 장면까지 담긴 사진첩을 펼쳐 보였다. 자연스럽게 라이벌이었던 나훈아 이야기도 나왔다.
한 팬은 “음악방송에서 남진, 나훈아 중 한 명이 1위를 하면 꽃을 들고 기다렸다. 우리 오빠가 1위 하면 흥분해서 뭘 던지기도 했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머리채를 잡은 적도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웃음 뒤에는 긴 세월의 진심도 있었다. 한 팬은 “2000년에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남진 오빠가 도와줬다. 돈보다도 나를 신경 써 준다는 게 더 큰 위로였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팬 역시 “가구점이 불에 다 타 아무것도 없을 때 오빠가 도와줘 지금은 더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가입비 500원으로 시작된 인연은 어느덧 55년이 됐다. 남진과 그의 팬들은 단순한 스타와 팬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 초창기를 함께 건너온 ‘역사’ 그 자체였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