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팬이라 죄송하다는 신지” 정직한 배려, 어쩌다 조롱거리가 됐나 [홍동희 시선]

가장 유쾌해야 할 한여름 밤의 야구장 축제가 결국 씁쓸한 침묵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그룹 코요태의 신지가 프로야구 KT 위즈의 홈경기 시구를 정중히 거절한 비화가 알려지며 이른바 ‘시구 태도 논란’에 휩싸였고, 급기야 오는 8월 2일로 예정돼 있던 특별 축하공연마저 전격 취소되는 황당한 촌극이 빚어졌다.

발단은 지극히 사소했다. 신지는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경기 후 축하공연 섭외를 흔쾌히 수락한 뒤, 추가로 들어온 시구 제안에 얽힌 뒷이야기를 전했다.

사진 = 김영구 기자
사진 = 김영구 기자

그는 “내가 한화 이글스 골수팬인데 상대 팀(KT) 마운드에 서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정중히 사양했다”고 밝혔다. 마침 당일 경기가 KT와 한화의 맞대결이었기에, “내가 한화 유니폼을 안 입을 수도 없지 않느냐”며 오랜 팬으로서 겪은 귀여운 딜레마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순수한 고백은 일부 KT 팬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홈구장에 돈(개런티)을 받고 공연하러 오면서, 홈팀 시구를 거절하고 대놓고 원정팀을 챙기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무례함”이라는 지적이었다.

팽팽한 갑론을박 속에서 신지 측은 결국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고개를 숙였으며, 예정된 축하공연마저 자진 취소했다. 개인의 오랜 낭만적 팬심이 프로야구 팬덤 특유의 비틀린 엄숙주의와 진영 논리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 순간이다.

물론 서운함을 표출하는 KT 위즈 팬들의 입장을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프로야구 구단과 행사를 진행하는 주체는 엄연히 상업적인 계약 관계이며, 홈팀 관중들의 티켓 파워로 성사된 축제의 장이다. 그 잔치판의 주인공인 홈팬들을 향해 “나는 다른 팀 팬이라 시구는 안 하겠다”고 말하고, 자막에 ‘한화 시구 기다릴게요’라고 남긴 것은 다소 세심함이 부족한 발언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이토록 거센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 축하공연을 취소하며 아티스트가 머리를 조아려야 할 만한 ‘대역죄’인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남는다.

오히려 뒤집어 생각해보면, 신지의 시구 고사는 홈팀과 야구팬 전체를 향한 가장 ‘정직한 배려’였다. 누구나 알 만한 타 구단의 오랜 열성 팬이 자본주의적 타협에 굴복해 홈팀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서서 거짓된 미소로 시구를 던지는 것. 혹은 KT 마운드에 서는 척하며 속으로는 원정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기만을 저지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홈팀 팬덤을 기만하는 훨씬 더 큰 결례가 아닐까.

신지는 가수로서의 공적 비즈니스(축하공연)는 성실히 완수하되, 개인의 사적 낭만(한화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시구’라는 권한만을 정중히 내려놓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국내 프로야구 팬덤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과 엄숙주의에 갇혀 있다. 연예인의 일상적인 선호도조차 ‘충성도’와 ‘비즈니스적 예의’라는 가혹한 잣대로 재단한다. 스포츠가 선사하는 유쾌한 ‘경쟁’과 ‘응원’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마운드가 오직 홈팀만을 맹목적으로 찬양해야 하는 거대한 ‘사상 검증의 단상’으로 변질되어 버린 셈이다.

코요테. 사진 = 김영구 기자
코요테. 사진 = 김영구 기자

야구장에서 시구는 강제적인 의무가 아니라 일종의 즐거운 퍼포먼스다. 다른 구단의 팬이더라도 기꺼이 초청에 응할 수 있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팀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정중히 사양할 수도 있다.

만약 KT 홈구장에서 한화 골수팬인 신지가 노래를 부르고, 관중들이 “신지 씨, 오늘은 우리가 이길 겁니다!”라며 위트 있게 맞받아치는 그림이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그것이야말로 프로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유쾌하고 낭만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결국 과도한 엄숙주의와 날 선 검열은 아무런 승자도 없는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신지는 의도치 않은 오해에 고개를 숙였고, 8월의 뜨거운 여름날 야구장에서 코요태의 신나는 히트곡을 떼창하며 스트레스를 풀려던 대다수 평범한 관중들은 즐거운 축제의 기회를 통째로 빼앗겼다. 남은 것은 “내 팀 시구를 거절한 연예인을 쫓아냈다”며 분풀이를 이뤄낸 극성팬들의 옹졸한 승리감뿐이다.

프로야구는 비즈니스이기 전에, 대중이 일상의 피로를 날려 보내는 거대한 놀이터다. 타인의 정직한 팬심을 품어주지 못하고 섭섭함을 집단적 공격으로 배설해 내는 배타적인 팬덤 문화는 이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나는 한화 팬이라 KT 시구는 미안하다”는 솔직한 사양에, “역시 신지 씨 의리 있네! 그래도 오늘 공연은 다 같이 신나게 놉시다!”라며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넉넉한 유머와 낭만이, 지금 K-야구장 마운드에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니었을까.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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