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8일은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거대한 두 개의 평행선이 시작된 날이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지방 무대와 노래교실을 전전하며 무명 시절을 보냈던 트로트 가수 임영웅과, 대형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자본과 기획력 아래 화려하게 데뷔하여 ‘휘파람’과 ‘붐바야’로 글로벌 시장의 이목을 즉각 집중시킨 블랙핑크.
이들은 정확히 10년이 지난 오늘날, 각각 대한민국 대중음악 영토를 상징하는 국가대표급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이들의 데뷔 10주년을 맞이하는 2026년 8월, 두 팀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과 대중적 풍경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한쪽은 아티스트와 팬덤 사이의 정서적 신뢰를 바탕으로 온 사회가 동참하는 온기 가득한 공동체적 축제를 연 반면, 다른 한쪽은 기획사의 안일한 상업 행정과 소통 부재 속에서 ‘팬 홀대 논란’과 ‘사옥 난동 체포’라는 씁쓸한 명암만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임영웅의 유기적 동행: 아래로부터의 신뢰가 일궈낸 공동체적 축제
임영웅과 그의 팬덤 ‘영웅시대’가 보여준 지난 10년은 아티스트와 팬덤이 수평적 관계 속에서 상호 성장해 온 ‘유기적 연대’의 서사다.
임영웅은 10주년을 맞아 공식 팬카페에 남긴 장문의 글에서, 거창한 무대도 화려한 홍보도 없이 단 20여 명의 팬과 소박하게 풍선을 불며 시작했던 무명 시절을 어제 일처럼 또렷이 회상했다. 차가운 바닥에서 손을 시려가며 자신을 위해 불어주던 팬들의 숨결이 상암벌과 고척돔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자신을 데려다준 따뜻한 바람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 부족하다 여겼던 자신을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 준 것은 오직 팬들이었다는 고백은, 스타의 브랜드 가치 이전에 정서적 공감대와 초심을 지키겠다는 진심 어린 다짐이다.
이러한 스타와 팬덤 간의 깊은 상호 신뢰는 일방적인 소비를 넘어 자발적인 사회적 선행이라는 성숙한 팬덤 문화로 환원되었다. 영웅시대 회원들은 임영웅의 데뷔 10주년을 단순한 사적 축하에 그치지 않고, 사회 곳곳에 기부와 봉사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다.
안산영웅시대가 취약계층을 위해 1,000만 원을, 영웅시대 거제가 1,004만 원을, 부산봉사방이 880만 원을 사랑의열매 및 희망복지재단 등에 기부했다. 또한 ‘영웅시대 with Hero 경기·서울’은 총 1,046만 원 규모의 성금 기탁과 함께 직접 구운 빵 450개를 취약계층 기관에 전달하는 제빵 봉사를 펼쳤고, 경기3지부는 아동행복을 위해 350만 원을, 통영 팬클럽은 500만 원을 기탁하는 등 전국적인 나눔 연대를 보여주었다.
가수의 따뜻한 철학을 온전히 내재화한 팬덤의 이 유기적 행보는 오는 9월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다시 한번 대규모 스타디움 콘서트 축제로 발걸음을 넓힐 예정이다.
블랙핑크의 소외된 10주년: 파편화된 매니지먼트가 야기한 정서적 균열
반면, 글로벌 음악 신에서 최초와 최고라는 수많은 신기록을 경신하고 전무후무한 상업적 성취를 올린 블랙핑크의 10주년은 기획력의 태만과 소통 부재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었다.
블랙핑크는 개별 활동은 각자의 독립 레이블에서 진행하되 그룹 활동만 YG엔터테인먼트가 담당하는 다중 매니지먼트 구조를 취하면서 소통에 심각한 난맥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큰 비판은 정작 아티스트의 10주년 당일까지 팬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페스티벌이나 소통 콘텐츠가 전무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기획사가 가장 먼저 공개한 유일한 기념 행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브랜드 ‘뮷즈’와 협업한 머천다이징(MD) 상품 판매 소식이 전부였다. 팬들과의 소통 채널이 멈춰있었음에도 오로지 최소한의 기획이나 상업성만을 앞세우며 정서적 보상을 등한시한 소속사의 태도는 장기간 인내해 온 글로벌 팬덤 ‘블링크’에게 소외감과 배신감을 안겼다.
‘40명 한정’ 졸속 기획의 파장과 소속사 앞 ‘골프채 난동’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들끓자 YG는 데뷔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면 ‘밋앤그릿’ 행사를 연다고 기습 공지했다.
그러나 수천만 명의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아티스트의 10주년 이벤트 초청 인원이 단 4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응모 기한을 단 9시간으로 한정하여 가입 요건을 과도하게 제한한 점은 오히려 들끓던 팬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초기 공지에서 로제와 리사 등 멤버들의 불참 가능성을 암시하듯 ‘스케줄상 참여 가능한 일부 멤버만 참석한다’는 모호한 단서를 달아 기획사의 조율 능력 부재를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결국 멤버 로제 측 소속사 등의 해명으로 가까스로 4인 완전체 성사를 기습 통보했으나, 팬덤 내부에서는 “비난 여론 피하기 식 졸속 행정이 아니냐”는 냉소만 자아냈다.
소속사가 아티스트의 브랜드 가치에만 의존한 채 팬덤과의 정서적 채무를 경시할 때, 억눌린 불만이 어떤 방식으로 돌발적인 파열음을 내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도 발생했다. 블랙핑크의 행사 졸속 공지로 여론 갈등이 절정에 치달았던 8월 6일 저녁, 마포구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앞에서 한 20대 여성이 골프채를 들고 나타나 신사옥 출입 유리 정문을 반복해서 내리치다 재물손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되는 초유의 소동이 일어났다.
비록 마포경찰서가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YG엔터테인먼트 간의 인과관계를 세밀하게 조사 중이지만, 하필이면 10주년 기획 실패에 대한 팬들의 분노와 서운함이 극에 달한 시기에 발생한 이 폭력적 난동은 소속사를 향한 누적된 반감 및 대중문화적 좌절 기조와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눈물로 채운 씁쓸한 생일잔치, 숫자가 아닌 ‘마음’의 단단함
결국 10주년 당일인 8월 8일, 씁쓸한 축제 현장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던 것은 기획사의 기획 리스크를 온몸으로 대리 속죄해야 했던 아티스트 본인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전체 밋앤그릿을 치르면서, 멤버 지수는 팬덤 위버스를 통해 “많은 블링크를 속상하게 해 마음이 무겁고, 큰 섭섭함을 안겨주게 된 것 미안하다”며 새벽과 단체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고개를 숙이며 연신 미안하다는 사과를 반복해야 했다. 로제와 지수가 팬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서운함을 달래야 했던 이 씁쓸한 풍경은, 기획사의 안일한 행정이 남긴 참담한 대가였다.
팬덤의 정성을 바람이라 부르며 상암벌을 넘어 더 넓은 스타디움으로 아래로부터 수평적으로 발걸음을 넓히는 임영웅의 따뜻한 동행. 그리고 일방적인 굿즈 판매와 소외된 40명짜리 졸속 행사 뒤에 숨어, 결국 멤버들이 직접 눈물로 사과하고 소통의 해명을 늘어놓아야 했던 블랙핑크의 우울한 10주년. 이 대조적인 두 팀의 10주년 풍경이 K-팝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던지는 비평적 경고는 무겁다.
지속 가능한 아티스트와 예술 산업의 성공은 눈부신 상업적 누적 지표나 글로벌 매출액이 아닌, 정서적 유대를 향한 기획사의 사려 깊은 대처와 두터운 배려, 그리고 팬덤과의 굳건한 신뢰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