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코미디에서 뉘앙스의 차이를 잡아낸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이던가. 미국 출신 조나 힐은 높은 작품 이해도는 물론 즉흥연기까지 두루 갖춘 배우다. 이제 그 탁월한 센스를 연출까지 확장하며 본격적인 재능 발현에 나섰다.
조나 힐은 2004년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영화 ‘아이 하트 헉커비스’로 데뷔해 숱한 단역 생활을 거쳐 청소년 관람불가 코미디를 연출하는 영화감독이 됐다. 배우 겸 감독 더스틴 호프만의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 그는 더스틴 호프먼의 추천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보이는 인물들을 연기하며, 자신만의 코미디 색을 입혀나갔다.
조나 힐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웃음은 잠시 쉬어간다 ‘머니볼’(2011)
조나 힐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코미디와 희비극이지만 ‘머니볼’(감독 베넷 밀러)에서 만큼은 달랐다.
이리저리 뉘앙스를 타며 때로 묵직한 웃음을 투척하던 조나 힐은 잠시 코미디를 접어두고 브래드 피트와 함께 드라마의 결을 켜켜이 쌓아갔다. 즉흥 연기에 강점을 갖고 있던 조나 힐이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 안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그 결과 그해 아카데미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고, 함께 영화에 출연한 브래드 피트는 그의 코미디 연기에 대해 “페이소스와 휴머니즘을 바탕에 둔다”고 평했다. 어쩌면 배우로서 조나 힐에게 코미디만큼 중요한 게 드라마였을지 모르고, 그의 앞에서 두 장르의 경계선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을지 모른다.
영화 ‘머니볼’ 포스터 사진=소니 픽쳐스
지난 세월 동안 조나 힐이 연기한 인물들을 되새겨보면 대부분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남자들이었다. 겉모습은 번지르르 할지언정 속내를 들여다보면 돈이나 술로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뚫려있다. 조나 힐은 그런 인물들을 아련하기보다 서늘하면서도 코믹한 뉘앙스로 표현해 차별점을 만들었다. 코미디에는 필연적으로 페이소스가 따른다는 걸 상기한다고 쳐도, 그의 연기에는 여타 코믹 연기보다 섬뜩한 지점이 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포스터 사진=우리네트웍스
◇ 차원이 다른 내공이 돌아왔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속 조나 힐은 ‘머니볼’과 180도 다르다.
‘머니 볼’의 피터가 철저히 시나리오 중심으로 탄생한 인물이라면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도니 아조프는 조나 힐의 즉흥연기 내공이 여실히 빛나는 캐릭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조나 힐의 즉흥연기 최고봉은 아니지만 세계적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에서 즉흥연기라 의미가 남다른 건 사실이다.
조나 힐이 연기한 도니는 철부지다. 앞서 그가 출연한 다른 영화의 인물들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러나 주가 조작으로 월스트리트 최고 억만장자가 된 조단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벌거벗은 듯한 이면을 연기한다는 차별점도 분명 존재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조단과 도니는 어쩌면 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그만큼 조나 힐은 조단의 피폐함이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완벽히 서포트 했고, 관객으로 하여금 저절로 비판의식이 들게 하는 코미디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영화 ‘미드90’ 포스터 사진=오드
◇ 조나 힐의 성장 영화 ‘미드90’(2018)
팔방미인 조나 힐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 ‘미드90’로 90년대 추억을 선물한다.
지난 25일 개봉한 ‘미드90’은 1990년대 미국 LA, 넘어져도 좋은 스케이트 보드와 함께 일어서는 나쁜 친구들로 인해 처음으로 뜨겁고 자유로운 여름을 맞이한 스티비(서니 설직 분)의 이야기를 그린 VHS 테이프다.
그동안 개성 넘치는 코미디 연기를 선보여온 조나 힐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직접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그는 주인공을 연기한 서니 설직을 비롯한 나켈 스미스, 올란 프레나트 등 실제 스케이트 보더를 캐스팅했고, 비전문 연기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극에 녹였다.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미드90’로 한층 더 깊고 넓어진 세계를 선보인 조나 힐. 이후 그가 내놓을 독창적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