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나문희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슬프긴 한데 감동적이진 않은 영화 ‘감쪽같은 그녀’를 나문희가 살렸다.
‘감쪽같은 그녀’는 ‘신부수업’(2004), ‘허브’(2007),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2011)을 연출한 허인무 감독의 신작으로 72세 꽃청춘 말순에게 손녀 공주가 찾아오며 시작되는 기막히고 수상한 동거를 그린다. 나문희가 말순을, 김수안이 공주를 연기한다.
말순이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손녀 공주와 갓난아이 진주가 찾아온다. 돌아온 말순은 두 아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친손녀로 받아들이고 살뜰히 돌본다. 애어른 같은 공주의 행동은 그동안 그가 어떤 하루하루를 겪었는지 짐작 가능할 정도로 성숙하다. 이유 없이 자기를 싫어하는 반 아이에게 머리 박치기로 응징하는 공주이지만 말순과 동생 진주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족 바보가 된다.
영화 ‘감쪽같은 그녀’ 포스터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말순도 마찬가지다. 어떤 비하인드를 가진 딸과 헤어져 수십 년 동안 혼자 살며 터득한 삶은 잠시 접어두고 두 손녀와 새로운 하루하루를 맞는다. 거기에는 조손가정의 현실이 담겼다. 온갖 제도로 점철된 듯 보이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세 사람은 제대로 된 도움 하나 받을 길이 없어 마트를 전전한다. 밤새 자수 놓은 손수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말순과 진주의 기저귀를 구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된 공주의 일상에는 제도권 밖 이방인의 모습이 스친다.
허인무 감독은 조손가정을 슬프게만 그리지 않으려 부단히 애쓴 듯하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기 좋아하는 이들이 보기에 말순과 두 손녀의 삶은 결함으로 비춰지겠지만 사실 이 가족의 나날은 오히려 진심으로 충만하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말이 동화 소재로나 어울릴 법한 현실을 떠올리면, ‘감쪽같은 그녀’는 참 따뜻하고 귀한 이야기다. 무조건적으로 서로를 위하는 할머니와 손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애틋하고, 그런 말순을 연기한 나문희의 내공은 여지없이 스크린 위에 넘실댄다. 좀체 간격을 좁히지 않는 빈틈을 눈 감고 넘어가게 만드는 건 오롯이 나문희라는 대배우의 힘이다. 서사의 개연성, 일부 캐릭터의 감정 수위에 대해 지나치게 안일한 연출에 포기하는 심정이 되다가도 나문희의 눈빛, 표정, 목소리에 어느 순간 설득 당한다. 결국 ‘감쪽같은 그녀’는 나문희가 살렸다. 나문희가 없는 ‘감쪽같은 그녀’는 상상도 어렵다.
그럼에도 한 가지 그냥 넘길 수 없는 지점이 있다면 공주의 지갑 도둑 해프닝 씬이다. 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던 공주가 도둑으로 지목되어 감정을 극한까지 밀고 가던 그 씬은 마치 코미디처럼 마무리된다. 해당 씬의 주인은 공주와 말순이다. 그런데 공주의 담임과 사회복지사의 로맨틱 코미디가 씬을 먹어버렸다. 보는 이는 어리둥절해지고, 졸지에 말순과 공주의 서러움은 별 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오점이 됐다. 오는 12월 4일 개봉.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