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열화 같은 성원을 보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일어난 ‘기생충’ 신드롬은 공감을 기반으로 한 시대정신을 타고 흐른다.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11일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3개 극장에서 개봉해 지난달 29일 상영관수 1000개를 돌파했다.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골든글로브, 수많은 협회상 수상 및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후보 지명 등 작품성을 인정받음은 물론 미국 대중으로부터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다.
봉 감독은 그동안 계층·계급문제에 천착해왔다. ‘기생충’도 사회적 부자와 빈자가 공생·상생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화 속 가진 자는 양지에 지어진 크고 넓고 높은 집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맞지만 그보다 가지지 못한 자는 전구 하나만 켜도 모든 분별이 가능한 좁디 좁은 방에서 사회 구성원인 듯 아닌 듯 살아간다. 빈익빈부익부, 기득권의 부의 세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소재이지만 ‘기생충’은 보편과 동시에 예술성, 대중성을 갖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영화 ‘기생충’ 북미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오래 전부터 세계적 화두인 빈부격차를 블랙코미디에 녹여 문화나 생활권이 상반되는 서구권 관객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한 점도 ‘기생충’의 성공 요인이다. 어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정신이 영화라는 틀에 잘 담길 때, 관객들은 공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기생충’은 부자만 무조건 욕하지도, 빈자만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는다. 관습적인 빈부격차 스토리와는 다르게 맹목적으로 자본을 쫓는 이들이 기생과 공생 사이에 놓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 시대가 갖출 미덕과 시대의 정신을 역설한다.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부자를 악하게 그리는 건 또 다른 어두움을 끌고 온다는 점도 잊지 말라고 전한다.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녹여 복잡미묘한 기분에 빠지게 한 매력적인 ‘기생충’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언론들도 ‘기생충’ 신드롬에 집중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아트영화로 난해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기생충’은 엔터테인적인 요소가 꽤나 많다는 게 현지 다수 언론의 생각이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소위 아트하우스영화들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서구영화계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예상치 못한 전개, 한 마디로 관객의 욕구를 채워준 영화라는 말도 된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 같은 맥락에서 함구령을 다시 떠올려볼 만하다. 봉 감독은 칸 영화제 상영 직전 직접 스포일러 함구령을 내릴 정도로 보안에 각별히 신경 썼고, 베일을 벗은 ‘기생충’은 ‘그럴 만 했다’라는 평을 얻었다. 따로 원작을 두지 않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는 점도 서구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관습을 벗어나 예측 불가한 서사로 영화적 재미와 신선한 충격을 안긴 것이다. 특히나 웃으면서 폐부를 찔린 기분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을 떠난 후에도 ‘기생충’을 쉽게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Neon)의 적극적인 캠페인도 서구문화권에 퍼진 ‘기생충’ 신드롬에 있어 제 몫을 다했다. 북미 개봉 전부터 현재까지 공식 SNS 채널을 활용한 홍보는 쌍방향 소통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기정(박소담 분), 기우(최우식 분) 남매가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해 부른 노래는 미국에서 ‘제시카 징글’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네온은 홈페이지에 이 노래를 휴대전화 벨소리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링크를 재빠르게 게시했다. 여기에 박소담이 노래를 직접 불러 설명하는 동영상까지 더해 미국 관객 사이에선 여러 아트웍과 패러디 상품까지 등장했다. 세계적 그룹으로 자리매김한 방탄소년단과 시너지도 발휘했다. 네온은 방탄소년단의 로고 ‘BTS’를 봉 감독의 이니셜 ‘BJH’ 로고로 패러디한 티셔츠를 공개하거나 최우식과 절친한 멤버 뷔의 미국 만남을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등 사소한 것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 센스로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