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이스라엘 출신 기 나티브 감독은 편리하게 어딘가로 치우치지 않는다. 묵직한 메시지와 특별한 개성, 도발적인 사건과 보통의 인간이 자리하는 그의 영화에는 인간의 내면 변화를 포착하는 순간이 뚜렷하다.
진가는 세계 영화 시상식이 먼저 알아봤다.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 특별언급, 제52회 데살로니키 국제 영화제 관객상 국제경쟁부문,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영화작품상 등 굵직굵직한 시상식에서 개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신작 ‘스킨’이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기 나티브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결핍의 형태 ‘마불’(2011)
요니는 유대교 전통 성인식을 앞두고 있는 소년이다. 학교에서 성적도 좋고 똑똑한 아이이지만 그에 비해 신체 성장이 더뎌 홀로 고민에 빠진다. 요니가 택한 나름의 돌파구는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만들기 위해 허공에 소리 지르기, 또래들의 학교 숙제를 대신 하고 받은 돈으로 단백질 파우더를 사는 것이다.
요니의 결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앞서 말한 신체 성장이 더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가정환경이다. 부모님은 한 집에서 같이 살 뿐 동거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상을 살아간다. 서로 소원해진 부모님을 보는 열세 살 소년의 마음은 어딘가 불안정하다.
영화 ‘마불’ 포스터 사진=영화 ‘마불’
결핍이 두 가지이니 스트레스도 각각 따로 온다.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은 탓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털어놓을 상대 하나 없으니 혼자만의 외로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인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유쾌하지 않다. 자기 주변 환경 중 어느 한 가지 안정되거나 이상적인 게 없으니 성인식 준비 과정도 혼란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요니가 속한 가족이라는 집단은 형태만 유지할 뿐 결국 결핍의 형태에 불과하다.
그나마 위태로이 유지되던 가족의 형태는 17년 동안 존재를 모르던 형이 집으로 돌아오며 깨진다. 바로 이 형이 자폐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기 나티브는 형의 등장과 동시에 더욱 깊은 결핍의 세계로 각 인물 그리고 관객을 이끈다. 진정 마주해야만 했던 결핍, 그로 인해 갈기갈기 찢긴 내면을 응시할 때 비로소 모든 결핍은 형태를 바꾼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전하며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영화 ‘스킨’ 포스터 사진=스마일이엔티
◇ 스스로의 구원 ‘스킨’(2018)
엄마를 잃은 브라이언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의 손아귀에 있다. 그러다 우연히 극단적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 조직원으로 크고, 다른 어떤 것보다 폭력과 증오를 먼저 배운다. 그렇게 끝없이 과격하기만 한 시위와 폭력의 세상에 갇혀 살던 브라이언은 세 딸을 키우는 줄리를 만나고 그동안의 삶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소망한다.
지난 19일 개봉한 ‘스킨’은 기 나티브가 2014년 찍은 단편영화 ‘디어 갓’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영화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였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과거를 지우려 분투하는 브라이언을 ‘빌리 엘리어트’ ‘설국열차’ ‘판타스틱4’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친숙한 제이미 벨이 연기한다.
브라이언은 인권운동가의 도움으로 조직을 탈출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에 새긴 문신, 즉 폭력의 증거를 하나씩 지워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가 몸담았던 조직은 브라이언의 행동을 배신이라 여기고 끝없이 위협한다. 브라이언이 문신을 지우려고 할수록 조직은 더 숨통을 조여 오지만, 피부 위 새겨진 과거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그의 투쟁이 그 어떤 드라마보다 현실적이고 강렬하다.
비로소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을 깨달은 브라이언의 내면의 변화가 피부와 문신이라는 시각적 소재와 만나 묵직한 테마가 됐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