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타자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자신과 승부를 택한다. 타자 입장에서 어찌보면 자존심이 살짝 상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외야수 이정후는 그 장면에서 평정심을 유지했고, 홈런으로 응답했다.
이정후는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홈경기를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8회말 장면을 되짚었다.
상황은 이랬다. 샌프란시스코가 7-4로 앞선 8회말, 2사 2루에서 엘리엇 라모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애리조나 벤치는 좌완 조 맨티플라이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했다. 이날 4타수 무안타 기록중이던 라모스와 승부대신 좌타자인 이정후와 승부를 택한 것.
이정후는 이 장면에서 자존심이 상했는지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열 명의 감독이 있다고 가정하면 열 명 다 그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생각을 전했다.
이어 “라모스는 최근에 감이 좋고, 나는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모스는 좌완에게 강했고, 좌완이 마운드에 있는 상황에서 한 점을 더 주면 경기가 힘들어지는데 굳이 라모스와 승부할 이유는 없었다. 당연히 나와 승부할 거라 생각했다”며 말을 이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이정후는 “채피(맷 채프먼의 애칭)가 아웃되는 순간 당연히 자연스럽게 바로 타석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밥 멜빈 감독은 상대의 고의사구 결정에 대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내가 평가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생각을 전했다.
그는 “이정후가 좌완 상대로 잘하고 있지만, 라모스의 지난 시즌 좌완 상대 성적을 봐야한다. 그렇기에 상대가 원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애리조나의 이런 선택은 실패로 끝났다. 이정후는 1-2 카운트에서 4구째 몸쪽 낮은 커브를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겼다.
샌프란시스코가 고의사구 직후 홈런을 때린 것은 2019년 4월 8일 케빈 필라 이후 이정후가 처음이다.
이정후는 “타구의 탄도가 조금 낮았지만, 구장 가장 가까운 쪽으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타구가) 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일자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최소 2루타라고 생각했는데 넘어가서 깜짝 놀랐다”며 홈런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이정후는 “이런 부분은 결과론적인 얘기”라며 말을 이었다. “상대 입장에서 봐도 홈런을 맞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은 결과론적인 얘기”라며 상대의 선택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크리스티안 코스의 만루홈런, 윌리 아다메스의 투런 홈런, 이정후의 스리런 홈런 등을 앞세워 10-6으로 이겼다.
멜빈 감독은 “결국은 어떻게 과정을 겪으며 반응하느냐의 문제”라며 최근 침체에서 벗어난 타선에 대해 말했다. “오늘의 선전이 우리 자신에 대해 약간은 더 좋은 기분을 갖게 해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