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칸의 눈부신 분홍빛 카펫 위,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의 중심에 한국의 여성 아티스트가 섰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제9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마담 피가로 라이징 스타상’을 거머쥔 블랙핑크 지수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월간남친’과 ‘뉴토피아’를 통해 국제적인 영향력과 예술적 성장을 거듭하는 유망한 인물로 호명된 그의 수상은 결코 가벼운 해프닝이 아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의 상징인 그가, 가수라는 익숙한 왕관을 잠시 내려놓고 혹독한 배우의 길에서 얻어낸 첫 번째 국제적 성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영광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수가 칸으로 향하기까지 걸어온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가장 무거운 짐은 최근 불거진 친오빠의 범죄 혐의(성추행 및 가정폭력 논란)였다. 지수 본인과는 전혀 무관한 가족의 일탈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분노는 가장 유명한 혈육인 그에게로 튀었다.
출국 전 예정되어 있던 공항 패션 취재 일정이 돌연 취소되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현대판 연좌제’의 폭력성 속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그의 심적 고통은 이루 짐작하기 어렵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연기력 논란, 그리고 정면 돌파
가족 리스크 이전부터 지수를 짓누르던 본질적인 과제는 다름 아닌 ‘연기력’이었다. 첫 주연작이었던 드라마 ‘설강화’ 데뷔 시절부터 발음과 발성, 감정선의 깊이에 대한 지적은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흥행을 거둔 ‘월간남친’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품의 인기는 높았으나, 배우 지수를 향한 대중과 평단의 시선은 여전히 엇갈렸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기본적인 노력조차 부족해 보인다’는 매서운 혹평까지 쏟아졌다. 세계 최정상 걸그룹 멤버라는 거대한 후광은 역설적으로 그가 배우로서 짊어져야 할 평가의 잣대를 더욱 날카롭고 엄격하게 만들었다.
칸의 핑크카펫, 예술적 여정을 향한 묵직한 지지
그렇기에 이번 칸 시리즈 페스티벌에서의 수상은 지수에게 단순한 트로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주최 측인 마담 피가로는 지수를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며 다양한 장르를 개척해 나가는 입체적인 인물로 조명했다.
단순히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나 화제성을 치켜세운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다양한 창작 영역에 뛰어들며 자신만의 예술적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 ‘과정 자체’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인정이다.
무대에 오른 지수가 프랑스어로 “메르시 보쿠(감사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모든 과정이 제게 나아가는 힘이 됐다”고 밝힌 수상 소감은 그래서 더 뭉클하다. 구설수와 편견의 진흙탕 속에서도 배우로서의 성장을 멈추지 않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굳은 다짐이자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영예를 넘어 진짜 ‘성장’을 증명해야 할 시간
하지만 비평의 저울은 냉정해야 한다. 칸의 무대에서 박수를 받았다고 해서 그를 향한 국내의 뼈아픈 연기력 비판이 하루아침에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번 수상이 일회성 이벤트나 거품으로 남지 않으려면, 지수에게는 앞으로의 작품 선택과 치열한 연기 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세계가 그의 ‘가능성’을 인정했다면, 이제는 그 가능성을 타당한 ‘실력’으로 증명해 보일 차례다.
가족의 잘못으로 덧씌워진 부당한 연좌제의 멍에는 훌훌 벗어버리길 바란다. 대신 자신의 연기를 향한 날 선 비판만큼은 뼈아프게 삼키고 성장의 디딤돌로 밟고 일어서야 한다. 블랙핑크의 지수를 넘어, 진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그의 치열한 두 번째 챕터. 칸의 핑크카펫이 그 눈부신 비상의 진짜 시작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