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무대가 낯선 FC안양.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에 몰두하기보다는 구단 창단 후 첫 우승, 승격 주역들 지키기에 먼저 나섰다. 이 가운데 가장 늦게 동행 소식을 알린 리영직은 유병훈 감독과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리고 안양과 함께 도전을 이어가기로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딸의 한마디가 큰 영향을 끼쳤다. 리영직은 “딸바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영직은 북한 국가대표 출신 재일교포 미드필더다. 일본 오사카 태생의 그는 줄곧 J리그에서 활약했다. 2013년 도쿠시마 보르티스에서 프로데뷔해 V바렌 나가사키, 카마타마레 사누키, 도쿄 베르디, FC류큐,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 등 J리그에서 10년 동안 커리어를 쌓은 베테랑이다.
지난해 3월 안양으로 이적을 확정하며 첫 K리그 무대에 도전했다. 187㎝의 큰 신장과 탄탄한 체격을 가진 리영직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를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안양 합류 후 팀의 핵심으로 발돋움했다. 유병훈 감독의 4백 체제에서 김정현과 함께 팀의 3선을 책임지며 팀의 안정감을 더했다. 시즌 막판에는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중앙 수비수 자리까지 소화하며 1부 리그 승격에 큰 힘을 보탰다.
이적 당시 1년 단기 계약을 맺었던 리영직, 안양은 우승 주역들을 지키기 위해 힘썼으나, 리영직을 향한 타 팀들의 관심은 꽤 컸었다. 안양은 김다솔, 이태희, 김영찬 등 기존 핵심 선수들과 차례로 재계약을 맺으며 주축들과의 동행을 확정했다.
마지막까지 리영직과의 동행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지난해 12월 재계약을 체결, 리영직은 1월 태국 전진훈련에 동행해 팀과 함께 K리그1 도전을 위한 구슬땀을 흘리게 됐다.
다만, 출국 과정에서 국적으로 인해 한국 입국 후 곧바로 태국 출국이 어려워 현지 합류가 다소 늦어졌다.
안양 선수들은 하나같이 리영직에 대해 ‘가장 장난이 많은 선수’라고 꼽는다. 취재진과 마주한 리영직은 웃음이 많고, 수수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축구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동료들의 평가처럼 리영직은 구단 내 한 사람 한 사람과 두루 친근하게 어울리는 듯했다. 취재진을 처음 만난 리영직은 구단 관계자에게 “한국말을 못 하니 통역해달라”고 한국말로 말하며 웃어 보였고, 관계자는 “팀에서 말 제일 잘하는 거 알고 있다”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후 리영직은 그동안 느껴왔던 안양과 재계약 과정,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하나씩 답해갔다.
■ 다음은 FC안양 미드필더 리영직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 새 시즌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합류가 늦었다. 태국에 1~2주 정도 늦게 들어왔다. 솔직히 여전히 몸을 만들고 있다. 아직 100%가 아니다. 완벽하게 몸 상태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 재계약이 다소 늦었다. 유병훈 감독이 몸 상태가 아직 올라오지 않아 걱정하는 모습이었는데
시즌 종료 후 진짜 너무나도 고민이 많았다. 알다시피 다른 팀들의 제안을 받았다. 가족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기에 솔직히 더 고민이 깊었고, 가족들과도 많이 대화를 나눴다. 재계약이 늦어져서 감독님, 팀원들에게 너무나도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조금 더 빨리 팀에 합류하고 싶었는데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 안양과의 재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서 확신이 드는 순간이 있었는가
사실 이적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에이전트에게도 안양에게 내 의사를 전달해달라고 했고, 에이전트가 감독님을 만나 이적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감독님이 에이전트를 통해 깊은 대화 내용을 전달했고, 이를 통해 다시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였었다.
- 유병훈 감독의 어떤 말이 크게 마음을 동요하게 했는가
감독님의 말씀으로 생각이 깊은 상황이었는데, 그때 집에서 딸이 안양의 응원가를 쭉 부르고 있더라. 딸과 함께 안양 영상을 같이 보고 있었는데, 딸이 ‘아빠 내년에도 안양 응원가 부를 수 있어?’라고 물어왔다. 그 순간 안양에 남아야 할 것 같다고 확신이 들었다. 감독님의 말씀, 딸의 질문으로 더 깊게 고민했고 2~3시간 동안 고민할 시간을 가진 뒤 안양을 위해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딸의 역할도 컸던 것 같은데
너무 신기하다. 딸이 함께 살지 않고 있고, 매 경기에 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안양 응원가를 외우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아내가 말해주지는 않지만, 집에서 아내가 안양과 관련한 영상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 리영직 선수에게 한국은 타지다. 가족 생각도 많이 날 것 같은데
아내에게 너무나도 큰 힘을 받고 있다. 이제 아이가 둘이다. 혼자서 육아를 도맡는 것이 힘들 텐데 나한테는 ‘축구를 즐겨라’고 말해준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몇 년 더 못할 것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니까 너무나도 큰 힘이 되고,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 이전까지 J리그 무대에서 오래 뛰었다. K리그는 지난해 처음이었는데 J리그와 K리그의 차이점이 있는가
J리그는 확실히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조직적으로 경기를 풀어간다. K리그는 그보다는 개인적인 능력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K리그도 조직적으로 경기를 풀어간다. 안양도 그렇고 몇몇 팀들도 그렇다.
- 안양 합류 후 첫 시즌 만에 승격 주역이 됐다. 그동안 안양이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보면 승격 주역의 일원이 됐다는 것에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사실 이적생들에게 보여주는 구단 영상을 보지 못했다. 작년 3월에 합류했고, 올해도 합류가 늦었다. 그래서 구단에서 보내준 영상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수카바티’ 영화를 보고 팀의 역사를 알았다. 안양은 언제나 팬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해 준다. 팀의 역사도 중요했지만, 그런 팬들에게 답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들었던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안양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축구선수로 우승을 경험했던 것은 행복했다.
- 팬들이 재계약 소식을 정말 많이 기다렸다. 동료들 또한 많이 궁금했을 것 같은데
어느 날 기사가 나왔었다. 그때 동료들에게 많이 연락이 왔었다. 동생들이 ‘형 떠나요?’라고 했었다. 제안들이 있었지만 재계약 이후 일부 형들과 몇몇 선수들에게 미리 말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연락하기 힘들어서 카톡에 ‘2025 FC안양’이라는 프로필을 올려 보여줬었다. 안양과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가장 쉽게 확인해줬던 것 같다.
- 이제는 K리그1 무대에 도전한다. K리그2 때와 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는가
안양의 전술 완성도를 더 높여갔고 지켜가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우리 팀이 더 많은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해 둘째 출산 소식이 있었다. 딸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딸바보라고 느끼는가
저는 너무나도 딸보다.
- 둘째 출산으로 잠시 팀에서 자리를 비운 시간도 있었다. 우승 레이스를 펼쳤던 기간이라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은데
감독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감독님께도 똑같이 말씀드렸고, 남으라 하면 수원삼성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했었다. 팀을 위해 뛰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감독님께 결정해달라고 요청했고, 감독님께서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니 갔다 오라고 말해줬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사실 지금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축구를 더 못했을 수도 있었기에 한없이 감사하다.
- 개막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첫 상대가 ‘디펜딩 챔피언’ 울산HD다. 울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일본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과 많이 대화했다. 울산에 대해 일본 팀들과 같이 축구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대응하기 쉬웠다고 했었다. 하지만 울산 선수들이 개인 능력이 너무 좋아서 그 부분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을 얻었다. 조직적으로 상대하면 좋은 결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새 시즌 목표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저는 팀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돕는 선수가 되고 싶다. 팀의 목표는 ‘6강’이다. 프로 시작 후 언제나 팀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노력해 왔다. 이번에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120% 집중하고 있다.
- 비시즌 때는 어떻게 보냈는가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었다. 솔직히 힘들었다. 지금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서 귀엽긴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육아는 역시 너무나도 힘들다. 아내가 너무나도 대단하다.
- 오늘 연습 경기를 지켜봤다. 기분이 어땠는가(4일 안양은 남해에서 거제시민축구단과 연습경기를 진행했다)
솔직히 너무나도 뛰고 싶었다. 태국에서 몸을 끌어올리는 기간을 설정하고 그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큰 마음이 없었는데, 동료들이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뛰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 유병훈 감독은 시즌을 준비하면서 비법노트를 제작한다. 올해도 준비했다고 하는데 올해 비법노트는 어떤가
작년에도 비법노트를 읽었지만, 감독님의 축구는 정말 일본 축구와 많이 비슷하다. 감독님께서도 이적 당시 일본 축구와 비슷해서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해하고 쉬웠다.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감독님은 처음이다. 작년과도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확실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도 더 많은 경기에 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감독님이 원하는 부분을 빨리 캐치하고 적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안얀 팬들에게 전하는 각오 있는지
너무나도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시는 모습 때문에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은 120% 이상 힘을 받고 있다. 안양을 위해 뛰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작년 이상의 응원을 부탁드리고 싶다. 우리 선수들도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다. 더 좋은 관계로 K리그1에 함께 도전했으면 좋겠다. 작년보다 더 좋은 결과로 시즌을 함께 마무리하고 싶다.
[남해=김영훈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