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2552. 이 숫자는 선수의 땀이나 그간의 눈물을 표현하지 못한다. 제춘모(SK 와이번스)의 2552일은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안됐지만 놓을 수 없었던 절실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정재복과의 ‘2군 풍운아 대결’ 패배에도 제춘모는 행복했다.
제춘모는 17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LG-SK전에서 2005년 5월 2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현대전 이후 7년여 만에 마운드 위에서 애국가를 들었다. 공백이 무색할 정도의 7이닝 3피안타(1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역투를 펼쳤으나 이날 주인공은 비슷한 운명의 정재복이었다. 정재복은 이날 볼넷 2개만을 허용하는 6⅔이닝 노히트노런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고 제춘모는 3회 오지환에게 내준 솔로홈런이 결승타가 되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제춘모의 투구는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만수 감독은 18일 경기 전 덕아웃에서 제춘모의 바뀐 투구폼을 직접 시연하는 등, 이전과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투구폼까지 바꾸는 노력을 한 절실함을 크게 칭찬했다”고 말했다.
제춘모는 절실했다. 투구폼을 바꾼다는 건 분명 모험이었다. 제춘모는 이같은 이 감독의 공개 칭찬에 대해 쑥스러워하더니 “절실했으니까”라고 운을 뗐다. 제춘모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코치님을 찾아가서 폼을 찾고 싶다고 매달렸다”며 투구 준비 동작이 짧고 빨라진 투구폼으로 변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제춘모는 2002년 큰 기대를 받으며 SK의 2차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됐다. 2003년 10승을 거두고 차세대 에이스로 평가받았지만 2005년 팔꿈치 수술, 2006~2008년 군생활 이후 예전 폼을 찾지 못했다. 2010년 9월 26일 넥센전 이후 까마득한 1군의 기억. 정말 마지막이었다.
투구폼을 바꾸는 것은 모험이었지만 일단은 성공이다. 제춘모는 절실하고, 절실했다. 사진=김현민 기자
제춘모는 “아직 진짜 많이 어색하긴 한데 마지막이니까...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니까 코치님한테 정말 많이 매달렸다”라며 “이제 조금씩 제구가 잘되니까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간 송도 LNG파크에서 흘렸던 땀은 제춘모를 성장시켰고 정재복과의 인연도 깊어지게 했다.
큰 신장의 정재복(192cm)과 제춘모(191cm)는 비슷한 투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2군 풍운아’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제춘모는 정재복과의 선발 대결의 대해 “말도 마라 2군에서 정말 많이 붙었다. 그런데 2군 풍운아들끼리 붙었는데 졌다”라고 살짝 한숨을 쉬더니 “사실 경기전에 몸 풀면서 만나 ‘좀 어색한데 우리. 구리에서 봤어야 되는거 아니냐’고 서로 말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 다 이 순간이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호투에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한 제춘모는 지인들에게 격려가 담긴 많은 축하 연락을 받았다. “2군 투수들한테 문자가 정말 많이 왔다. 내가 좀 잘했나 보다”고 웃던 제춘모는 당분간 로페즈 대신 선발로 기용하겠다는 이만수 감독의 의중을 듣고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절실했던 제춘모는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 다시 재기의 기회를 얻은 것이고 그것이 안락한 보장이 아니라는것을 알기에 환하게 미소 짓지 못했다.
제춘모는 “패배가 전혀 아쉽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꽃미남 투수로 불렸던 유망주 제춘모는 어느덧 서른살이 됐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이렇게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