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희원’이요? 아직은 전혀 실감을 못 하고 있어요. 다만 배우냐 감독이냐 보다는 ‘김희원’이라는 사람이 어떤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지,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배우’ 김희원이 아닌 ‘감독’ 김희원이다. ‘모험’이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로 생소했던 ‘연출’과 ‘김희원’의 만남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디즈니+ ‘조명가게’를 통해 배우가 아닌 연출자로 성공적인 데뷔한 김희원은 소감을 붇자 “‘정말 참 다행이다’가 제 소감이다. 욕만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배우 하다가 왜 쓸데없이 영역을 침범하느냐고 했던 분도 계실 거고, 안 좋게 보시는 분들, 선입견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 ‘욕만 안 먹으면 참 다행이다’ 했는데 다행히 욕이 없더라”고 소탈하게 말했다.
“연출에 대한 생각은 늘 있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제가 나중에 영화나 시리즈와 같은 같은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될 경우, 이런 때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었거든요. 사실 대학 때 제 전공은 연기가 아닌 연출이었어요. 배우를 시켜주니 배우가 된 거죠. 하하. 연출은 작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잖아요. 제가 연출을 하겠다고 결단 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은 거 같아요. 사실 저보다 저를 써 주시는 분들의 큰 결단이 더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김희원이 연출을 하게 된 배경에는 ‘조명가게’의 원작 작가이자 대본을 집필에 나선 강풀 작가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 강풀 작가에게 왜 자신을 추천했는지 물어봤느냐는 질문에 김희원은 “표면적인 이유는 ‘연기를 잘 하셔서’였다”고 말했다.
“저도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저는 연출을 해본 적이 없고, 연기만 해 왔는데, 왜 저였냐고요. 일단 제가 들은 워딩은 그거였어요. ‘연기를 잘 하셔서요.’ 하지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저 혼자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연기 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그냥 저 혼자 생각한 건 제가 ‘무빙’에서 초능력이 없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싸우는 선생님 역을 했잖아요. 원래대로 보면 사실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인데 안 죽더라고요. 저는 그게 이상했어요. 그리고 또 한 편으로 평범한 인간인 최일환의 편에서 보면, 초능력자들과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잖아요. 목숨을 걸고 싸울 정도면 애들을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선생님이지만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싸울만한 정당성이 없잖아요. 그런 전사가 없이는 연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최일환이 자기 존재감을 잃을 때는 싸울만하다. 애들도 사랑하고’라는 생각 하에 ‘존재의 이유’를 구현했죠. 그렇게 대본을 고쳤어요. 그때 작가님께서 저에게 ‘설득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전체적인 흐름에 말도 안 된다, 이야기 했더니 흔쾌히 고쳐주신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런 생각을 하신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연기를 잘 하셔서’입니다.”
강풀 작가의 강력한 추천으로 시작된 연출이지만,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이는 당사자 역시 큰 결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무빙’의 성공 이후 전 세계 관심을 받고있는 강풀 작가의 유니버스 세계관의 작품이면 그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맡게 된 것은 ‘조명가게’라는 작품이 주는 매력에 있었다.
“제가 ‘조명가게’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요즘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액션’이라든지 ‘장르물’은 많은데, ‘조명가게’처럼 삶과 죽음, 정신세계와 의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작품이 많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어려울 수도 있고, 가뜩이나 사는 것도 힘든데 싶다가도, ‘하지만 재밌을 거야 기존의 이야기와 다르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연출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조명가게’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초반에 등장하는 입관 장면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입관 장면을 약 10분간 보여준 이유에 대해 김희원은 “원래는 더 길었는데 너무 길다는 평이 있어서 굉장히 많은 부분이 삭제된 것”이라고 답했다.
“‘조명가게’가 글로벌 OTT잖아요. 국내 시청자 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분들도 보실테니, 한국의 장례문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한국 악기를 쓰기도 했고, 실제로 전통 장례 의식을 하시는 분을 모셔서, 그 과정을 다 찍었어요.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한국은 장례를 저렇게 하는구나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첫 연출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독 김희원은 능수능란했다. 김희원의 연출력은 초반 4회까지만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1화부터 4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변주로 보는 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1부에서 다음 화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 재미가 필요하잖아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장르별로 찍자’ 싶었죠. 1화는 서스펜스로 찍었다면, 2화는 호러식으로 3화는 활극으로 찍었고 4화는 거기에 반전을 주자였어요. 그래서 보시면 1화는 스케줄 카메라를 안 움직이는 형태로 찍었고, 2화는 스탠딩 카메라지만 무빙을 넣어, 장르적인 재미를 주자라는 의도가 있었죠. 헷갈리는 대로 놔둘 것인가, 더 많은 생각을 넣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너무 많이 알려주면 재미없겠다 싶기도 하더라고요.”
김희원은 ‘조명가게’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후 달라진 점에 대해 “겸손해졌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절대
“저는 만들어지는 영상물에 대해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소속속들이를 면밀히 다 알겠어요. 제가 느낌을 이야기하면, 제가 말한 뉘앙스에 맞게 스태프들이 준비해 주었죠. 그럼 저는 준비해온 것을 잘 조합하고 아이디어와 의견을 넣는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제 생각보다도 더 훌륭하고 좋은 아이디어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게 종합예술이구나를 다시 느겼죠. 작가가 대본을 쓰고 연출이 대본을 보고 해석을 하고, 그 해석에 따라 각자 분야에서 작품을 만들고, 결과물이 나오면 홍보를 하고.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다는 걸 ‘조명가게’를 하면서 더 많이 느꼈어요. 그러면서 ‘이거 되게 겸손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기존의 받았던 대본과 강풀 작가가 직접 집필한 대본이 달랐던 점에 대해 김희원은 “정서의 흐림이 좋았다, 모든 것에 정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액션을 하든 초능력을 하든 모든 것에 정서를 꼭 넣으시면서, 정서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흔적이 보였고, 저는 그 지점이 좋았어요.”
강풀 작가와 부딪치는 부분은 없냐는 질문에 “의견 차이는 많닸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떻게 극복했냐는 말에 김희원은 “설득하느라고 강풀 작가 앞에서 1인극을 했다”고 웃었다.
“저희가 둘이서 굉장히 자주 만났어요. 새벽 2시에도 만나고 아침 6시에도 만나고, 제가 귀찮게 했죠. 나중에 현장에서 의견이 갈라지면 골치 아프잖아요. 프리 기간은 고칠 시간이 있으니, 이때 의견 차이를 줄여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1~8부까지의 모든 신을 콘티로 해서, 작가님 앞에서 연기를 하면서 보여줬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든 신을 혼자서 연기하려니 힘들더라고요.(웃음) 모든 콘티를 다 해 놓은 다음에, 한 신씩 연기하고 ‘동의하느냐’고 확인했죠. 이 과정을 꽤 오래 거쳤어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콘티대로 찍느라 정신이 없었죠. 1인극에 대한 강풀 작가의 반응이요? 제가 원맨쇼를 하니 막 웃더시더라고요”
연기와 연출, 두 영역을 모두 경험해 본 김희원은 무엇이 더 힘드냐는 질문에 “물리적으로는 연출이 100배 힘들다. 물리적인 시간이 힘들고 스트레스도 너무 많다. 쉬는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연기를 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느냐는 말에는 “주지훈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이 작품을 하면서 힘들었던 지점은 상상을 아무리 해도 현실적으로 안 될 때가 꽤 많이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속상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데, 또 감독은 모든 이들과 소통해야 하잖아요. 함께 일하는 이들을 응원해주고,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다 같이 ‘으샤으샤’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눈치 보게 되더라고요. 하하. 그렇게 돼요. 그동안 매일 출근하면서 ‘오늘도 세트 안전하겠지’ 시종일관 걱정했던 것 같아요.”
‘조명가게’로 연출을 시작한 김희원. 다음 연출작에 대한 계획을 묻자 “저도 잘 모르겠다. 아직은 아무생각이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연출 제안과 연기 제안이 동시에 들어온다면 저는 그 중에서 조금 더 재밌는 걸 선택할 거 같아요.”
[금빛나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