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축구를 한 단계 올려주고도 치졸한 경질을 당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끝까지 품격 넘치는 작별인사를 전했다.
신태용 감독은 1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도네시아 대표팀 선수들, 인도네시아축구협회(PSSI)장, 코치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먼저 신태용 감독은 “우리 인도네시아 대표팀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큰 힘이 되어준 에릭 토히르 협회장님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 협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성과를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치하한 이후 “인도네시아축구협회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항상 도와주시고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우리 코치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언제나 뜻과 힘을 모아 좋은 결과를 위해 항상 선수들과 함께 뛰어준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협회와 코칭스태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2020년부터 동고동락했던 인도네시아 선수들에게도 깊은 감사와 함께 당부의 말을 전했다.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2026년 월드컵을 꼭 진출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이 월드컵 무대를 꼭 밟는 것이 내 소원”이라며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응원했다.
인도네시아는 월드컵 3차 예선 C조에서 1승3무2패(승점 6)로 선전하면서 3위에 위치,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직행 티켓을 노리고 있다. 당초 인도네시아는 최하위가 점쳐질 정도로 ‘죽음의 조’에서 고전할 것이란 평가가 많았지만 선전을 펼치며 기적의 월드컵 진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신태용 감독은 “저를 사랑해주시고 성원해주신 인도네시아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저에게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과 응원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인도네시아의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경질에도 끝까지 품격 있는 작별 인사를 전한 신태용 감독이다.
이에 반해 작별의 과정은 석연치 않았다. 2020년부터 사령탑을 잡은 이후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의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을 재임 기간 173위에서 127위로 약 50단계 가까이 끌어올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에 올랐다. 이 대회 16강에 오른 동남아시아 팀은 인도네시아가 유일했다.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걸렸던 2024년 4월 U-23 아시안컵에선 한국을 꺾고 준결승에 오르는 엄청난 이변을 일궜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아시아 4강에 오르며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진출 등의 성과를 냈고 현재도 인도네시아는 조 3위로 순항 중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특별한 해임 배경을 밝히지 않고 신태용 감독을 경질한 이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네덜란드) 감독을 새롭게 선임했다.
내부적으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출신의 귀화선수를 중심으로 선수단의 전력을 꾸려가고 있는 상황. 신태용 감독의 경질 배경으로 PSSI가 밝힌 것은 지난해 10월 A매치 중국전 패배 이후 네덜란드 귀화 출신 선수의 항명이 있었고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표면상의 이유일 뿐 실질적으로는 루이스 반 할 감독을 디렉터로 선임하고 네덜란드 귀화선수를 계속해서 늘려가는 등 인니의 대표팀 체질을 네덜란드식으로 개편하기 위해 신태용 감독과는 명분 없는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SI는 신태용 감독의 역량과 성과를 인정해 이미 지난해 6월 2027년까지 계약을 연장한 바 있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운 이번 경질 상황이다.
동시에 신태용 감독이 클럽 감독으로 수많은 경력을 쌓은 것은 물론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뚜렷한 성과를 낸 바 있는데 비해 클루이베르트 신임 감독은 지도자로선 ‘초짜’에 가깝기에 이를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클루이베르트 감독은 현역 선수로 아약스, AC밀란,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네덜란드 대표팀의 영광을 이끈 전설적인 선수다.
하지만 감독으로선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북증미카리브해의 네덜란드령 퀴라소 대표팀을 맡을 것을 제외하면 대표적인 커리어가 많지 않다. 지난해 7월 튀르키예 아다나 데미르스포르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6개월만에 경질됐다.
사실상 세계적인 명장으로 불리는 루이스 반할 감독의 밑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의 코치를 맡은 것이 지도자로서 가장 큰 커리어였을 정도다. 이런 클루이베르트 감독인만큼 루이스 반할 감독이 사실상 인니 축구 전반을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명성 높은 루이스 반할 감독을 디렉터로 데려오기 위해서 신태용 감독이 희생양으로 밀려난 것. 아시아 축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신태용 감독을 경질한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도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이 쏠리게 됐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