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스크린 컴백이다. 영화 ‘협상’ 이후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로 돌아온 배우 손예진이 더 탄탄해진 연기 내공으로 빚은 독보적인 캐릭터 ‘이미리’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이후 7년 만에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온 손예진은 이미리를 연기했다. 그는 분량이 많은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끌림이 있었다. 많은 걸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보다 오히려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들기도 했지만, 손예진은 “결과적으로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전했다.
“원래 대본 분량이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은 이유는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기 때문임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캐릭터의 분량을 떠나서 미리의 캐릭터가 색깔이 있어 보이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제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그 캐릭터가 연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오히려 그런 역할을 배우가 하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 대사, 상황이 임팩트가 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게 많다면 잔잔한 캐릭터가 사실 더 힘들다는 거다. 이걸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7년 만의 복귀작으로 더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런 걸 감안해서라도 감독님과 꼭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이병헌 선배님의 연기도 가까이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그런 걸 모두 다 떠나서 영화를 본 후에 이거 안 했으면 후회할 뻔했다 싶었다.”
극중 이미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에도 밝은 얼굴로 그를 위로할 만큼 긍정적이면서도, 가세가 기울어가는 현실 앞에서는 이성적으로 대처한다. 특히 위기의 순간 더 강해지는 생활력을 지닌 미리는 극에 드라마틱한 숨결을 불어넣으며 박찬욱 감독 작품 속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다.
손예진이 만들어낸 ‘미리’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됐다. 그런 완벽한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손예진은 장면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애드리브를 넣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저는 대사가 주어졌을 때 대사를 대사같이 않게 하는 연기를 선호한다. 말투도 전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면 이번에 감독님을 만나서는 100% 맞추려고 했다. 국어책을 읽듯이 띄어쓰기나 단어를 붙여서, 한 단어였다면 한 단어로 꼭 말해야 하는 게 있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귀가 저도 밝은 편인데 감독님 귀는 따라갈 수가 없다. 사운드에 되게 민감하시니까 시키는대로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은 정말 못 따라 갈 것 같다.(웃음) 극중 초반에 원래는 미리가 만수(이병헌 분)에게 테이스화를 선물 받는 거였다. 어느 날 문득 대본을 보다가 테니스화는 재미없을 것 같아서 댄스화로 제안해서 변경하게 됐다. 신발 신는 것도 혼자 신은 거고 식탁에 앉아서 먹은 것도 거의 다 애드리브였던 것 같다. 행동은 다 애드리브였다. 애교도 몸소 나온 본능적인 애드리브였다.”
손예진과 이병헌의 현실감 넘치는 부부 호흡은 ‘어쩔수가없다’의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미리의 모습을 통해 손예진은 극의 긴장부터 재미까지 다채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제가 느끼기에는 항상 (이병헌을 봤을 때) 평온해보였다. 박 감독님도 그렇고 이병헌도, 물론 (극중) 저랑 만났을 때는 가정에 돌아와서 평온한 척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연기를 해야 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래서 너무 유연해보이고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보이고 그게 너무 신기했다. 감독님도 그렇고 고수들은 한방에 베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배우 현빈과 2022년 결혼한 후 그해 11월 출산을 한 손예진은 3년간 배우 활동 대신 육아에 매진했다. “워킹맘으로서 쉽지가 않다”라며 웃어 보인 그는 “아예 일을 못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제 ‘멜로 여배우’라고 했을 때 관객들이 그것을 얼마만큼 몰입해서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노파심과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멜로 장르에 대한 욕심도 놓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고 충분히 다들 하시고 계시고 그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험이 쌓이고 하면서 엄마의 모습들 같은 게 오히려 열려있고 어떻게 보면 거리낌이 없다고 해야 하나. 다른 방향의 시작이라고도 들어서 그런 것에 대한 걱정도 있긴 하지만 김희애 선배님처럼 ‘밀회’를 할 수도 있지 않나. 멜로에 대한 생각도 있다. 나이 든다고 해서 사랑 이야기를 안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엄마 손예진’으로 살면서 변화한 점도 있다. “변화가 1부터 10까지 다 변화한 것 같다”고 말한 손예진은 “어떤 부분은 변하고 어떤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고 하기보다, 그냥 예전에는 모자 쓰고 다리고 가리고 다니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기가 있으니까 동네 놀이터에 가면 친구가 있으니 친해진 쌍둥이 집도 있고 뭔가 생활 자체가 엄마 그 자체가 된 느낌이다. 일이 있는 게 행복한 엄마인 느낌? 나를 단련하고 운동도 할 수 있고 내가 뭔가 나가서 일을 할 수 있고 이런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 것 같다”라고 밝혔다.
[손진아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