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조명이 켜지자, 실루엣부터 흐려졌다. 김규리는 블랙 레이스가 겹겹이 얹힌 드레스로 몸선을 지우고 시선을 남겼다. 선명해야 할 윤곽 대신 착시가 만들어낸 여백, 그 사이로 피어난 이미지는 ‘흑장미’였다. 레드카펫 위에서 김규리는 과장 없이도 충분히 강했고, 설명 없이도 오래 남았다.
29회 춘사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이 열린 23일, 김규리는 블랙 드레스로 또 한 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조명이 비칠 때마다 다른 표정을 만들어내는 레이스 드레스는 단순한 블랙이 아닌,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착시의 흑장미’에 가까웠다.
이날 김규리가 선택한 의상은 전신을 덮는 블랙 레이스 드레스였다. 안감과 레이스의 밀도 차이로 자연스러운 명암이 생기며, 실루엣이 더 또렷해 보이는 착시 효과를 냈다. 장미 패턴이 반복된 레이스는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관능을 더했고, 허리선을 따라 떨어지는 라인은 체형을 더욱 정제되게 살렸다. 단정한 길이감 덕분에 클래식한 분위기 또한 놓치지 않았다.
헤어스타일은 과한 연출 대신 로우 포니테일로 정리했다. 옆 가르마를 깊게 타 얼굴선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레이스 드레스 특유의 밀도를 헤어에서 한 번 더 눌러준 선택이었다. 잔머리를 최소화한 깔끔한 스타일링은 성숙한 이미지를 강조했고, 전체적인 인상을 한층 차분하게 만들었다.
메이크업은 ‘선명함’보다 ‘결’에 집중했다. 피부는 과도한 광을 배제한 세미 매트 톤으로 정리해 레이스 질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눈매는 아이라인을 최소화해 또렷함만 남겼다. 대신 립 컬러를 레드에 가까운 코럴 톤으로 선택해, 블랙 드레스 속에서 얼굴에 생기를 더했다. 강하지 않지만 분명한 포인트였다.
블랙 레이스, 절제된 헤어, 균형 잡힌 메이크업까지. 김규리의 레드카펫 패션은 노출이나 과장 없이도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흑장미처럼 짙고, 착시처럼 오래 남는 인상이었다.
한편 김규리는 1997년 잡지 ‘휘가로’를 통해 데뷔했으며, 올해 46세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이미지로, 여전히 레드카펫 위에서 자신만의 결을 유지하고 있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