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배드민턴계를 완전히 지배한 안세영(23·삼성생명)이 숨 돌릴 틈도 없이 2026년 시즌을 시작한다. 그것도 새해 첫날을 비행기 안에서 맞으면서 말이다.
박주봉 감독이 이끄는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은 12월 31일 오후 11시 인천국제공항에 집결해 새해가 되는 1월 1일 오전 0시 10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안세영을 포함한 23명의 선수단은 새해 첫 순간을 상공에서 보내며 강행군의 시작을 알린다.
안세영의 2025년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안세영은 자신이 출전한 16개 대회 중 11개 대회를 제패하며 여자 단식 단일 시즌 최다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2019년 남자 단식에서 모모타 겐토(일본)가 세운 기록과 동률이다.
안세영은 특히 슈퍼 1000 3개, 슈퍼 750 5개 등 총 8개의 최상위 등급 대회를 석권했다. 지난 21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월드투어 파이널에선 왕즈이(세계 2위)를 꺾고 4년 만에 정상 탈환에 성공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숫자로 본 안세영의 한 해는 더욱 압도적이다.
안세영은 73승 4패, 승률 94.8%를 기록했다. 이는 배드민턴 황제로 불리던 린단(중국)과 리총웨이(말레이시아)가 공동 보유했던 92.7%를 2.1% 포인트나 웃도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중국 매체 ‘넷이즈’는 “대회 개최 빈도가 훨씬 높아지고 정상급 선수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환경에서 77경기 중 단 4패만 기록했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라며 “안세영은 여자 단식의 기준을 새롭게 쓰고 있다”고 극찬했다.
안세영은 또한 배드민턴 역사상 최초 단일 시즌 상금 100만 달러(한화 약 14억 원)를 돌파했다. 2위 왕즈이(약 9억 원)와의 격차도 압도적이다.
안세영은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선정한 올해의 여자선수상과 선수들이 주는 여자선수상까지 독식하며 명실상부 2025년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런 안세영에게 연말은 없다.
내달 6일 개막하는 2026 BWF 말레이시아 오픈(슈퍼 1000)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회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시드 배정이다.
세계 1위 안세영은 당연히 1번 시드를 받았지만, 문제는 5번 시드로 배정된 천위페이(세계 5위·중국)다. 안세영은 천위페이와 8강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 오는 30일 진행될 대진 추첨에서 안세영과 천위페이가 같은 라인에 배치되면, 우승 후보들의 빅매치가 8강에서 성사된다.
중국이 ‘안세영 저지’의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는 천위페이와의 조기 대결 가능성에 배드민턴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안세영과 천위페이의 역사는 드라마틱하다. 2018년 첫 대결 이후 안세영은 4년간 천위페이에게 7연패를 당하며 고전했다. 하지만, 2022년 첫 승을 거둔 뒤 판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안세영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천위페이를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세영은 현재까지 천위페이와 통산 전적 14승 14패 동률을 기록 중이다. 2025년 맞대결에서도 5승 2패로 앞서며 우위를 점했다.
중국은 천위페이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넷이즈’는 “천위페이는 안세영의 난공불락 수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싱가포르 오픈 8강에서 안세영의 27연승 행진을 2-0으로 끊어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부상 투혼 끝 승리하며 안세영 공략이 가능함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천위페이는 “안세영은 코트 위에서 경이로운 성장을 보여주는 선수”라며 “그의 우승을 향한 야심을 존경한다”고 예우를 표했지만, 코트 위에서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남아있다.
‘넷이즈’는 “안세영의 경이로운 성적은 일시적 영광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필연적 결과”라며 “역사의 재창조를 목격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매체는 이어 “‘만능 전사’라는 별명을 가진 안세영은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며 한쪽 기술에만 치우친 여자 단식의 전통적 양상을 깨뜨리고 있다”며 “그는 매 경기 승리로 배드민턴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고전적인 ‘린단-리총웨이’ 시대에 이어 안세영 시대를 목격하는 것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라고 감탄했다.
안세영은 지난 22일 귀국 인터뷰에서 “월드투어 파이널을 마치고 나니 올해 마지막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한 해를 돌아보면서 마지막까지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짧은 휴식도 잠시, 안세영은 다시 코트로 향한다.
안세영은 말레이시아 오픈에 이어 인도 오픈(슈퍼 750)에도 출전해야 하며, 내년 9월에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도전도 앞두고 있다.
새해 첫날을 하늘 위에서 맞이하며 시작되는 안세영의 2026년. 그는 올해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당장 30일 대진 추첨에서 천위페이와의 8강 조기 격돌이 현실화할지 배드민턴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