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가 2000년대 청춘들의 서툰 사랑을 대변했다면, “만약에 우리가 그때...”는 2020년대 청춘들의 뼈아픈 후회를 상징한다.
구교환, 문가영 주연의 영화 ‘만약에 우리’가 개봉 4주 차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며 누적 관객 170만 명을 돌파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한 연초 극장가에서 거둔 이 의외의 성적표는, 이 영화가 단순히 ‘달달한 로맨스’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현실 자화상’을 건드렸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영화는 2018년 중국 멜로 수작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했지만, 그 정서는 철저히 한국적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허진호 감독의 명작 ‘봄날은 간다’(2001)와 비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사랑의 유효기간과 변심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다뤘다면, ‘만약에 우리’의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은 ‘가난과 현실’ 앞에 무너지는 사랑을 보여준다.
서로 죽고 못 살던 두 사람이지만, 서울의 비싼 월세와 보이지 않는 미래, 그리고 “집은 있어야지”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사랑은 사치가 된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케케묵은 질문이 2026년 N포 세대에게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지 영화는 담담하게, 그래서 더 아프게 그려낸다.
‘봄날은 간다’가 계절이 바뀌듯 사랑이 변하는 것을 보여줬다면, ‘만약에 우리’는 환경이 사랑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2026년판 봄날은 간다’라 불릴 만하다.
영화가 화제가 되는 진짜 이유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만약에”라는 가정법 때문이다.
10년 만에 재회한 은호와 정원이 서로에게 던지는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 각자의 마음속에 묻어둔 ‘그 사람’을 소환한다. 영화를 본 후 “집에 와서 소주 한잔했다”, “헤어진 연인이 생각나 연락할 뻔했다”는 관람평이 줄을 잇는 이유다.
구교환과 문가영의 연기력도 몰입도를 높였다. 찌질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구교환의 현실 남친 연기와, 팍팍한 삶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문가영의 눈물 연기는 이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게 하는 일등 공신이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포기한 걸까, 시대를 잘못 만난 걸까. 끝나지 않은 여운 속에 ‘만약에 우리’는 올겨울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눈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진주희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