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인데’ 심판도 잔디도 현실 탓탓탓, 팬은 보살이 아니다 [MK초점]

한국 프로축구 K리그(1·2)는 실업 리그나 아마추어가 아니다. 엄연한 ‘프로스포츠’다.

프로스포츠에서 ‘팬은 소비자’다. ‘팬이 얼마나 존재하고 늘어날 것이냐’에 따라서 프로축구 산업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런데 한국 축구계는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현장을 취재하며 꽤 많은 순간 ‘축구계는 소비자를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동준 심판.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가장 큰 원인은 태생부터 큰 변화 없는 구조에 있다.

프로축구는 1983년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급작스럽게 탄생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탄생한 프로축구가 ‘프로답게’ 돌아갈 리는 없었다. 프로축구 초기엔 홈구장이나 팬들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프로축구 팀은 유랑단처럼 다양한 구장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치렀다. 많은 지도자와 선수에겐 프로 의식이란 걸 찾아볼 수도 없었다. 프로 의식이란 게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2025년 시도민구단 예산 지원 현황. 해당 자료엔 군 팀인 김천상무, 기업과 지자체의 컨소시엄 형태로 K리그2에 참가 중인 충북청주 FC가 빠졌다. 참고로 충북청주는 애초 기업구단으로 K리그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었으나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다. 예산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연맹은 요구 조건으로 지자체 예산을 내걸었고, 충북청주는 이를 받아들이고 지자체와 합의를 이뤄 K리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충북청주 역시 지자체 예산 없인 K리그 참가가 불가한 팀이다. 덧붙여 2026년부턴 용인 FC, 김해 FC, 파주 FC 등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는 구단이 무려 3개 팀이나 추가됐다. 사진=나라살림연구소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지자체 예산 없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시도민구단이 탄생했다.

2026년 기준 K리그1, 2 29개 구단 가운데 세금 투입 없이 존립 불가능한 팀은 무려 19개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지자체 예산에 의존해야만 하는 구단이 무려 19개나 생겼지만, 2002년 이후 프로축구계에 뛰어들어 온전한 기업 구단을 만든 기업은 이랜드 그룹과 대전하나금융그룹 단 2개뿐이다.

지도자, 선수 등 모든 프로축구 산업 종사자의 월급은 모기업이나 지자체로부터 나온다. 그들의 월급은 팬들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축구인으로선 과거보다 보수도 늘고, 일자리도 늘었는데 굳이 이 판에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

한국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1의 우승 상금은 여전히 5억 원이다. ‘4선’ 임기를 소화 중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연맹 총재를 맡았던 때인 2012년 결정된 사안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인 관점에서 보면, 지자체를 끌어들여서 구단 수를 늘리는 걸 비판하거나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프로와 기업은 팬, 수익, 흥행, 시장 가치 등에 초점을 맞춘다.

아마추어와 지자체는 교육, 육성, 명예 등에 초점을 둔다.

프로스포츠에 어울리는 건 기업이다.

기업이 한국 프로축구 산업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투자 대비 수익성이 너무 떨어진다. 수익 구조가 불명확하고 불확실한 까닭에 매해 적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K리그 선수단 연도별 평균 연봉. 자료=한국프로축구연맹 / 정리=이근승 기자

K리그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K리그는 팬이 없어도 굴러간다는 건 분명하다. 너무 뼈아프지만 현실이다. 코로나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는 이를 완벽하게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다. 간단하게 코로나19 시대로 경영난을 겪거나 해체된 구단은 없다. 한국에선 구단 수, 지도자와 선수단 임금 등 모든 게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올랐다.

한국에선 평균 관중 수가 얼마든 티켓 수익이 얼마든 중요하지 않다. 프로축구단은 모기업이나 지자체가 매해 내려주는 예산에 따라서 운영된다. 1983년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물론, 프로스포츠답게 평균 관중 수를 승점이나 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산업 관계자들도 많다. 많이 늘었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한다. 좋은 성적으로 모기업이나 지자체에 예산 증액을 요구해야 고위층의 입지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구조가 굳어진 까닭이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월 4일 충청남도 천안시 코리안풋볼파크 스타디움에서 ‘KFA 오픈 그라운드 : 심판 발전 공청회’를 열었다. 사진=이근승 기자

대한축구협회(KFA)는 2월 4일 충청남도 천안시 코리안풋볼파크 스타디움에서 ‘KFA 오픈 그라운드 심판 발전 공청회’를 열었다. KFA가 새롭게 도입한 공개 정책 발표회 ‘KFA 오픈 그라운드’의 첫 번째 공식 행사였다.

의미가 있었다. KFA는 2025년 축구계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심판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특히, KFA는 이날 공청회를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생중계하면서 팬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패널로 나선 프로심판협의회장이자 27년 차 베테랑인 이동준 심판은 발언에 앞서 지난해 발생한 각종 판정 논란과 오심에 대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 심판육성 예산. 사진=이근승 기자

이날 공청회의 핵심을 정리하면 이랬다.

‘대한민국 심판은 고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건 구조적인 문제다. 구조와 체계를 갖추는 데 투자가 필요하다. 덧붙여 심판을 향한 처우 개선과 존중도 요구된다.’

공청회에서 나온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장 예산부터 확보하고 확충해야 심판에 대한 처우, 교육 환경 등이 개선될 수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부분들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는 반드시 반복된다.

2026년 심판배정 및 평가. 사진=이근승 기자

그런데 K리그 개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특히나 이날 공청회는 KFA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다.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공청회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팬들이 궁금해한 건 명확했다.

‘2026시즌 K리그에선 판정 논란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이며 ‘잘못된 판정으로 땀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였다.

축구계가 팬을 소비자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잘못된 판정으로 큰 상처와 분노를 느꼈을 때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 아픈 걸 공감하고 어루만져 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문진희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사진=국회방송 캡처

문진희 KFA 심판위원장은 공청회에서 이런 답을 했다.

“예년과 달리 전라남도 강진에서 K리그1, 2로 나누어 교육했던 걸 K리그1, 2 주심 6일, 부심 4일 교육을 진행했다. 전년도에 문제가 됐던 오심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했다. MVAR을 도입해 VAR과 필드 심판이 정답을 잘 찾는 방법도 연구했다. 걱정하시는 대로 K리그1 6경기, K리그2에선 8경기가 있다. K리그1은 15년 이상 정도 된 경력이 많은 심판이 운영되는 듯하다. K리그2에선 이전에 언론에 잘못 전달된 것 같은데 ‘육성한다는 시스템’보단 ‘잘 만들어서 K리그2 레벨에 맞게 배정되는 심판’을 운영할 것 같다. 이번 훈련을 통해서 느낀 건 오심을 줄일 수 있는 상태라는 거다. 확신한다. 올 시즌 K리그 개막 전에 다시 한 번 1박 2일 정도 재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심판의 열악한 환경과 구조 개선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 공청회였다. 하나같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문제였다.

개선되지 않으면 당장 괜찮기 어려운 현실을 실컷 지적해 놓고 ‘올해는 확실히 좋아질 것’이라고 하면 신뢰가 갈까. 이번 공청회에선 2026시즌 판정은 다를 것이란 신뢰를 전하지 못했다. 문 위원장의 확신처럼 오심이 줄어든다면 다행이겠지만, 오심으로 신뢰를 더 크게 잃어버린다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위험이 있다.

각 구단과 다수 축구인뿐 아니라 팬도 심판과 판정을 향한 신뢰가 떨어질 만큼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축구계에선 심판 판정을 향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사진=ChatGPT 생성

한 번 떠난 팬을 붙잡는 건 매우 어려운 세상이다.

프로축구 산업이 2026년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OTT 속 세상이다. 사람들은 내 집 안방에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은 치킨값보다 싼 금액으로 엄청난 수의 콘텐츠를 한 달 내내 즐길 수 있다. 프로축구는 세계 각국의 고퀄리티 콘텐츠를 상대로 경쟁력을 보여야 한다.

K리그는 프로스포츠다. 이 당연한 얘길 자꾸 반복하는 건 이곳이 실업 리그인지 아마추어 무대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까닭이다.

사진=이근승 기자
사진=이근승 기자
2026년에도 이런 잔디에서 프로축구 경기가 치러지는 걸 봐야 할까. ‘날씨가 안 좋아서’, ‘예산이 없어서’, ‘지자체와 소통이 되질 않아서’ 등 핑계는 많다. 푯값을 지불하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프로스포츠에서 잔디 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인 구조의 프로스포츠라면, 기본 중의 기본인 잔디 관리가 안 되는 건 프로의 자격이 없는 거다. 사진=이근승 기자

프로는 프로에 걸맞음을 증명하는 곳이지 배우고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경기를 보여준다.

프로스포츠는 시간과 비용을 들인 팬들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

지도자와 선수 등이 훈련장에서부터 온 힘을 다해 경기 준비를 하는 것만이 기본이 아니다. 최상의 경기력은 프로다운 훈련장, 프로다운 잔디, 프로다운 홈구장 시설, 프로다운 경기 운영진 및 심판진 등이 기본이어야 나온다.

그런데 한국 프로스포츠 유일 1, 2부 승강제를 안착시켰고, 이젠 1~4부 리그 승강제까지 도입한다는 대한민국 프로축구는 기본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기본을 갖추는 것에 관심이라도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오늘의 소비자가 내일도 내 물건을 구매해 줄 것이란 착각은 하지 말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에게 이해를 강요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다.

[천안=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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