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훈(31·제주 SK)의 축구 인생은 화려하다. 권창훈은 연령별 대표(U-17~23)를 두루 거쳤다. 권창훈은 2013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 주역으로 활약했고, 2016 리우 올림픽 8강과 2020 도쿄 올림픽 8강에 힘을 보탰다. 성인 대표팀에선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에 이바지했다.
권창훈은 유럽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프랑스 리그앙 디종 FCO 유니폼을 입고 2017-18시즌 11골 3도움을 올렸다. 한국 선수가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에서 단일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건 차범근, 박주영, 손흥민 이후 권창훈이 네 번째다.
권창훈의 축구 인생이 화려함으로 가득 차 있는 건 아니다. 남모를 아픔과 시련도 있었다. 권창훈은 최절정의 몸 상태를 보인 2017-18시즌 말미 아킬레스건을 크게 다쳐 2018 러시아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권창훈은 이후에도 부상으로 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권창훈이 2025시즌을 마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K리그1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를 떠나 제주 유니폼을 입은 것. 제주는 수원 삼성, 김천상무, 전북에 이은 권창훈의 K리그 네 번째 팀이다.
권창훈이 제주를 택한 데는 세르지우 코스타 신임 감독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다.
권창훈과 코스타 감독은 국가대표팀에서 선수와 수석코치로 긴 시간을 함께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란 업적을 합작했다.
코스타 감독은 권창훈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일찌감치 알아본 지도자다. 축구계가 코스타 감독과 권창훈의 재회에 기대감을 품은 건 이 때문.
‘MK스포츠’가 제주 생활을 시작한 권창훈과 나눈 이야기다. 해당 인터뷰는 제주가 올 시즌 K리그1 3라운드를 마친 시점인 17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진행했다.
Q. 제주 생활은 어떤가.
큰 어려운 점 없이 빠르게 적응한 것 같다. 잘 지내고 있다(웃음). 제주도가 육지보단 확실히 따뜻하다. 바람이 많이 불 때가 있지만, 바람이 안 부는 날엔 날도 따뜻하고 정말 좋은 것 같다. 조금만 나가면 바다도 볼 수 있고, 오름도 많아서 산책하기에도 최상의 조건이 아닌가 싶다.
Q. 제주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휴식일엔 제주도 관광지도 돌아보고 하나.
아직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다. 밥 먹을 때나 카페 갈 때를 빼곤 ‘어디를 가야겠다’고 정해서 나간 적은 없는 듯하다.
Q. 2025시즌을 마치고 제주 유니폼을 입었다. 제주를 택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나.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코스타 감독께서 제주 지휘봉을 잡는다’는 얘길 들었다. 코스타 감독님의 존재가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코스타 감독님과는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했었다. 대표팀에서 워낙 잘 지냈기에 제주에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Q. 새 소속팀을 고민하던 중 코스타 감독과 나눈 얘기가 있었나.
무언가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니었다. 코스타 감독님도 제주와의 계약이 확정적이지 않았다. 계약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코스타 감독께서 제주와 계약을 맺고 난 뒤에 ‘몸 상태가 어떤지’ 정도를 물어보셨다.
Q. 코스타 감독이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치 생활만 약 20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 봤던 수석코치 코스타는 어떤 지도자였나.
대표팀에선 어머니 같은 지도자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님이 아버지 역할이었다랄까. 당시 코스타 수석코치님은 뒤에서 선수들을 지원해 주고,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힘썼다. 그런 걸 완벽하게 해냈던 수석코치였다.
Q. 코스타 감독이 제주 지휘봉을 잡은 뒤 달라진 게 있을까.
확실히 어머니 같은 지도자는 아닌 거 같다(웃음). 아버지 같은 감독님으로 바뀌셨다. 직책이 달라지지 않았나. ‘당연하다’고 본다. 이젠 팀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이시다.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거나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때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Q. 벤투 감독, 코스타 감독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밖에서 볼 땐 코스타 감독의 축구도 벤투 감독의 축구와 비슷하지 않겠느냔 시선이 있다. 직접 경험해봤을 때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
팀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벤투 감독님과 비슷한 것 같다. 벤투 감독님이나 코스타 감독님이나 상대에 따라서 변화를 가져가신다. 그러다 보니 ‘어떤 축구’라고 특정 지어서 말하긴 어려운 듯하다. 상황에 맞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축구가 정해진다. 코스타 감독님은 여러 옵션을 주신다. 그 가운데 가장 적합한 걸 찾아서 준비하고 있다.
Q. 수원, 김천, 전북 등에서 상대로 마주했던 제주는 어떤 팀이었나.
늘 고전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지난해엔 세 차례 맞대결 모두 무승부였다. 제주와 붙어봤을 때나 멤버 구성을 봤을 때나 좋은 팀이란 건 확실했다.
Q. 제주 선수들이 이겨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원정 이동이다.
아직까진 힘든 걸 느껴보지 못했다. 원정을 한 번 경험했다. 올해 일정을 보니까 원정 5연전이 있더라. 그때가 고비이지 않을까 싶다.
Q. 동료들이 해준 조언이 있나.
다들 “적응이 안 될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더라. 힘들긴 할 것 같은데 적응해야 하지 않겠나. 더 관리하면 될 거다. 내가 먼저 물어보긴 했다. 특별하게 해야 할 게 있으면 하려고 했다. 동료들이 “그런 거 없다”고 하더라. 하던 대로 몸 관리 철저히 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인 것 같다.
Q. 권창훈의 축구 인생에서 전북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전북은 내게 감사한 팀이다. 어렸을 때 손을 내밀어준 구단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좋은 기억밖에 없다. 부상에서 복귀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전북에서 믿어준 덕분에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전북 모든 구성원과 팬들에게 그래서 더 감사한 것 같다.
Q. 긴 재활은 권창훈 본인에게 가장 힘든 시간 아니었나. 어떻게 이겨냈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처음엔 그냥 힘들어했다. 힘들어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다. 빨리 괜찮아지려고 발버둥 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어떻게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었다.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재활하고 치료받았다. 재활 과정에서 가족들도 힘들어했다. 부모님이나 아내나 주변에 있는 모든 분이 같이 힘들어해 주고 믿어준 덕분에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게 쌓이고 쌓이면서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Q. 긴 재활 끝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을 때의 감정은 어땠나.
여러 감정이었다. 축구를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경기장이 낯설기도 했다. 뛰면서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정적으로 뛸수록 행복의 감정이 커졌던 것 같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Q. 권창훈은 경험이 풍부하다. K리그1에서뿐 아니라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올림픽 등을 뛰었다. 세계 최고 선수가 즐비한 유럽 빅리그에서도 뛰어봤다.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는 것도 있을까.
지금은 많은 조언을 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후배들을 향한 조언은 필요하다고 본다. 선배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다만, 조언이 힘을 발휘하려면 스스로 느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먼저 얘기하기보단 후배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이야기하려고 한다. 솔직히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가 그렇다. 약간 꼰대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더라(웃음).
Q. 어떤 팀에서든 성실한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그렇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도 뛰어봤다. 국가대표가 되려면 어느 정도로 노력해야 하나.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모든 선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노력은 다 똑같이 한다. 장점은 계속해서 살려 나가고, 부족한 점은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선 이미지 트레이닝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훈련 땐 이것저것 더 시도해 보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경험이 쌓여야 성장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세상에 갑자기 되는 건 없다. 꾸준히 자기 능력을 키워나가는 게 핵심이다.
Q. 유럽에서 새롭게 배우고 느낀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
나도 처음엔 어려웠다. 솔직히 볼을 받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왜냐하면 유럽은 피지컬이 아예 다르다. 내가 ‘피지컬이 부족하다’는 걸 크게 느꼈다. 볼을 잡고 몸으로 부딪쳤을 때 ‘볼을 쉽게 빼앗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이걸 빨리 극복하는 게 중요했다. 유럽에서 한국 선수를 선택하는 이유 중엔 민첩함, 기술 등이 있다. 분명한 건 자기만의 특징이 있어야 유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유럽에선 두려움을 빠르게 깨고 자기 색깔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Q. 유럽의 피지컬은 대체 어느 정도로 다른 건가.
피지컬 운동을 유럽에서 많이 했다(웃음). 솔직히 (유럽) 가기 전엔 많이 못했다.
Q. 유럽 선수들과 부딪혀보면 진짜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골격이나 힘 자체가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확실히 세다. 진짜 세긴 세다. 피지컬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상대의 힘을 어떻게 역이용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Q. 권창훈은 리그앙에서 단일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독일 분데스리가도 경험했다. 현재 한국에선 10대 선수들이 유럽으로 나가고 있다. 유럽 진출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확실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 유럽 팀이 눈여겨보는 아시아 선수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거다. 다들 특징이 있다. 나도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꽤 됐다. 그래도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선수들이 볼은 잘 찬다’고 한다. 다만, ‘확실한 특징이 조금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자기가 어떤 장점이 있는 선수인지 명확히 내보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 자기만의 특색을 살리는 게 본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건가. 지도자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나.
둘 다 중요하다(웃음). 선수는 보통 본능대로 한다. 그걸 지켜봐 주는 지도자가 ‘이런 걸 더해보면 어떨까’란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게 시너지를 내면,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거다.
Q. 권창훈의 왼발은 타고난 건가, 노력의 결실인가.
확실히 타고난 건 아니다. (손)흥민이 형이 양발을 자유자재로 잘 쓰는 건 그만큼 차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땀을 아끼지 않았기에 실전에서 힘을 내는 것이라고 본다.
Q.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작년보다 나아진 경기력과 달리 결과가 따르지 않고 있다.
결과를 만들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과정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결과만 얻게 된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것으로 믿는다. 계속해서 서로를 믿고 나아가야 하는 시기다.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
Q. 프로에서 성실함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면 성실함을 유지할 수 있다(웃음).
Q. 권창훈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힘든 시간이 꽤 많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직전엔 부상으로 꿈의 무대를 밟지 못했고, 이후에도 부상으로 인한 시련의 시간이 있었다.
그때 당시를 떠올리기보단 오늘 힘들었던 걸 떠올리는 편이다. 완벽한 하루는 없지 않나. 오늘 훈련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떠올리며 ‘이걸 왜 이렇게 처리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내가 축구를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축구를 더 재밌게 잘하고 싶다. 축구를 더 재밌게 잘하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
Q. 꾸준함을 유지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축구가 잘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인다(웃음). 뭘 해도 되니까 주변이 잘 안 보이는 거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잘될 때일수록 힘든 순간을 떠올려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 이 자리까지 왔는지 돌아봐야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나태함을 밀어내고 초심을 유지하면서 계속 땀 흘릴 수 있는 거다.
Q. 여전히 축구가 재밌나.
정말 재밌다. 축구는 늘 새롭기도 하다.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가 큰 것 같다.
Q. 권창훈이 지금 꾸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
지금은 제주에서 온 힘을 다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꿈이란 게 광범위하지 않나. 선수 은퇴 후엔 무엇을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 제주에서 선수 생활하는 동안엔 제주가 잘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거다. 제주가 지금보다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더하고 싶다.
Q. 권창훈의 국가대표팀 복귀를 바라는 팬들도 있다. 권창훈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인가.
그 자리는 누구한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최고의 선수만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다. 운이 따라야 할 때도 있다. 매일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운동한다. 국가대표를 목표로 해야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땀 흘릴 수 있는 것 같다.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다보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열심히 해야지.
Q. 제주 팬들에게.
아직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다. 팬들이 홈이든 원정이든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그 성원에 반드시 보답할 수 있도록 더 땀 흘리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서귀포=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