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연예계에서 영구 퇴출당한 그룹 룰라 출신 고영욱이 연일 폭주형 SNS 행보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얼마 전 지상파를 대표하는 예능인들을 향해 날 선 독설을 뿜어내며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는, 이번에는 대세 청춘스타들의 사적인 온라인 관계망까지 제멋대로 난도질하며 억지스러운 서사를 부여했다.
배우 김수현의 복귀 기사에 ‘좋아요’를 누른 정해인의 소식을 인용하면서, 뜬금없이 배우 임시완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는 정해인의 행보를 칭찬하는 척하며 “임시완은 김수현 팔로잉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악의적인 저격성 글을 남겼다. 이 지극히 사적이고 가벼운 손가락의 움직임을 두고 벌어진 촌극은, 현재 우리 대중문화계가 심하게 앓고 있는 ‘SNS 관계망의 과잉 검열’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고스란히 들춰낸다.
오늘날 대중은 스타들의 현실 속 깊은 우정이나 인간적인 교감보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전시되는 얄팍한 온라인 데이터 조각들에 더 과도하게 몰입한다. 임시완이 과거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우 목록을 대거 정리하면서 지인 다수를 언팔로우했던 흔적이나, 정해인이 사생활 논란의 여파를 겪었던 동갑내기 절친 김수현의 복귀 소식에 묵묵히 ‘좋아요’를 누르며 지킨 우정의 형태는 모두 대중의 가차 없는 ‘채점표’ 위에 올라가 있다.
연예인들의 팔로우 해제 행위는 소속사의 관리 권고, 해킹 방지, 혹은 단순한 피드 정리 등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적 이유가 작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미디어는 이를 곧바로 ‘손절’이나 ‘배신’이라는 가장 자극적인 단어로 규정해 버린다.
반대로 힘든 상황에 처한 동료의 글에 위로의 의미로 ‘좋아요’ 하나를 누르는 것조차 대중의 눈치를 보며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스타들이 마주한 숨 막히는 현실이다. 이런 촘촘한 감시망 속에서 스타들의 SNS는 소통과 공유의 창구가 아니라,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가상 인격의 쇼윈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대중의 ‘SNS 과잉 몰입’ 현상을 악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억지로 증명하려는 부적절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사회적 물의를 빚고 업계에서 철저히 배제된 고영욱의 계속되는 저격 행보는, 그 어떤 사회적 비판 의식이나 성찰의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는 처절한 ‘관심 구걸’에 불과하다.
성공적으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옛 동료 스타들을 깎아내리거나, 잘나가는 청춘스타들의 사소한 온라인 관계를 비틀어 꼬집으며 본인에게 쏟아지는 싸늘한 혐오 여론조차 어떻게든 대중의 관심으로 치환하려는 얄팍하고 이기적인 계산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중이 그의 글에 분노하고 황당해하면서도, 비판을 핑계로 실시간 검색어와 랭킹 뉴스의 트래픽을 기꺼이 채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자극적인 순환 고리 자체가 연예 뉴스를 소비하는 대중에게 가하는 또 하나의 피로 물질이자 맹독이다.
우정의 두께와 사람의 인성은 인스타그램 팔로우 여부나 하트 클릭 횟수 따위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현실 속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기쁨을 축하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슬픔을 나누는 진짜 관계의 무게는 스마트폰 화면 속 매끄러운 픽셀 뒤에 깊숙이 숨겨져 있다.
스타들의 일상을 24시간 현미경 보듯 감시하며 ‘손절과 의리’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잣대로 줄을 세우는 문화는 스타를 옭아매는 것을 넘어 우리 대중 스스로를 더욱 피곤하고 옹졸하게 만들 뿐이다. 여기에 더해, 퇴출당한 범죄자의 악의적인 참견과 억지 논리까지 무비판적으로 확산하며 클릭 장사에 열을 올리는 포털 뉴스의 천박한 경쟁 역시 이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가벼운 터치 하나에 온갖 소설 같은 서사를 부여하며 타인의 우정을 함부로 검열하는 무례한 시선에서 벗어날 때다. 스타들의 사적인 인맥과 온라인 관계망을 온전히 그들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성숙한 넉넉함이 필요하다. 타인의 우정에 함부로 훈수를 두고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그 SNS라는 공간이 과연 타인의 삶과 관계를 옥죄는 잔인한 감옥은 아니었는지 우리 사회 전체가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