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심용환이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과 자신의 앞선 발언에 대해 추가 해명을 했지만, 오히려 누리꾼의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그가 앞서 대중의 반응을 두고 “의사 집안 자랑해서 괘씸죄로 걸린 것 아니냐”는 취지로 표현했던 점과 이번 해명에서도 안상호를 친일파로 단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심용환은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관련 논쟁으로 뜨거웠던 하루를 보냈다”며 안상호와 대정친목회 관련 연구 자료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2007년 발표된 논문을 근거로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21명 중 한 명으로 등록됐으나 이후 명단에서는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정도 자료를 두고 그는 ‘친일파가 맞다’라고 단정할 수 있다”면서도 “여러 각도로 추정해 본 결과 그는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근대 의료 보급에는 적극적이었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며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 역사적 단죄를 받을 수준의 친일 행위를 단정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심용환은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조항까지 언급하며 적극적인 부일 협력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오해와 모욕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의 부덕이라고 생각한다”며 “친일파 문제는 좀 더 숙고하고 확실하게 역사적 진보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누리꾼들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핵심을 여전히 비껴갔다”며 거센 반응을 쏟아냈다.
한 누리꾼은 “학자로서의 신중함은 존중하지만, 그 신중함은 왜 ‘부자라고 자랑해서 아니꼬워 돌을 던지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대중을 평가할 때는 없었느냐”며 “역사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느라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성급한 ‘괘씸죄’ 발언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댓글에는 수백 개의 ‘좋아요’가 달리며 공감을 얻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심용환의 해명을 두고 “친일 단체에 가입한 것은 맞고 일제강점기에 잘 먹고 잘산 것도 맞지만 더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며 “친일파가 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정친목회에서 안상호가 맡았던 ‘평의원’의 지위를 둘러싼 지적도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평의원이 단순 일반 회원과는 다른 간부 성격의 직책이었다는 점을 거론하며 “친일 단체에 이름만 올린 정도로 축소해서 볼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안상호가 과거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일본식 생활양식을 강조하고 조선인들과 교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진 점 역시 재소환됐다. 누리꾼들은 “대중은 고종 독살설 하나만으로 친일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대정친목회 활동과 당시 친일 성격의 매체에 남은 발언 등 이미 확인된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용환이 고종 독살설의 역사적 신빙성을 지적한 부분을 두고도 “논점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대중이 고종 독살설을 굳게 믿기 때문에 안상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일본을 칭송하고 조선을 낮춰 보는 듯한 기록과 친일 단체 활동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고종 독살설을 앞세우는 것은 핵심 논점을 비껴간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댓글에서는 “본인도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일제와 결탁하며 영화를 누렸다’고 판단하면서 왜 대중이 이를 친일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그렇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꼭 독립군을 밀고하고 직접적인 탄압 행위를 해야만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앞선 ‘괘씸죄’ 발언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누리꾼들은 “대중의 분노를 부잣집 딸에 대한 시기와 질투 정도로 치부한 것이 가장 큰 문제”, “사과문에서도 정작 본인이 왜 비판받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대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듯한 태도가 불쾌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논리 같다”, “나라를 팔았다는 공식 문서까지 나와야 친일파인가”, “친일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친일파라고 부르지는 말라는 것처럼 들린다” 등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졌다.
반면 역사학자가 특정 인물을 ‘친일파’로 규정할 때는 대중적 인식과 별개로 사료와 학술적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심용환 역시 이러한 학문적 신중함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안상호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한 평가는 추가적인 사료 검토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이번 논란은 안상호의 친일 행적 여부를 넘어 심용환이 대중의 문제 제기를 바라보는 방식으로까지 번진 분위기다. 해명을 거듭했음에도 “왜 화가 났는지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친일 청산의 기준과 역사학자의 사회적 발언을 둘러싼 논쟁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하얀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