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현진영이 자신을 데뷔시킨 이수만의 곁에서 생활하던 시절, 보안 카메라를 피해 나무를 타고 이태원으로 빠져나갔다가 새벽이면 다시 같은 길로 돌아왔던 이야기를 처음 공개했다.
16일 방송된 MBN ‘당신이 아픈 사이’에는 현진영이 출연했다. MC 윤정수가 ‘두 번째 아버지’라는 키워드를 꺼내자 현진영은 “제 인생에는 두 분의 아버님이 계셨습니다”라며 자신을 낳아주고 음악적 재능을 물려준 친아버지에 이어 이수만을 언급했다.
현진영은 “제 인생을 이끌어주시고 제가 가수 활동을 할 수 있게 밀어주신 두 번째 아버지는 바로 이수만 선생님”이라며 자신을 SM의 1호 가수로 데뷔시킨 당시를 떠올렸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토끼춤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이수만은 한국에서 이를 소화할 가수를 찾고 있었고, 프로 댄서의 길을 걷고 있던 현진영의 공연을 지인의 소개로 보게 됐다.
현진영은 이수만이 당시 자신에게 “나는 너의 원석을 봤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다이아몬드도 처음부터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세공사가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을 직접 키우고 싶어 했다는 것.
이어 “너한테는 동양인에게서 나오지 않는 쇳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너를 선택했어”라는 말도 들었다며 “이거는 방송 최초로 공개하는 건데요”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진영이 ‘슬픈 마네킹’ 활동 당시 말썽을 부리며 공백기를 가진 뒤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메가히트를 기록하자 이수만도 불안했는지 현진영을 자신의 가까이에 두기 시작했다.
현진영은 “저를 가둬 놓으시더라고요”라고 표현했다가 “가둬놓았다기보다는 ‘너 여기 좀 있어라’ 하고 옆에 두고 계시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감시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당시 사옥은 5층짜리 빌라 형태였다. 꼭대기 층에는 이수만이 살았고 1층은 사무실, 지하는 녹음실이었다. 현진영은 1층에서 생활했는데 이수만이 퇴근하면서 보안 장치를 켜놓으면 화장실은 자유롭게 갈 수 있어도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카메라에 모습이 잡혔다.
한창 놀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현진영은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다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나무가 자랐구나. 아, 이거다.”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어 손을 뻗자 나무가 실제로 잡혔다. 당시 몸이 가볍고 유연했던 현진영은 몸을 창밖으로 빼낸 뒤 나무를 붙잡고 그대로 아래까지 내려갔다.
밖으로 나온 뒤에는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는 이태원 문나이트였다. 현진영은 그곳에서 밤새 놀다가 해가 뜨기 직전이면 다시 택시를 타고 사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문제는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보안 카메라에 잡힐 수 있었던 만큼 내려올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나무를 다시 탔다. 나무를 붙잡고 올라가 창문에 발부터 집어넣은 뒤 방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을 잤다.
그렇게 끝도 아니었다. 아침이면 이수만이 현진영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직접 내려왔다. 밤새 놀고 돌아온 탓에 밥맛이 없었지만 들키지 않으려면 아침밥까지 먹어야 했다. 현진영은 이런 생활을 몇 달간 반복하면서도 ‘흐린 기억 속의 그대’ 활동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이수만은 현진영에게 무섭게 윽박지르기보다는 짧게 주의를 줬다고 한다. 현진영은 당시 이수만이 “가수들, 특히 연예계에 있는 아이들이 망하는 게 몇 가지가 있다”며 여자와 도박, 술을 조심하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자 현진영은 “그때는 그것까지만 얘기했어요”라며 마약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자신의 과거를 빗대 농담으로 말끝을 흐렸다.
현진영은 과거 마약 투약 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됐다. 이후 치료를 거쳤으며 마약의 굴레를 끊기 위해 마약 퇴치 관련 공익 활동에도 참여했다.
현진영이 이수만을 ‘두 번째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여러 말썽을 부리며 생긴 위약금 등으로 자신에게 부담이 돌아오지 않도록 이수만이 애썼다며 “선생님이 사비로 그런 걸 마무리해주시고 정리해주셨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