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메디컬 활극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후속 시즌(시즌 2·3)이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초를 넘고 캐스팅 판도를 새롭게 짰다.
과거사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이 자진 하차한 빈자리에 걸그룹 러블리즈 출신 배우 정예인이 수차례의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천장미’ 역으로 최종 발탁된 것.
글로벌 OTT 플랫폼의 빠르고 단호한 배역 교체 결단과 준비된 신예의 전격 투입은, K-콘텐츠 시장의 냉혹한 리스크 관리 현주소와 아이돌 출신 배우의 진정한 시험대를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이번 배역 교체의 기저에는 대중문화계에서 날로 엄격해지고 있는 ‘역사적 감수성’과 ‘출연자 리스크 관리’가 자리 잡고 있다. 시즌1에서 천장미 역을 소화하며 단숨에 신데렐라로 부상했던 배우 하영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계 배경을 언급한 것이 뼈아픈 화근이 되었다.
이후 그의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일제강점기 대표적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한 정황이 드러나며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파문이 커지자 하영은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사과문과 함께 자진 하차를 선언했고, 제작진은 머뭇거림 없이 오디션을 통한 대체 투입이라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이는 한국 대중문화 생태계에서 배우의 사적 배경이나 역사의식이 작품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로 작용함을 다시금 증명한다. 특히 글로벌 무대를 타깃으로 하는 대형 OTT 제작진이 신속하게 전열을 가다듬고 주지훈, 추영우 등 기존 주연진과 새로운 배우의 대본 리딩까지 빠르게 마친 점은, K-콘텐츠 판에서 위기 대응의 속도감이 얼마나 중요해졌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새롭게 ‘천장미’ 역의 바통을 이어받은 정예인은 2014년 8인조 걸그룹 러블리즈의 막내로 데뷔해 ‘아츄(Ah-Choo)’, ‘안녕’, ‘데스티니(Destiny)’ 등의 히트곡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주연으로 직행해 곧잘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일부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과 달리, 정예인의 지난 행보는 탄탄한 ‘계단식 성장’의 정석을 보여준다.
지난 2017년 tvN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문채원의 아역으로 연기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 웹드라마 ‘더 블루씨’와 ‘인싸가 되고 싶은 나라’, 드라마박스 ‘수수께끼 재벌딸’, 네이버 클립 숏드라마 ‘자판귀’, ‘코드네임: 악녀계모’ 등 다양한 소형 및 숏폼 플랫폼을 거치며 묵묵히 연기 기본기를 축적해 왔다.
나아가 연기의 외연을 무대로 넓혀 뮤지컬 ‘위윌락유’와 첫 타이틀롤을 거머쥔 ‘카르밀라’, 그리고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얘기 좀 할까?’와 ‘꽃, 별이 지나’ 무대까지 오르며 피사체로서의 공력을 다졌다. 대중문화 평단이 그를 단순한 ‘낙하산 아이돌’이 아닌, 땀방울로 스스로를 증명해 온 신예로 바라보는 이유다.
정예인만의 ‘천장미’를 세워야 할 때
그러나 정예인의 앞길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거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시즌1 공개 직후 글로벌 시청자의 이목을 끌며 메가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미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천장미’라는 캐릭터를 중도에 이어받는 것은 막강한 기회인 동시에 자칫 독배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정예인은 선임 배우의 짙은 잔상을 지워내고, 극 중 천재 외상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 분)과 양재원(추영우 분)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인물 서사와 템포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기존 천장미가 지녔던 당차고 유쾌한 직업적 아우라를 유지하면서도, 정예인 특유의 순발력과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다져온 섬세한 인물 해석을 덧입혀야만 ‘대체 투입’을 넘어선 ‘캐릭터의 진정한 완결’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배우 데뷔 9주년을 맞는 길목에서, 다음 달부터 동시 촬영에 돌입하는 대형 정극 시리즈 시즌 2·3의 주연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 정예인.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번 시험대에서 그가 K-드라마 생태계를 이끌 차세대 주연급 배우로서 확실한 도장을 찍을 수 있을지, 대중과 평단의 날카롭고도 기대 어린 시선이 쏠리고 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