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드는 사람”…정일성 촬영감독의 우직한 걸음들(종합)[MK★BIFF현장]

매경닷컴 MK스포츠(부산 우동)=김노을 기자

한국영화계 대체불가 인장을 새긴 정일성 촬영감독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정일성 감독은 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1957년 영화 ‘지상의 비극’으로 데뷔해 ‘화녀’(1971), ‘바보들의 행진’(1975), ‘가위 바위 보’(1976), ‘최후의 증인’(1980), ‘만다라’(1981), ‘만추’(1981), ‘황진이’(1986), ‘본투킬’(1996), ‘춘향뎐’(2000), ‘취화선’(2002), ‘천년학’(2007) 등 수많은 영화에 인적을 남겼다.



정일성 촬영감독 사진=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이날 정일성 감독은 “회고전에 선정된 후 생각이 많아졌다”며 “과거 외신을 통해 히치콕, 미국 존 포드 회고전을 접했을 때 ‘그들의 나이까지 나도 영화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영화를 시작한 지 어언 60년이 넘었다. 일본 영화 평론가가 ‘나의 친구 정일성 씨에게’라는 원고를 보내 그것을 읽어보니 일본에서 자기 상식에 촬영감독 회고전은 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 나를 계기로 하여 더욱 많은 촬영감독들의 회고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일성 감독의 수십 년 활동 비결은 다름 아닌 역사였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까지, 또 직후 무정부상태와 극심한 좌·우파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에 영화인으로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고민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의 영화 원동력은 불행했던 근대사”라며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눈 우리 세대를 통해 영화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해방부터 6.25까지 영화계는 처참했다. 경제 상황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되지 못했음에도 그나마 맥을 유지하며 한 편씩 영화가 나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준 선배들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필모그래피 중 부끄러운 영화가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영화가 많은데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4, 50편의 영화가 교과서처럼 나를 지배한다. 실패한 영화가 더 좋은, 교과서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다”고 털어놨다.

또 “나는 원칙주의자라 형식과 리얼리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상위에 놓은 건 영화의 격조다. 내 생각에 6.25 이전과 이후 사람들의 생각이 나뉘는 것 같다. 나는 남북 분단 이후 긴장하며 살아온 사람 아닌가. 결국 원초적인 힘은 민족 분단에서 오는 생각들이다. 이념의 갈등에서 오는 가족의 해체, 그 해체를 통과하는 정권적 영화들이 나오며 상호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저도 거기 일원으로서 함께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일성 감독은 독립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옥중에서 좋은 독립영화를 만든 터키 출신 감독과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대기업이 독립영화 작가들에 많은 투자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충분히 큰 영화에 대적할 만한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영화 ‘화녀’ ‘만추’ 스틸컷 사진=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임권택 감독과 김수용 감독은 정일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가 과거 교통사고로 대수술을 했을 때, 1980년도 직장암이 걸려 병원에 누워있을 때 두 감독은 다른 무엇과 비견할 수 없는 큰 힘을 준 이들이다. 정일성 감독은 “그들에게 생명의 빚을 졌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해 빚을 갚으려 한다”며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내가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영화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다시 정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게 내 마음대로 정리가 되는 게 아니지 않나”라며 “길이 없는 들판에서 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고 지향점을 밝혔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기념비적 해다. 아울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잔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이에 정일성 감독 역시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한 해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걸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어 젊은 영화인들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영화 학도들이 필름의 과정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필름 시대 사람들을 골동품 취급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디지털 촬영을 하더라도 아날로그 과정을 완벽하게 이수를 하지 않으면 좋은 디지털 촬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오는 12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회고전이라는 이름 아래 정일성 감독이 촬영을 맡은 작품 7편을 상영한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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