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렸다. 대장정의 끝을 알리는 폐막작 ‘윤희에게’(감독 임대형)가 영화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올해는 지난 3일 개막해 부산 6개 극장의 37개 스크린, 85개국 299편을 상영했다. 월드 프리미어 118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27편 등 이번 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이는 영화도 절반의 비율을 보였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총 관객수는 18만9116명으로 집계됐으며,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은 총 8882명(국내 게스트는 4446명, 해외 게스트 1215명)이었다. 영화제 측에 따르면 올해 영화제는 영화산업의 규모가 작아 주목받지 못했던 국가들 작품이 뉴 커런츠,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서 돋보였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폐막했다. 사진=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수상작은 짠 탱 휘 감독의 ‘롬’(베트남), 모하나드 하이얄 감독의 ‘하이파 거리’(이라크)가 선정됐다. 지석상 수상작은 사마드 술탄 쿠사트 감독의 ‘인생의 곡예’(파키스탄), 프라디프 쿠르바 감독의 ‘낯선 가족’(인도) 등이었다. 비프메세나상 수상작으로는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와 후어 닝 감독의 ‘누들 키드’(중국) 등이 뽑혔다. 올해의 배우상 수상자는 영화 ‘에듀케이션’에 출연한 배우 김준형, 문혜인이었으며, KNN관객상은 임선애 감독의 ‘69세’, BNK부산은행상은 멜라니 샤르본느 감독의 ‘페뷸러스’(캐나다)가 수상했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은 밀란 압디칼리코프 감독의 ‘달려라 소년’(키르기스스탄),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은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등이 수상 영예를 안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정상화 이후 재도약을 꾀했다. 본격적인 영화제의 시작 전 개최된 기자회견부터 재도약을 강조한 부산국제영화제. 여전히 숙제는 존재하지만 이전보다 한층 더 넓어진 작품의 폭, 다문화·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다양성의 존중 등 화합의 영화제로 거듭났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반가운 변화에 발 맞춰 거장들도 부산을 찾았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박찬욱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등 세계적 거장들이 관객과 만나 영화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나 정일성 촬영감독은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이 되어 지난 작품들을 되돌아보고 현재 영화계에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박찬욱,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사진=천정환 기자
감독이나 배우가 아닌 촬영감독이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처음이었다. 이례적이고 기념적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 정일성 촬영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원동력은 불행했던 근대사”라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무정부상태를 겪고, 정치적 좌파와 우파가 나뉘었던 그 세월을 온몸으로 살아낸 정일성 촬영감독의 분투와 작품관이 간담회 내내 이어지며 자못 숙연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박찬욱 감독과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만나는 꿈 같은 풍경도 펼쳐졌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서 신작 ‘어른의 부재’를 상영했고, 박찬욱 감독은 ‘필름 메이커 토크 : 박찬욱과의 대화’ 등을 진행했다.
야외무대에서 만난 두 거장은 오로지 영화와 인생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 ‘박쥐’(2009), ‘스토커’(2013), ‘아가씨’(2016) 등 4편을 언급하며 “전혀 다른 세계를 가진 영화다. 어떻게 한 감독이 4개의 다른 감수성과 독창성,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지 놀랍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어른의 부재’를 감상한 후 “화산이 폭발하는 느낌”이라며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비판의식에 경의를 표했다. 이에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젊은 영화인에게서 영감을 받는다”고 화답해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천정환 기자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영화제를 방문했다. 그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을 통해 공개됐다. 그동안 오랫동안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부산 방문은 지난해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후라 그 관심이 더욱 뜨거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해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를 언급하며 영화인으로서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5년 전 정치적 무제 등으로 개최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를 냈으며 나 역시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난관을 무사히 극복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정치적 문제와 여러 고난을 겪었을 때 영화인들의 연대가 가능다는 걸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영화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뚜렷하게 설명했다. ‘일본영화’가 아닌 ‘아시아 영화인’이라는 생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평소 영화 작업할 때 일본영화를 한다고 의식하는 게 아닌 아시아 영화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받은 아시아인영화인상이 제게 의미가 크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배우 김지미 사진=천정환 기자
부산 남포동에 위치한 비프빌리지에서는 ‘김지미를 아시나요’ 특별전 주인공 배우 김지미가 무대에 올라 시민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하얀 까마귀’(1967), ‘동창생’(1971), ‘논개’(1972), ‘토지’(1974), ‘육체의 약속’(1975), ‘티켓’(1986), ‘명자 아끼꼬 쏘냐’(1992)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해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김지미의 오픈토크에는 배우 안성기와 김규리, 조진웅, 전도연, 곽경택 감독 등이 함께 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나 김지미와 전도연이 함께 한 오픈토크는 여배우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큰 울림을 안겼다. “배우가 무슨 직업인지도 모르고 17살에 데뷔했다”고 털어놓은 김지미와 “‘검증되지 않은 배우’라는 말을 들었던 시절”이라며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린 전도연의 연대는 비프빌리지에 모인 이들의 마음을 두들기기에 충분했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