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있습니까’는 시대착오적이다. 상대 감정은 아랑곳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로맨스가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영화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사랑의 해답을 알려주는 기묘한 책을 만난 후 마법처럼 뒤바뀌기 시작한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다. ‘동감’(2000), ‘화성으로 간 사나이’(2003), ‘바보’(2008), ‘그 남자의 책 198쪽’(2008)을 연출한 김정권 감독이 ‘설해’(2015)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소정(김소은 분)은 셰프를 꿈꾸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다. 꿈 하나만 보고 달리기에도 부족한 청춘인데 치매를 앓는 엄마도 돌봐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고, 늘 집에 있는 엄마가 걱정이다. 그런 소정이 일하는 카페의 오너는 승재(성훈 분)다. 좋게 말해주면 까칠한 성격,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자기 감정 컨트롤 못하고 금방 분노에 휩싸이는 스타일이다. 내면은 물론이거니와 외부적 환경도 상극인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게 ‘사랑하고 있습니까’의 골자다.
영화 ‘사랑하고 있습니까’ 포스터 사진=블루필름웍스
자고로 로맨스라면 두 주인공 간의 감정 교류가 그 어느 장르보다도 주요한데 이 영화는 도통 쌍방향이 될 줄을 모른다. 윽박과 큰 소리, 남 탓이 난무하는 ‘사랑하고 있습니까’를 로맨스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가사도우미의 전화를 받은 소정은 일하다 말고 집으로 향한 뒤 카페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다. 승재는 매서운 눈과 고성으로 소정을 몰아붙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 정도면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화나게 만든 건지 설득이 되지 않으니 개연성과 당위성도 휘발된다.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아무튼’이 난무하는 영화다. 아무튼 두 사람은 서로를 짝사랑하고, 아무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며, 아무튼 사랑에 빠진다. 무책임한 선택의 연속인 나머지 동어 반복이다. 사건의 발단이자 사랑의 오작교가 되는 마법의 책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 소재다. 이 책 때문에 결국 소정은 책 없이는 어떠한 결정도 결심도 불가능한 민폐로 전락한다. 분명 수동적인 인물이 아닐 수 있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중요한 순간에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극 후반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플래시백도 몰입을 해친다. 나열하는 식의 설명으로 등장하는 플래시백을 보는 것만큼 시간 아까운 게 또 있을까.
시대착오적인 캐릭터 설정과 대사는 눈살을 찌푸린다. 남성 캐릭터들은 여성 캐릭터에게 ‘네가 정신을 놓고 다니니까 이런 일이 있는 거’라거나 ‘네가 어제 그러고 다녔으니까 내가 데리러 온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인다. 저런 대사가 나올 상황이 아닌데도 일단 소정 탓을 하고 보는, 어쩌면 츤데레처럼 보이고 싶었을 승재라는 캐릭터는 매사 꼬투리 잡아 호되게 고함지르기 바쁘다. 심지어 사귈 건지 말 건지를 묻는 순간조차 윽박을 지르고, 술 취해 차 안에서 잠든 소정의 사진을 찍어 몰래 간직하는 승재의 모습에 이 영화가 과연 로맨스가 맞는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기술적으로도 조악하다. 전개가 매끄럽지 않으니 블랙아웃이 빈번히 삽입되고, 음향은 갈피를 잡지 못해 대부분의 장면에서 소음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매 장면 제대로 된 감정이나 테마가 부재하니 음악을 과도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용된 음악이 인물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결국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그 어떤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허울만 로맨스인 영화가 됐다. 오는 25일 개봉.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