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중국 영화감독 천카이거는 극심한 혼돈을 지나온 중국 사회와 모순의 시간이 쌓인 중국인들의 면면을 바라본다.
1984년 영화 ‘황토지’로 데뷔한 그는 국제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으며 중국영화 제5세대의 막을 올렸다. 초기작 ‘현 위의 인생’(1991), ‘패왕별희’(1993)처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내로라하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감독 맞냐’라는 비판의 시선을 면치 못하는 신세인 것이 사실이다.
천카이거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화려한 데뷔를 지나 어두운 터널로 감독으로서 천카이거를 이야기 할 때 가장 자주 비교 선상에 놓이는 인물이 장이머우다. 장이머우가 촬영하고 천카이거가 연출한 첫 작품 ‘황토지’(1984)는 그들을 제5세대의 시작이라고 불리게 할 만큼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줬지만 두 감독은 전혀 딴 판의 길을 걸었다. 장이머우는 큰 공백기를 두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비교적 대중적인 성공에도 가깝다.
천카이거는 기대를 품게 한 첫 시작과 달리 이후 작품들에서 실망을 안겼다. 관객은 그의 영화를 더 이상 굳이 찾아보지 않았고 평단 역시 비판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카이거 영화에는 오리엔탈리즘 혐의가 짙었고, 서방 세계 시각으로 아시아 문화권을 바라보는 불편한 요소가 전반에 깔려 있었다.
그에게 199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패왕별희’는 연출 경력에 정점을 찍게 해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도화선이기도 했다. ‘패왕별희’ 후 3년 만에 내놓은 로맨스 영화 ‘풍월’은 관객과 평단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조금의 기대치에도 미치지 못해 일부는 제5세대의 몰락이라고 여겼다. 그 다음에는 합작 영화를 찍거나 영국, 미국 자본의 영화의 연출을 맡았지만 이전만큼 비평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3년 ‘투게더’가 세상에 나온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앞선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이전에 천카이거가 선보였던 중국의 과거, 그리고 그 과거를 바라보는 애상적 시선이 아니라 덜 심각하고 더 소박하다. 사람들은 과거에 머물고 있는, 잊혀져 가던 천카이거의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포스터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영화를 만들다 천카이거가 연출하고 장국영, 공리, 장풍의가 주연을 맡은 ‘패왕별희’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생명력을 갖고 살아 숨 쉰다.
오는 5월 1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경극 동료 두지(장국영 분)와 시투(장풍의 분) 그리고 주샨(공리 분)의 이야기다. 세상 둘도 없는 절친한 아우와 형이지만 두지는 시투에 대한 남모를 연정을 품고, 이를 알 리 없는 시투는 주샨을 마음에 품는다.
천카이거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중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두 경극 배우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만 그 안에 아무도 모를 모순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이 영화의 섬세한 감정선은 3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에도 여전한 감상을 남긴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