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저물고 있다. 일본 도쿄돔에서 시작해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마무리된 2025시즌 메이저리그, 여느 시즌이 그렇듯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지금, 2025시즌을 빛낸 순간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기사를 읽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한 해 고생 많았고 새해에도 즐거운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LA다저스의 투타 겸업 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처음 그가 메이저리그에 왔을 때 모두가 상상했던 그 모습을 마침내 현실로 보여줬다. 밀워키 브루어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 선발 투수겸 지명타자로 출전, 타석에서는 홈런 3개로 3타점을 올렸고 투수로는 6이닝 2피안타 3볼넷 10탈삼진 무실점 기록했다. 팀은 5-1로 이기며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그는 챔피언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오타니는 1회 선두타자 홈런을 때리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선발 등판 경기에서 리드오프 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투수가 됐고, 동시에 포스트시즌에서 한 경기 3홈런을 때린 최초의 투수가 됐다. 동시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경기에서 타석에서 3홈런, 마운드에서 10탈삼진을 동시에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포스트시즌 전체에서 한 경기 10탈삼진과 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것은 밥 깁슨(2회) 이후 그가 처음이다.
이 경기에서 오타니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2025년 최고의 퍼포먼스’를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그는 찬란하게 빛났다.
시애틀 매리너스 포수 칼 롤리는 이번 시즌 159경기 출전하며 60홈런 125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은 메이저리그 전체 1위, 타점은 아메리칸리그 1위였다. 그가 기록한 60홈런은 매리너스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며, 동시에 주포지션이 포수인 선수로서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홈런, 동시에 스위치 히터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다. 2022년 애런 저지가 세운 아메리칸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62개)은 뛰어넘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롤리의 활약을 앞세운 매리너스는 2001년 이후 24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과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달성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패하면서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은 이루지 못했다.
7월초 클리블랜드 가디언즈가 42승 48패에 머물며 아메리칸리그 중부 지구 선두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15.5게임 차로 뒤졌을 때만 하더라도 이들은 지구 우승은 커녕 가을야구 출전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후반기 42승 25패(승률 62.7%)의 무서운 상승세를 기록한 것. 결국 9월말 디트로이트와 시즌 마지막 3연전을 2승 1패 위닝시리즈로 마치면서 공동 1위 자리에 올라섰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시즌 최종전을 끝내기 승리로 장식하며 88승 74패 기록, 지구 우승을 확정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웃은 승자는 결국 디트로이트였다. 클리블랜드에게 지구 우승을 내준 디트로이트는 바로 이어진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를 2승 1패로 꺾으며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다.
클리블랜드가 극적인 반전으로 가을야구로 향했다면,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부자 구단 뉴욕 메츠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후안 소토에게 15년 7억 65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안긴 것을 비롯해 이번 시즌에만 3억 2300만 달러의 연봉 총액을 투자하고도 83승 79패에 머물며 신시내티 레즈에 밀려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8월 6연패, 9월 8연패 기록하며 추락했다. 실망스러운 시즌 이후 돌아온 것은 추운 겨울이었다. 1루수 피트 알론소는 옵트아웃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고 마무리 에드윈 디아즈는 FA 시장에 나간 뒤 LA다저스의 손을 잡았다. 이후에는 2루수 제프 맥닐과 유격수 프란시스코 린도어의 불화설까지 제기됐다. 메츠 구단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마르커스 시미엔을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맥닐을 애슬레틱스로 보내면서 사실상 불화를 인정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유난히 뜨거웠다. 총 열한 개의 시리즈 중에 월드시리즈를 비롯해 일곱 개의 시리즈가 끝장 승부까지 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은 극적이었다. 토론토가 1-3으로 뒤진 7회말, 1사 2, 3루에서 조지 스프링어가 좌측 담장 넘어가는 역전 스리런 홈런을 터트리며 단숨에 승부를 뒤집었고 토론토는 그대로 4-3으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단 한 개의 스윙으로 승부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애슬레틱스 신인 외야수 덴젤 클라크는 타석에서는 타율 0.230 OPS 0.646으로 평범한 성적을 남겼지만, 수비에서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6월 10일 LA에인절스와 원정경기에서는 놀란 샤누엘의 타구를 쫓아가 펜스 위로 뛰어오른 뒤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를 잡는 묘기를 보여줬다. 같은 달 7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홈경기에서는 호르헤 마테오가 때린 좌중간 잘맞은 타구를 123피트를 달려가 펜스에 부딪히며 잡아냈다. ‘MLB.com’이 스탯캐스트를 인용해 전한 내용에 따르면, 이 타구를 잡을 확률은 단 5%였다.
포스트시즌같이 긴장된 순간에는 리틀야구에서도 보기 힘든 실책이 승부를 가르기도 한다. LA다저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디비전시리즈 4차전이 그랬다. 연장 11회말 2사 만루에서 앤디 파헤스가 때린 느린 땅볼 타구를 오라이언 커커링이 잡았다. 1루에 던졌으면 쉽게 이닝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고 포수 J.T. 리얼무토도 1루를 가리켰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커커링은 홈으로 공을 던졌고, 이 송구가 크게 벗어난 사이 대주자 김혜성이 홈을 밟으며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다저스는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고 필라델피아는 허무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포수 패트릭 베일리는 지난 7월 9일(한국시간)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홈경기에서 보기 드문 진기록을 만들었다. 9회말 1사 1, 3루에서 때린 타구가 우중간 펜스를 맞힌 뒤 크게 굴절됐고, 오라클파크의 외야에 익숙하지 않은 필라델피아 외야진이 공을 쫓는 사이 홈까지 뛰어 들어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 번째로 포수가 인사이드 더 파크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베일리는 이후 9월 13일 LA다저스와 홈경기에서는 10회말 만루홈런으로 경기를 끝냈다. 같은 시즌에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 만루홈런으로 경기를 끝낸 독특한 기록을 세웠다.
애슬레틱스의 타일러 소더스트롬은 2023년 빅리그에 데뷔했을 때만 하더라도 평범한 선수였다. 포수와 1루수를 오가던 그는 2025시즌 좌익수로 변신, 158경기에서 타율 0.276 출루율 0.346 장타율 0.474 25홈런 93타점 기록하며 마침내 잠재력을 터트렸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7년 8600만 달러 계약 연장으로 보상받았다.
LA다저스 우완 사사키 로키는 빅리그 데뷔 후 여덟 차례 선발 등판에서 34 1/3이닝 소화에 그치며 평균자책점 4.72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뒤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회복 이후 불펜 투수로 변신하며 다저스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줬다. 사사키가 뒷문을 지켜주지 못했다면 이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다음 시즌은 다시 선발 투수로 도전할 예정이다.
조시 네일러는 지난 7월말 트레이드를 통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당시 그의 이적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같은 팀에 있다가 역시 시애틀로 옮긴 에우헤니오 수아레즈가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결과는 달랐다. 이적 후 54경기에서 타율 0.299 출루율 0.341 장타율 0.490 9홈런 33타점 bWAR 2.2 기록하며 팀의 지구 우승에 기여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12경기에서 타율 0.340 3홈런 5타점 기록하며 팀의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에 이바지했다.
[김재호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