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하지 마’가 망친 것”…‘야구선수 출신’ 경찰관의 따끔한 일침

2026년 한국 야구는 사건·사고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연초에 터진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의 스프링캠프 ‘불법 도박 논란’은 야구계의 큰 충격을 안겼다. 6월엔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키움 히어로즈의 이용규 선수 겸 코치가 음주 운전 후 교통사고를 냈단 소식이었다. 이 코치는 사건 직후 불명예스럽게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아마야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드래프트 신청 시 생활기록부 제출이 의무화됐지만, 학교폭력 문제는 매년 드래프트를 뒤흔들 변수로 존재한다. 상위 지명이 유력했던 학생 선수가 학교폭력 논란에 발목을 잡혀 지명 순번이 밀리거나 지명되지 않는 건 연례행사다. 행여 이를 무시하고 논란이 된 선수를 지명한 구단은 팬들의 날카로운 질타를 받는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사건·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야구계에 필요한 범죄 예방과 인성교육의 해법을 묻기 위해 베이스볼코리아가 특별한 인물을 찾았다.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에서 근무 중인 이세정 경위다. 이 경위는 엘리트 야구선수 출신 경찰관이다.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경북고와 영남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선수와 경찰,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한 이세정 경위는 최근 야구계의 잇따른 사건·사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는데···” 야구선수에서 경찰이 되기까지

선수 시절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으니까 15년간 선수 생활을 했네요. 고등학교 때 포지션은 3루수와 1루수였습니다. 방망이는 꽤 괜찮게 쳤어요. 3학년 때 봉황대기에서 타격 3위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송구만 더 잘했으면 지명됐을지도 몰라요(웃음).

이후 영남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야구부 시절 모습. 사진=본인 제공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야구부 시절 모습. 사진=본인 제공

대학에선 부침을 겪었습니다. 2학년 때부터 타율이 급락했어요. 마지막 4학년 시즌을 앞두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독립 리그 같은 곳도 없어서 신고선수로 프로에 가지 않으면 현역 생활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아쉬웠지만 선수로선 더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경찰관’이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 계기가 있나요.

야구를 그만둘 때쯤 대구 서부경찰서 야구팀에서 사회인 야구를 1년 정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만 선수 출신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일반 경찰관들이었습니다. 평일엔 자기 직업을 가지고 주말에 취미 생활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꾸 관심이 생겨서 경찰 형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봤죠.

뭐라고 하던가요.

모두 비슷한 대답이었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때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경찰이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어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잖아요. 그때부터 경찰관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사촌 형이 경찰 일을 하고 있었어요. 사촌 형에게 경찰 시험에 관해 물었더니 영어 단어부터 외우라는 거예요. 군 제대를 1년 남기고 영어 단어장을 두 권 사서 20회 완독했습니다.

경찰관 시험 준비가 쉽지만은 않았을 듯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영어였어요. 20회 완독을 해야 할 정도로(웃음). 선수 시절엔 학교에서 공부를 아예 안 했으니,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어요. 처음 공부할 땐 q와 d 구분조차 헷갈렸습니다. 명사, 동사가 뭔지도 몰랐어요. 고시원을 끊고 하루에 14시간씩 5개월을 버텼습니다.

대단하네요.

경찰관 시험은 1년에 두 번 있는데요. 다섯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으니 2년 반이 걸렸습니다. 필기시험은 합격선을 겨우 넘겼고, 체력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합격할 수 있었어요. 일반인들이랑 붙으니, 100m는 제가 제일 빠르더라고요(웃음).

# 지워지지 않은 야구 DNA 경찰 야구단의 지휘봉을 잡다

15년간의 야구선수 생활이 경찰관으로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맞아요. 야구, 경찰 조직 둘 다 기수 문화가 있잖아요. 제가 조금만 예의 바르게 행동해도 선배들이 인정해 줍니다. 운동 특기생 출신이 얼마나 어렵게 경찰에 들어왔을지를 다 아는 거죠. 또 경찰 내 야구 동아리에 들어가서 선배들에게 야구를 알려주면서 쌓은 친분이 근무에서 이어지기도 했고요.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맡고 있다고요.

감독을 처음 맡은 건 작년이에요. 경찰이나 소방, 국방부처럼 중앙 행정기관끼리 매년 세종시에서 붙는 야구대회가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된 다른 팀 감독들과 의기투합해서 작년엔 ‘제복 공무원 야구대회’를 만들었어요. 저희랑 해양경찰, 소방 3팀이 리그전을 했는데 운 좋게 우승까지 했습니다(웃음).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는 어떻게 구성했나요.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제복 공무원 야구대회 우수선수상을 받은 모습. 사진=본인 제공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제복 공무원 야구대회 우수선수상을 받은 모습. 사진=본인 제공

대회 개최가 결정되고 급하게 수소문했습니다. 전국에 야구선수 출신 경찰이 25명 정도 있더라고요. 25명 전부를 부르진 못했어요. 선수 시절 좋은 기억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야구를 지금까지 즐겨 하는 분들을 모아서 대회에 나갔습니다.

대회는 정기적으로 개최할 계획인가요.

올해 2회 대회를 추진할 예정이에요. 본격적으로 관심도를 높여보려고 합니다. 소방 등 다른 기관들과 정기적인 교류전도 해 보고 싶고요. 예전에 미국에서 LAPD(LA 경찰)가 주최한 야구대회를 본 적이 있어요. NYPD(뉴욕 경찰)도 와서 추모 행사 형식으로 교류하더라고요. 저희도 안될 건 없잖아요.

지금은 3팀이지만, 국방부나 다른 기관들을 모아서 대회 규모를 더 키우고 싶습니다. 만약 입장료를 받는다면 도움이 필요한 계층이나 경찰 가족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뜻깊은 대회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 형식적인 교육은 이제 그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와닿는 교육”

최근 야구계가 음주 운전, 도박 등으로 시끄럽습니다.

이용규 선수 음주 운전 소식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웠어요. 이룬 게 많은 선수가 현역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과정이었잖아요. 은퇴 후 삶이 기대되는 선수가 음주 운전으로 모든 걸 날려버린 겁니다.

현역 경찰로서 이런 선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음주 운전은 정말 위험한 범죄입니다. 한 번 해서 걸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모범을 보여야 할 유명 야구 선수들이 그런 사건에 휘말리니 문제가 더욱 심각한 거죠.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NC 다이노스에서 범죄 예방 강연을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2025년 프로야구 NC다이노스 2군 선수 대상 강연 후 기념 촬영. 사진=본인 제공
경찰청 범죄피해자 보호과 이세정 경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참가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 3위였다. 경찰청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 2025년 프로야구 NC다이노스 2군 선수 대상 강연 후 기념 촬영. 사진=본인 제공

신인들, 그리고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어요. 실제 사건·사고를 위주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야기할 소재는 많았죠. 강정호 선수의 음주 운전도 있었고. 약물 대리 처방 사건으로 후배들까지 1년간 야구를 못 하게 한 오재원 선수의 사례도 넣었습니다. 그리고 강연 PPT엔 자극적인 영상을 추가했습니다.

자극적인 영상이요?

이론적인 부분도 좋지만, 조금 더 선수들에게 와닿는 교육을 하고 싶었어요. 결국 사고를 친 선수들이 어떻게 됐는지가 중요하잖아요. 강정호 선수가 직접 차를 보호난간에 박는 사고 영상을 보여줬죠. 경기 끝나고 구단 쪽에 물어보니 교육 내용이 괜찮았다고 하더라고요.

선수 출신이었던 제가 교육을 했던 부분도 좋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학교폭력 쪽 강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동급생 폭행, 운동부 폭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잖아요.

왜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는 걸까요. 일각에선 학생 선수들이 수업에 잘 안 들어간단 점을 거론합니다.

교육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수업이라는 게 결국 교실에 들어가서 국어, 영어, 수학 수업을 듣는 건데, 이걸 학생 선수들은 아예 못 알아듣거든요. 공부로 대학에 가는 게 아니고 야구로 프로에 가야 하는 선수들입니다. 그들에겐 조금 더 현실과 맞닿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실과 맞닿은 교육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단순히 ‘하지 마!’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왜 이걸 하면 안 되는지를 선수들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술, 담배가 얼마나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야구잖아요.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면 이해가 더 쉬워질 겁니다.

#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여러분들이 못할 건 없습니다”

매년 수많은 야구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습니다.

사실 야구 선수들은 단순해요. 프로야구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들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야구를 그만두는 순간 복잡해지기 시작해요. 야구라는 울타리 안에선 선택지가 많지 않거든요.

제일 흔한 선택지인 레슨장도 요즘 너무 많습니다. 그 선수들에게 야구 외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후배들이 만약 제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찾아갈 겁니다.

실제 경위님이 야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한 훌륭한 예시이기도 합니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경찰관은 운동선수 출신이 택하기에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는 걸요. 그런데 경찰 루트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스스로 떠올리기 힘든 길이란 말이죠.

물론 준비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혼자 앉아서 1,000페이지가 넘는 다섯 과목의 책을 수십 번씩 봐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면 무조건 결과가 따라온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미지명 후에도 야구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야구를 빨리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야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면 끝까지 하는 게 맞아요. 그래야 다른 길을 선택할 때 미련이 남지 않을 테니까요. 앞만 보고 가도 잘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야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선택지가 많아집니다. 이제는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뒤에 하고 싶은 걸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야구계를 떠나 다른 길을 찾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은 길게 봐야 합니다. 짧은 시간, 큰돈을 버는 일은 대부분 불법이거나 위험한 경우가 많아요.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한여름 땡볕과 한겨울 칼바람에도 몇 시간씩 야구로 버텨낸 여러분들이잖아요. 그때를 생각하면 못 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모두 힘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베이스볼코리아는 한국 유소년 야구, 고교야구 등 학생 야구를 기반으로 KBO리그 유망주와 스카우트, 신인드래프트 소식을 전하는 야구 전문 매거진입니다. 한국판 ‘베이스볼 아메리카’를 표방하며 지난 2019년 3월 창간해 오프라인 월간지와 유튜브 방송, 온라인 매체를 통해 풍성한 야구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꿈을 향해 땀 흘리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과 현장 야구인들의 노력을 조명하고, 건전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베이스볼코리아의 지향점입니다. ‘MK스포츠’를 통해 많은 아마추어 선수의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베이스볼코리아 김지우 한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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